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경로당 무료급식소 14년째 책임져

일마다 불공의 산증인, 내 얼굴이 원불교 이미지
어머니의 출가 좌절 아쉬움 아들이 이뤄가는 중

가만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른다. 나랏님이 잔치를 한다 해도 가기 싫을 무더위, 그런데도 급식소에는 어김없이 줄이 늘어선다. 오늘의 메뉴는 입맛 잃은 어르신들을 위한 가자미조림. 앞치마를 두른 정은경 팀장에게 어르신들은 에둘러 고마움을 전한다.

"맨날 맛난 거 해주니, 차마 못 죽고 살잖아. 내일 반찬 뭘까 궁금해서 아플 수도 없어." 원기89년부터 14년째 매일 얼굴 마주하며 어르신들을 알뜰살뜰 챙기는 모두의 딸. '먼 데 사는 자식보다 낫다'고 입모아 칭찬하는 수원교당 정은경(鄭恩敬) 교도다.

수원시 권선구 세류2동에 위치한 이곳은 1층 노인회관, 경로당, 2층에는 무료급식소가 있는 특별한 구조다. 정 교도가 맡고 있는 무료급식소는 수원교당이 원기87년 수원시에서 위탁 받은 곳으로, 당시 교당 봉공회가 시작해 오늘에 이른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운영, 하루 평균 100명 가까운 기초생활수급자 및 독거어르신들의 점심을 책임지고 있다.

전날 장 다 보고, 대강의 손질을 마쳐 놓았어도 10시 전에 준비가 시작된다. 밥과 국, 3찬의 상이지만 정 교도의 세심하고 까다로운 식단 및 조리 때문에 내내 눈코뜰새 없다. 조리, 배식, 뒷정리까지, 십수 년째 손발 맞춰온 수원교당 자원봉사자들이라도 매일이 폭풍같다. 2시가 훌쩍 넘어서야 고무장갑을 벗고 물 한 잔 마시는 정은경 교도.

"오늘은 수월한 편이에요. 엊그제 복날 해드린 삼계탕 130그릇이 좀 덥고 힘들었지요. 그래도 오래 되다보니 크게 어렵진 않아요. 다만 어떤 맛있는 걸 올려 드리나 그게 고민이죠."

메뉴 선정은 가장 좋아하면서도 어려워하는 업무다. 제철 계절음식과 동지, 보름 등 절기음식은 꼭 챙기고, 어르신들 취향에 맞는 나물밥도 자주 올린다. 주3회 생선이나 고기, 입맛 없는 여름에는 주1회 비빔밥, 기력이 쇠했다 싶으면 전복죽이나 추어탕도 손수 만든다. 14년 동안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점심을 차려낸 노하우에서 나온 지혜다.

"식사하는 모습이나 표정만 봐도 알죠. 가장 좋아하시는 게 잡채와 녹두빈대떡인데, 손 많이 간 만큼 딱 알고 잘 드세요. 정성이 들어가야 맛이 나는 거죠."
1인 2,500원이라는 타이트한 비용으로 매일 밥도 내놓고 특식도 차려드려야 하니 고민이 깊다. 손수 멀리까지 구하러 다니고, 재료를 일일이 손질하는 것도 마다 않는 이유다.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서 혼자 울기도 했어요. 이제는 봉사자가 갑자기 안 나오면 어르신께 부탁해요. 마늘 좀 까주세요, 고구마순 손질해 주세요, 말씀드리면 재미있게 해주시죠."

원기89년 4살 아이를 업고 교당 봉사 차 와봤던 급식소. 바로 "내가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3개월만에 맡게 됐다. 그 후로 한번도 후회하거나 힘들지 않았다는 정은경 교도.

"당시엔 아이가 어려서 짧은 근무시간 때문에 선택한 건데, 점차 애들도 커서 손이 덜 가니 월급을 더 주는 종일 일로 바꿔볼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어르신들 얼굴이 떠오르면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거예요. 생활비 때문에 몇 번 생각하다가도 안돼서, 이제는 '열심히 하다보면 살 길 주시겠지' 생각하고 마음 접었어요."

밥 한끼라도 부모님 모시듯 정성 다하는 데는 태어날 때부터 이어온 신앙의 힘이 컸다. 터울 많은 남매 출산과 양육으로 잠시 멀어져 있기도 했지만, 결국 다시 교당을 찾게 해준 것도 아이들이었다.
"이사 온 옆집이 목사님 집이라 어울리다 여름성경학교에 가더라고요. 안되겠다 싶어 애들 업고 교당을 찾아갔죠. 애들 신경쓰다보니 공부는 어려워도, 실지불공만큼은 잘해야겠다 싶어 봉사하다 급식까지 맡았네요."

급식소 벽에 붙은 '사사불공' 글씨 앞에서 늘 마음을 다잡고 일을 시작하는 정은경 교도. 그에게 급식은 일이 아닌 복 지을 기회요, 일과 속 공부할 소중한 선물이다. 또한 어르신들에게 밥이 곧 원불교요, 자신이 바로 원불교라는 생각에 표정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단다.
"누가 열반하셨다 하면 조문도 해요. 보통 어르신들은 서로의 상에 잘 안 가시니, 저라도 가서 천도축원 해드려야지요. 원불교인이라면 당연히 누구라도 그랬을 테니까요."

순하고 오롯하게 생활 속 적공을 해나가는 그의 신앙의 영향은 아들에게도 미쳤다. 어머니(김정인 교도)가 출가하려다 못한 아쉬움을 그의 아들 조형철(영산선학대 3학년) 예비교무가 이뤄가고 있는 것.
"기쁘면서도 긴장도 돼요. 아직 공부할 것도 갚을 것도 많은데 언제 훌륭해지나 싶고요. 갑상선, 무릎 수술할 때 수원교당 교도님들이 도와주셨거든요. 그러니 은혜도 갚아야 하지만, 건강 지키는 공부도 해야겠죠."

기다리는 어르신들 덕분에 십수 년을 여름휴가 한번 못 가보고도 늘 즐거운 정은경 교도. 명절에도 당일 하루 빼고는 내내 정성으로 끼니를 지키는 그야말로 일마다 불공의 산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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