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 전무출신 한의사로서의 삶

생·병리 진단의 출발, 마음 상태 살피는 것 중요
에스페란토 회장 역임, 10년간 전 세계 다녀

최근 대한민국 사람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외래어가 '스트레스'라는 조사가 나왔다. 스트레스와 우울증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만큼 흔하고 당연한 마음의 병이 됐다. 직장인 10명 중 8명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현재, 사람의 생·병리 진단의 출발이 '칠정(七情)손상' 즉, 마음의 상태에 달려있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역전보화당 한의원에서 38년간 전무출신 한의사로서 환자들의 몸과 마음을 치료해 온 영산 김상익(寧山 金詳益) 원로교무. 유난히도 청명한 하늘을 자랑하던 1일, 익산성지에서 그를 만났다.

"원기55년 학군장교를 전역한 저는 서울사무소에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반백년기념대회가 끝나고 서울회관 건립을 추진하는 중에 '남한강사건'이라는 교단적 경제위기가 발생했고, 이를 수습하기 위한 수습위원회가 발족됐죠. 저는 그때 당시 실무책임자였던 예산 이철행 종사를 모시고 수습위원회 일을 하게 됐고,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당시 이리보화당 부이사였던 예산 종사께서 한의대에 들어가라고 권유하셨어요."

대종사의 가르침을 통해 영생을 성불제중 하겠다는 일념으로 전무출신을 선택한 그는 한의대에 진학하는 것을 망설인다. 3개월간의 고심 끝에 결국 한의대에 지원, 원기65년 졸업과 동시에 역전보화당 한의원에서 근무하게 됐다.

"역전보화당 한의원은 당시 시내 중심가에 개업한 지점이라 굉장히 붐볐고, 볼펜 심을 매일 갈아끼워가며 처방전을 쓸 정도로 많은 환자들이 한약을 복용했습니다. 우리 교법의 주체가 마음공부인 것처럼, 한방치료의 출발은 마음의 상태를 살피는 것에 있습니다. 따라서 한방치료는 약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환자의 마음 안정을 중시합니다. 저는 의욕과 사명감이 강해 젊음을 보화당에 바쳤고, 교무로서 환자를 대하면서 느끼는 보람도 컸습니다. 교화현장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함께함으로써 간접교화자의 긍지를 가졌습니다."

38년간 한의사의 길을 걸으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일화를 쏟아낸 김 원로교무. 그 중 신부전증을 앓던 할머니와 결혼을 앞둔 한 아가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그다.

"어느 날 김제에서 오신 할머니 한 분이 있었어요. 신부전증을 앓고 계셨는데 옆에 있는 한의원을 찾아오셨다가 휴진하는 날이라 우연히 보화당 한의원에 오게 됐죠. 그런데 할머니가 문을 열고 들어와 저와 이야기를 몇 마디 하시더니 '내가 살려고 여기 왔는가 보다'라면서 진료를 받고 가셨어요. 그 뒤로는 며느리가 가까운 한의원에서 약을 지어다 줘도 보화당 약이 아니라면 절대 복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한가지는 결혼을 앞둔 아가씨였는데, 결혼비용을 잃어버리게 돼 화병과 우울증이 생겼습니다. 결국 대인기피증까지 왔는데 한·양방 치료를 일체 거부하다가 어머니의 간청으로 보화당에 오게 됐죠. 계속되는 상담으로 마음을 열었고, 치료를 한 뒤 건강하게 됐습니다. 이럴 때 교무로서 한의사가 된 것에 보람을 느낍니다."

김 교무는 한의학뿐만 아니라 에스페란토 보급에도 힘썼다. 20여 년전 박용신 정토를 통해 에스페란토를 접하고, 원기90년 에스페란토 회장을 역임, 약 10년간 전 세계를 오가며 원불교와 에스페란토 알리미 역할을 자처했다.

"오래 전 정토가 에스페란토를 공부하는 것을 보고 '차라리 영어 공부를 해서 필요할 때 나를 도와주면 좋을 텐데…'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상주선원에서 합숙 훈련을 하게 됐다고 교무로서 인사를 오라고 했습니다. 그 날, 여러 강사들이 자발적인 강의 봉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큰 인상을 받게 됐고, 초보 과정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에스페란토 공부를 시작한 그는 언어를 창안한 자메호프 박사의 평화·평등·우애 사상이 교법과 상통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에스페란토가 교단의 세계화에 꼭 필요한 언어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결국 원기88년 원광대학교 에스페란토 교양강좌를 개설했다.

"회장을 하는 동안 원불교 에스페란토회가 국제부 산하단체로 등록이 되어 교단적인 조직체계를 갖췄고, 매년 개최되는 세계대회에서 분과활동을 하게 됐습니다. 10여 년전부터는 일본의 오모또 교단과 교류를 시작해 지난해 100주년기념대회에 본부장이 직접 축하참석을 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18개국 120명의 서울에스페란토 세계대회 참가자들이 원불교성지순례를 오기도 했어요."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세계는 '에스란투요', 에스페란토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에스페란티스토'라고 한다. 에스페란티스토들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 만나도 친근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김상익 원로교무는 에스페란토가 미래를 향해 전진하는 언어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현재 교무로서 퇴임을 했지만 월요일-목요일에 역전보화당 한의원에 나가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야간에는 원호스피스병원 당직의사로 근무하기도 합니다. 저는 에스페란토가 더 큰 발전을 이뤄 세계평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단이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해 에스페란토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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