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신우 교도/원불교환경연대 탈핵정보연구소장
▲ 김신우 소장이 차량에 부착하고 다니는 탈핵홍보물.
남아도는 전기, 급증하는 위험…탈핵 위한 광화문 1인 시위
몇십 년 쓰고 몇십 만 년 남기는 핵쓰레기, 이제 그만 탈핵

'핵발전소 이제 그만'이라는 문구를 차 양쪽에 붙이고, 광화문에서 6월 말부터 피켓을 들기 시작했다. 1인시위는 시비 걸어오는 이와 맞장도 떠야 한다. 영광, 성주, 히로시마 등지를 다니느라고 8월엔 광화문에 못 섰지만 마음은 '탈핵' 콩밭에 있다. 쑥스러움도 감수하고 광화문 복판에 서는 이유는 그야말로 핵발전소 이제 문을 닫자고 호소하기 위해서다.

지난 6월19일 부산 고리핵발전소 1호기 영구폐쇄 기념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했다. 1969년 1천여 명의 고리 주민을 이주시키고 1978년 3·4호기 기공식을 겸한 1호기 준공식에 참여한 지 40년 만의 일이다. 고리1호기는 문을 닫지만 고리를 떠나 인근으로 옮겨 살았던 주민들은 신고리 5·6호기가 증설되면서 또 다시 핵발전소가 보이는 옆으로 이사를 했다. 48년 전에 비하면 보상이 늘었지만 어업권은 완전히 소실되고 가까이에 농토도 없는 동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1호기 준공식에서 '이제 원자력국 대열에 들어서서 과학한국의 모습을 자랑'하게 됐다며 '원자력시대'를 선언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1호기 폐쇄식에서 이제 '탈핵시대'를 가야한다며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여부는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박 전 대통령은 23번째 원자력국을 만들었지만 문 대통령은 30개국 중에서 8번째 탈핵선언을 했다. 시대가 바뀌었다. 그런데 좀 짚어야 할 사항들이 있다.

핵발전 증설 여부를 '공론화'로 결정

8월25일부터 2만 명에게 전화로 신고리5·6호기 건설 찬반을 묻고, 시민참여단 5백 명을 모집한다. 시민참여단은 학습과 토론도 하며 보고서를 만들게 된다. 사실 신고리 5·6호기 중단은 문대통령 대선공약 사항이었으나 핵산업계의 반발이 심해 '공론화'로 후퇴한 것이다. 5·6호기가 건설되면 한국 전체에서 29·30호기가 된다. 핵산업계는 '전문가'가 아닌 시민에게 맡긴다고 반발하고, 탈핵을 염원하는 이들에게는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원성을 샀다. 그러나 이제는 카운트다운에 들어가 당장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를 위한 행동이 시급해졌다.

대통령의 탈핵선언은 탈핵시대를 열었다고 하기엔 민망하리만치 더디다. 수명연장은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미 공정율 90%를 넘어선 신고리4호기, 신한울 1·2호기 건설은 중단시키지 않겠다고 취임100일 기념연설에서 언급했다. 핵발전소를 모두 멈추려면 2079년에나 가능한 일이다. 너무 까마득한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 이럼에도 핵산업계는 성급한 결정이라고 보수언론을 통해 당장 전기요금이 오르고 전력 수급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거짓을 퍼뜨리고 있다.

냉난방과 핵발전은 상관관계가 없다

7월 한 달 동안 발전소 설비 예비율은 34%나 됐다. 예년 못지않게 더웠던 올여름에도 전력예비율은 두 자릿수를 유지했다. 원전하나줄이기 정책을 추진하는 서울시는 전력자립율을 높이고 있고 국가 전체로도 작년 대비 전력수요 증가는 1% 정도였다. 늘 전력 사용 정점을 의식해 발전소를 증설만 해왔다. 특히 초대형으로 짓는 핵발전소는 정지에 대비해 늘 다른 백업용 발전소와 함께 짓다보니 전력 설비 전체를 급증시켜 왔다. 물가가 급등하던 80년대에 핵발전소를 너무 많이 지어서 전력이 남아돌아 문제였다. 야간노동으로 심야 전력 소비를 권장하고 파격적인 요금으로 심야전기를 팔게 됐다. 전력을 만들기만 하면 1순위로 전력을 사주는데 핵사고의 책임과 핵쓰레기 처분의 책임은 지지 않는다. 이토록 무책임한 국영기업이 세상에 또 있을까.

