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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 칼럼] 교화 끝없는 화두다
[교무 칼럼] 교화 끝없는 화두다
  • 강문성 교무
  • 승인 2017.09.08
  • 호수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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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문성 교무/동래교당
법회의 흥을 돋우는 데는 음악이 큰 도움
대소유무에 토 못 떼면 모래로 밥 짓는 격

며칠 전 교구 출가교화단 항단 모임으로 지리산 쌍계사 계곡을 다녀왔다. 좋은 명산이고 영산이다. 대한민국이 참 좋은 나라다. 각처를 두루 돌아다닌 한 사람이 대종사님을 뵈옵고 금강산과 대종사님을 찬탄해 마지아니함에 대종사 말씀하시였다. "그대가 어찌 강산과 인물만 말하는가. 고금 천하에 다시없는 큰 도덕이 이 나라에 건설되는 줄을 그대는 모르는가." (<대종경> 실시품 44장)

이렇듯 좋은 나라가 지금 사드 정국으로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국론 분열과 전쟁의 위험 속으로 빠져들어 안타깝다. 우리의 목표가 사드가 아니고 평화로운 남북통일이기에 잘 해결되어 통일이 앞당겨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학생시절 어느 교회 성가대의 환상적인 합창소리에 감동을 받고 그때 막연히 꿈꾸던 음악교화의 한 단면이 오늘의 동래교당 전문성악인들로 구성된 원사운드 중창단과 리틀 원사운드(어린이 25명)라 할 수 있다. 약 30여 명 정도 일반교도 합창단을 법회와 함께 운영해보려는 꿈은 잠시 아쉬움으로 남겨둔다.

법회는 흥이다. 흥을 돋우는 데는 음악이 큰 도움이 된다. 교도님들은 일주일동안 지친 심신을 편안히 쉬어 가는 법회를 원한다. 꼭 합창단이 아니더라도 쉽게 즐길 음악거리를 준비하면 어떨까! 동래교당 한 사례로, 법회에 전문성악인 1명을 고정 출연시키고 더러 몇 명이 성가 등을 연주하게 하여 마음 편히 감상하게 하고, 약간의 투자를 통해 때론 법회 후 대중가요 음악교실을 열어 흥겨운 시간을 갖고 있다.

교화! 끝없는 화두다. 교화의 대상이 생존한 사람만이 아니라 열반인을 위한 천도의식이 매우 중요함은 다 인지한 사실이다. 동래교당에서 진행하고 있는 임진왜란 희생 영가 천도와 인간에 의해 희생된 영가, 유주무주고혼을 위한 천도의식이 있다. 6·25전쟁 희생영가 일제 강점기 희생전반의 영가와 국가적으로 살 처분된 가축들 그리고 인간의 필요에 의해 살생된 소 돼지 등 가축영혼 천도행사가 사회화 됐으면 한다.

물론 반려동물도 중요한 교화대상이다.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동물 천도를 지내게 하여 자연히 교화로 연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바닷가인 이곳에서는 어혼재(魚魂齋)를 실시하여 지역축제로 발전할 수도 있다. 다만 '어업이 직업인 지역 정서를 어떻게 조화 시킬 것인가'난제이다.

계문의 불살생조항을 생명존중운동으로 승화시켜 사은 윤리와 삼동윤리정신 그리고 사생일신의 우리교법정신을 어떻게 사회화 할 것인가. 어느 한가한 작은 교당이나 또는 일 많고 바쁜 큰 교당에서도 사람, 동물, 유주무주 영혼 천도를 많이 하는 것이 그 답이 아닐까? 과일나무에 거름을 많이 묻어주면 가을에 튼실한 과일을 많이 수확하듯 영혼들을 위한 정성스런 천도의식은 어떤 교화보다 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관상어 중에 코이라는 잉어는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5~8cm 밖에 자라지 않지만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두면 15~25cm까지 자란다. 그러나 강물에 방류하면 90~120cm까지 성장한다. 같은 물고기인데도 어항에서 기르면 피라미가 되고, 강물에 놓아기르면 대어가 된다.

틀(아상)을 깨기가 그렇게 어려웠던가! 석양의 도량 뜰을 거닐며 지나온 세월을 더듬어 본다. 나에 있어 만약 일찍이 이 틀이 깨어졌다면 어항 속에 갇혀 있는 부자유한 작은 나가 아닌 강물에 유영하는 자유로운 삶이 아니었을까. 예비교역자 시절 방학이 되면 대산종사 계시는 곳에 달려가 때론 야단도 맞으며 공부하던 기억이 어느덧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대산종사께서는 "대소유무의 이치에 토를 못 떼고 수행하는 것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아서 항상 모래밖에 안 된다. 자기 역사를 한번 바꾸기로 하면 자기 안에서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하셨다. 내가 바뀌지 않고 어떻게 남을 바꿀 수 있을까.

두려워해야 할 일에 두려워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일에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는가. 교화에 적당한 긴장은 있으되 두려워할 것은 없지 않을까. 진정 두려운 것은 모래로 밥을 짓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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