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도하 교무/문화사회부 원불교콘텐츠랩
21세기를 '문화의 세기'라고 규정하려는 시도와 이에 대한 논쟁들이 있다. 20세기 끝 무렵 등장했던 '문화산업' 이라는 표현은 "문화도 돈이 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제조업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수익성이 있다"는 일확천금의 기대감으로 인해 촉발됐고, 21세기에 들어서도 같은 이유로 더욱 확산되는 이슈다. 산업적으로 과열된 기대감은 자생적이고 건강한 문화를 왜곡시키고 기형화시킨다.

거의 모든 조직과 활동에서 손쉽게 소비되는 '문화'라는 용어는 여전히 충분한 사회적 합의 없이 사용되고 있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핵심 코드로 부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그 이면에 다분히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의도성이 깔려 있기 때문에, 다가오고 있다는 그 '문화의 세기'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보다는 의심과 화두를 통해 바라봐야 한다.

문화 또는 문화의 세기에 대한 사회적 논쟁에 끼어들지 않더라도, 힘들고 바빴던 백년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가장 먼저 추스러 볼 것도 바로 '우리의 문화는 무엇인가' 또는 '어떠해야하는가'라고 본다. 정치·경제적 효과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나 마스터플랜 같은 보고서의 첫머리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불가피하게 1세기와는 전혀 다를 2세기 원불교의 모습과 그에 대한 공의를 모으는 논의의 첫 걸음도 여기에서 시작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불교의 문화를 핵심적으로 관통하는 키워드, 핵심코드는 뭘까. 아직 형성되지 않았거나 어쩌면 소태산과 제자들에 의해 이미 굳건히 형성되었다가 사연 많았던 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내면서 강력한 문화유전자를 놓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원불교교전〉이 있다. 종교사에 유례없이 교조께서 집필을 주도하고 감수까지 했던 오리지널한 텍스트가 존재한다. 교전에서 나타나는 우리의 문화 키워드로 필자는 먼저 융합과 겸전의 디테일에 주목한다. 아래는 원불교 교전에 사용된 아홉 가지 융합과 겸전의 키워드의 사용빈도를 정리한 것이다.

병진(96건) : 삼학·자타력 병진, 쌍전(41건) : 영육쌍전, 일여(38건) : 동정일여, 병행(30건) : 이사병행, 겸전(23건) : 내외겸전, 통합(22건) : 모든 교리를 통합 활용, 병용(1건) : 청탁 병용(竝容) 하시는 포용, 통섭(1건) : 종교 진리 통섭, 융합(1건) : 원중 융합.

일반 사회에서도 많이 사용되는 용어인 통합, 융합, 통섭 등의 표현 이외에도 병진, 쌍전, 일여, 병행, 겸전, 병용 같은 디테일들이 교전 곳곳에, 교리 근간에 뿌리내려 있다. 융합의 코드가 이 시대를 주도하는 것은, 서양 정신사나 과학문명이 보여준 그 모든 이분법적 투쟁과 무관하지 않다. 정신과 물질, 영과 육, 개인과 사회, 절대와 상대, 관념과 경험 등 쪼개질 대로 쪼개진 세상은, 이질적인 것들의 결합이라는 치유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 아닐까.

그러나 통합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것은 또 다른 오류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오랜 인류역사를 통해 어렵게 획득한 개별성이 무시되고 전체성만이 강조된다면 단순한 오류를 넘어서는 심각한 사태를 만나게 될 수도 있다. 통합의 딜레마는 개별성과 심화를 침해한다는 것이다. 개별성과 심화를 전제로 하지 않는 무조건적 통합이나 융합은 폭력적이다.

여기에 소태산과 원불교사상이 품은 융합과 겸전에 대한 디테일이 요구된다. 앞에 제시된 아홉 가지 키워드는 교전을 통해 쓰임이 다르고, 방법론적 접근도 다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이 단어들의 정확한 의미조차 모르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이 디테일한 용어들의 차이를 이해하고 개인과 사회에 적용하고 활용할 때 시대의 꼬이고 꼬인 문제를 풀어가는 실마리에 다가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콘랩 활동의 기본 방향도 여기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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