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 공직생활, 영산성지 봉사로 제2의 삶

대각전, 법모실, 영산원 보존구역 관리 전담
영산성지 10년 봉사 세계 성지로 가꾸고 싶어
내생 전무출신 서원 이뤄 일원화 피울 것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교양이 있고, 수양을 쌓은 사람일수록 겸손하고, 남 앞에서 자기를 내세우려 하지 않는다.
중앙총부 영산사무소 특별봉사자 교산 문인교(72·敎山 文仁敎)교도가 그렇다. 10년째 한결같이 봉사를 하고 있는 그이지만, 도량의 풀 한포기라도 정성껏 뽑는 것이 자신에게 큰 기쁨이라며 겸손해 한다.

"37년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지난 날을 되돌아보니 보람보다는 어리석은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사십이 넘으면 죽어가는 보따리를 잘 챙기기 시작하라'는 천도품 제1장 법문을 보고, 지금부터라도 여생을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중 교도로서 대종사님이 태어나시고 구도하신 영산성지에 가서 도량 청소를 하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교무님께 말씀드리니 좋은 생각이다고 말씀해주셔서 원기92년 성지에 오게 됐습니다."

임실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 국가공무원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를 원불교로 인도한 이가 있으니 장모 고 상타원 이고은행 교도다.

"전주에서 공직 생활을 하던 중 중앙부처인 서울에서 근무를 하고 싶어 산간벽지인 강원도로 발령을 신청했습니다. 고향을 뒤로 한 채 청운의 꿈을 안고 강릉 노동부 사무소에서 근무를 하게 됐죠. 그런데 새로 임명된 장관의 지시로 연고지 배치를 받게 됐고, 익산 사무소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모님께서 '우리 사위 총부 가까운 곳으로 발령 받아 교단의 주인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매일 기도를 올리셨죠. 그렇게 장모님의 연원으로 원기65년 영등교당에서 입교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전 장모님은 우아교당 교무님께 돈 오백만원을 내주시며, '우리 사위 교당의 주인되게 해주세요'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장모님은 열반하실 때까지, 저를 아들처럼 아껴주셨습니다. 저희 내외가 영산성지에서 제2의 삶을 사는 것을 보시면 정말 기뻐하실 겁니다."

매일 새벽4시30분에 일어나 불전에 불을 밝히고 좌선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는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을 산책으로 마무리 한다.

"숙소가 대각전 방에 딸려 있어서 새벽에 일어나 법당 정리정돈도 하고 좌선에 임하고 있습니다. 매일 대각터-탄생가-구간도실-정관평까지 1시간씩 두 번 산책을 하는데 그렇게 풍요롭고 평화로울 수가 없습니다. 산책을 할 때는 일원상서원문 10독, 영주·청정주 21독, 참회문 3독을 유무념 대조 공부로 정하고 독송하고 있습니다. 6월부터는 금강반야바라밀경 1일 3독을 목표로 정하고 안보고 외울 수 있을 때까지 독송하고 있습니다."

영산성지에는 총 3명의 특별봉사자들이 있다. 정관평 모내기 작업, 법인절 행사 준비, 예초 작업 등은 공동 작업으로 하고, 나머지 작업은 담당자가 맡는다. 문인교 교도는 대각전, 법모실, 영산원 등을 보존구역으로 정하고 청소, 풀 뽑기를 전담하고 있다.

"매년 3월부터 정관평은 한해의 일을 시작합니다. 3월엔 씨 소독 등의 작업을 하고 4월말-5월초에는 모를 심습니다. 우렁이 농법을 하기 때문에 우렁을 뿌려주는 작업도 하고, 10월엔 추수를 합니다. 처음 성지에 왔을 때는 현대화 되어있지 않아서 작업 조건이 어려웠습니다. 그럴 때마다 바다를 막아 정관평을 이뤄주신 구인선진들을 생각했습니다. '평화 안락한 낙원세계 건설'이라는 원불교 창립정신이 어려있는 은혜의 땅, 정관평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니다. 또한 성지에 순례 오는 이들이 지나다니는 중요한 통로를 청정한 마음으로 늘 깨끗하게 청소하고 있습니다. 성지에 오가는 이들이 '도량이 참 깨끗하고 좋다'는 마음을 가지고 갈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그가 성지생활에 정착할 수 있게 물심양면 도와준 이가 있으니 바로 그의 아내 이성심 교도다. 초반에 6개월 단위로 잠시 성지에 머물렀던 이성심 교도도 지금은 함께 성지생활을 하고 있다. 부부가 함께 하니 마음에 안정도 가져다 준다.

"아내도 4년 전부터 성지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아내는 수도원에서 숙소를 두고 생활하고 있어 식사 시간 때만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죠. 부부가 함께 있으니 공가 생활에 전념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또한 행동이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주고 챙겨주기 때문에 공부도 되는 것 같아요."

성지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는 문인교 교도, 내생에는 전무출신의 서원을 이뤄 교역자의 길을 걷겠다는 그다.

"해를 거듭하다 보니 이제는 성지가 제2의 고향이 됐습니다. 지금은 영산성지를 사랑하는 해설사 모임을 통해, 성지를 찾는 순례객들에게 안내도 하고 있죠. 제 몸이 허락하는 그 날까지 성지를 수호하며, 세계 속의 대 성지로 가꾸어 나가는데 일익을 담당하고 싶어요. 장모님도 다음 생에는 꼭 출가를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내생에 전무 출신의 서원을 꼭 이뤄서 일원회상의 꽃을 피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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