▲ 원익선 교무/원광대학교
소태산 대종사의 게송은 동양철학의 진수를 보여준다. 유와 무는 변과 불변, 진공과 묘유, 동과 정, 색과 공, 성과 속, 유상과 무상, 생과 사, 이(理)와 사(事), 숨음과 나타남, 영과 육 등 모든 이원론적인 것을 의미한다. 인도와 중국을 필두로 동양에서는 이러한 이원적인 사고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점을 오늘날까지도 논쟁해 왔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불타의 연기론, 용수의 중관론, 유식의 삼무성과 사지(四智)설, 현학(玄學)의 유무론, 승조의 열반무명론, 승랑의 삼론학, 천태지의의 삼제설을 관통하는 철학의 핵심을 긋고 있다. 특히 연기론, 중관론, 삼론학, 삼제설은 게송을 이해하는 중요한 사상이다.

이를 간략하게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불타의 연기론은 모든 존재가 서로 의지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어 대승불교의 기반이 된 용수의 중관사상은 이 연기에 의한 존재가 자성이 없음을 증명하고 그것이 공임을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공관에 의해 존재의 모든 방식은 유무를 초월한 중도에 입각해 있다고 본다. 유식은 이미 언급했듯이 전식득지로써 무명에 의한 분별을 반전시켜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동시에 윤회를 넘어 바른 지혜를 확립하도록 하는 사상이다.

현학은 중국에 불교가 정착하기 전에 일어난 사상으로 특히 유와 무 어느 것을 중시할까 하는 점에 집중되어 있다. 이를 발판으로 승조는 〈조론〉에서 유와 무의 상즉, 동과 정의 상즉, 지와 무지의 상즉, 세간과 열반의 상즉으로 논증한다. 이러한 사상은 승랑에 의해 계승된다. 그는 궁극적으로 얻을 바도 없는 깨달음의 논리를 전개하였다. 즉, 승조가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닌 비유비무(非有非無)의 진제(眞諦)를 하나의 이법(理法)으로 제시한 것이다. 중(中)과 가(假), 체(體)와 용(用)의 이원적 범주들을 도입하고, 변증법적으로 전개함으로써 무득의 진리를 관철하고자 했다.

승랑의 사상은 후에 지의에 의한 천태학과 혜능의 남종선(南宗禪) 을 탄생하게 하였다. 지의의 사상은 진제(眞諦, 空), 가제(假諦), 중도제일의로 구성된다. 가를 따라 공으로, 공을 따라 가로 들어가며 최종적으로는 양자를 포용하고 초월하는 삼제원융의 중도제일의(中道第一義)에 이른다. 여기에 기반, 모든 불교를 대상으로 한 교상판석 또한 이루어진다. 선종에서는 반야공관의 논리인 "A는 A가 아니므로 A이다"라는 즉비론에 뿌리를 두고, 모든 상대적인 진리를 철견하는 깨달음의 논리를 전개한다. 이러한 논리들은 헤겔의 정반합의 논리와도 비교되기도 한다. 지면 관계상 대체적인 흐름만 언급했지만, 일원상 진리의 게송이 조사들의 이러한 진리 인식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송에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돌고 돌아 지극하면'이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일원상의 진리에 도달하고자 한다면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무한한 부정과 무한한 긍정을 거치다보면 모든 분별이 끊어지고 보다 높은 차원의 눈이 열리게 된다. 소설 〈갈매기의 꿈〉에서 조나단이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비상하는 모습은 우리가 무명과 윤회를 딛고 도달하고자 하는 그 세계와 다름이 없다. 그리고 마침내 진정한 열반에 이르렀을 때, 이 세간이 바로 신묘한 세계임을 성자들은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일체 개공(皆空, 구공)이자 일체 개진(皆眞, 구족)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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