'핵발전소 이제 그만!'을 요구하는 나와 달리 광화문 건너편에서는 '탈핵하려면 에어컨은 꿈도 꾸지마'라는 문구를 세워놓은 사람도 있었다. 나도 핵발전소 문제를 안 첫해 여름에는 선풍기를 틀기조차 주저했었다. 그러나 냉난방과 핵발전은 상관관계가 없다. 핵발전은 위험해서 출력조정을 하지 못한다. 야간에도 필수적으로 필요한 기저전력만 담당한다. 멈춘 핵발전소를 다시 돌려 발전을 하려면 며칠이 걸린다. 특정시간대에 전력수요가 급증하면 발전 시작과 멈춤이 용이한 가스발전소를 돌려 공급한다. 버터를 자르는데 전기톱 들고 설치거나, 강아지를 산책시키는데 탱크 몰고 나서는 이가 있겠는가? 에어컨과 핵발전소를 연결하는 이를 두고 자주 쓰는 표현이다. 게다가 1년에 며칠 몇 시간의 피크일 때만 수요조절 시스템으로 분산시키면 기저부하용으로 쓰는 핵발전소가 모두 멈춰도 전력이 남는다.

▲ 탈핵의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원불교의 탈핵운동의 상징물이 된 노란우산들.
세상에서 가장 기피당하는 물건

경주 월성핵발전소 마을 주민들이 핵발전소 홍보관 마당에 집단이주를 호소하는 텐트를 설치한 지 3년이 넘었다. 모든 주민의 소변에서 삼중수소가 검출되어 충격을 받은 주민들이 농성을 시작했지만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더 늘어가고 있다. 월성핵발전소 1~4기는 경수를 감속재로 쓰는 다른 발전소와 달리 중수를 쓴다. 천연 우라늄을 연료로 매일 12다발의 핵연료를 교체하고, 핵발전소 전체 폐핵연료의 절반을 차지한다. 정부는 경주에 중저준위 핵폐기장을 결정하면서 2016년 이전에 폐핵연료를 반출하겠다고 약속했다. 폐핵연료가 8백톤이 넘어가는데 반출은커녕 지난해 4월 168,000 다발의 폐핵연료 저장시설 추가 건설을 신청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심의 중에 있다.

핵연료는 분열하면서 열을 내 물을 끊여 증기를 만들고 증기는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온도가 너무 올라가면 위험하니 초당 70톤 정도의 물로 식혀줘야 한다. 그 많은 물을 당기려니 바닷가에 세우고 펌프는 거세게 돌려야 한다. 전기를 만드느라 쓰는 전기와 송전로스를 합하면 생산전력 10%를 훨씬 웃돈다. 화력발전소 같이 연기 나는 굴뚝이 없다고 온난화에 도움이 된다고 선전하지만 그야말로 동해는 초대형 핵발전소가 데우고 있다.

폐핵연료는 세상에서 가장 기피당하는 물건이 된다. 원자로에서 나올 때도 너무 뜨거워 물속을 이동해 초대형 수조에 담겨 5년 정도는 기다려야 하고, 육상에 건식 저장되다가 다시 포장되어 캐니스터라는 스텐용기에 담겨 '어딘가'로 수송되거나 그 자리에서 10만년을 멀쩡하게 버텨야 한다. 단군할아버지와 우리 세대의 세월이 스무 번도 더 되풀이되어야 하는 시간이다. 핵발전을 선택해 몇십 년 쓰고 몇십만 년에 걸쳐 핵쓰레기를 남기는 이 극악한 일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가.

발전소 울타리 경계마을의 삼중수소 검출이 증명하듯 주민들은 일상적인 방사능 피폭을 당하면서 사고 위험까지 안고 살고 있다. 그 불안은 지난해 9월 경주지진 때 후쿠시마 사고를 연상케 했고 아직까지도 하루 두세 차례씩 이어지는 여진은 핵사고 공포를 떨칠 수 없게 했다. 대통령 약속대로 월성1호기를 폐쇄해도 5기는 마을에 남는다. 요동치는 땅 위에서 원자로가 보이는 마을에서 사는 심사가 오죽할까, 절로 한숨이 깊어진다. 핵발전이 멈추면 일자리가 감소하고 경제에 악영향이 있을 거라는 윽박도 다 거짓이다. 독일은 한국보다 훨씬 열악한 햇살 조건에서 재생에너지를 선도하고 있다. 핵발전소보다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소 일자리가 훨씬 더 많고 안정적임을 독일이 보여줬다.

우리의 탈핵감수성이 더 높아지고 핵산업계 카르텔을 부수면 핵발전 제로 선언이 62년 후가 아니라 당장 내일도 가능하다. 한 번의 대형사고에 나라가 거덜날 수 있고, 핵쓰레기 양산과 피폭노동을 강요하고, 지역주민은 불안에 떨게 하다. 앞으로 핵쓰레기 처리에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갈지 아무도 모르는데, 어떻게 핵발전이 싸고 깨끗한 에너지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핵발전소 이제 그만!'은 너무나 당연하다.

▲ 광화문광장에서 '핵발전소 이제 그만!'1인 시위 피켓팅을 하는 김신우 소장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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