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력 2년차의 초보운전자다. 운전은 하면 할수록 실력이 늘어난다고 한다. 나도 처음 운전을 시작했을 때보다 여유도 생기고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다. 지난 주 어머니를 뵈러 다녀오는 길에 운전을 하면서 그동안은 보이지 않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직 앞만 보고 달리면서 끼어들기라도 하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고속도로 멀리 푸른 산과 하늘이 펼쳐짐이 보였다. "운전이 조금 능숙해지니 이렇게 풍경도 눈에 들어오는 구나." 순간 멋진 자연경관을 놓치고 내비게이션 화면에만 의존하면서 가는 초보운전자의 모습이 마치 마음공부의 처음 단계와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다.

운전을 처음 시작하면 '1시간째 직진중'이라는 멘트처럼 앞만 보고 달리게 된다. 사이드 미러와 백미러를 보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러다 실력이 조금 향상되면 끼어들기가 자유로워진다. 요즘은 다른 차들이 눈에 들어오고 시비가 생긴다. "운전을 왜 저 따위로 해." "운전도 못하면서 차를 왜 가지고 나와." 다른 사람의 실력을 탓하고 마음의 경계가 생긴다. 처음에는 그저 무사히 도착한 것만으로 무조건 감사했는데, 이제는 나보다 더 초보인 차들을 보면 답답함에 요란함이 생기고 잘못한 차들을 보면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운전이 완전히 순숙된다면 어떠할까? 아마 지금 내 차를 비켜서 자연스럽게 가는 베테랑 운전사처럼 앞에 차가 못가면 옆으로 비켜가고, 양보하며, 긴급한 상황에서도 평상심을 유지하며 대처하는 여유로움이 생길 것이다.

"(중략) 내수양은 안으로 자기 마음을 닦는 공부인 바, 첫째는 집심(執心)공부니, 염불 좌선을 할 때와 일체 때에 마음을 잘 붙잡아 외경에 흘러가지 않게 하기를 소 길들이는 이가 고삐를 잡고 놓지 않듯 하는 것이요, 둘째는 관심(觀心)공부니, 집심공부가 잘 되면 마음을 놓아 자적(自適)하면서 다만 마음 가는 것을 보아 그 망념만 제재하기를 소 길들이는 이가 고삐는 놓고 소가 가는 것만 제재하듯 하는 것이요, 세째는 무심(無心)공부니, 관심공부가 순숙하면 본다는 상도 놓아서 관하되 관하는 바가 없기를 소 길들이는 이가 사람과 소가 둘 아닌 지경에 들어가 동과 정이 한결같이 하는 것이라, 한 마음이 청정하면 백천 외경이 다 청정하여 경계와 내가 사이가 없이 한 가지 정토를 이루리라." (〈정산종사법어〉 경의편 65장)

마음을 길들이는 단계는 집심, 관심, 무심 그리고 필경에는 능심이 된다. 운전을 함에 있어서도 처음에는 내가 운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러다가 옆도 보이고 뒤도 보이면서 경계가 생기고 요란해진다. 운전이 능숙해지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경계가 생겨도 한결같이 대하게 되며, 때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대처하여 안정감 있게 운전을 할 수 있다.

나 역시 지금은 멀리 풍경을 보기도 하고 차가 붙으면 옆을 보고 피해주기도 하며 운전을 함에 너그러움이 생겼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하듯 초보일 때의 주의심을 놓는 순간 사고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차근차근 실력을 늘려가 듯 마음 또한 천천히 길들여서 모두가 청정한 마음 밭을 일구기를 바란다.

/광주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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