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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 공부 서품 1장. 대종사의 깨달음
대종경 공부 서품 1장. 대종사의 깨달음
  • 박성은 교무
  • 승인 2017.09.08
  • 호수 1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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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은 교무/와룡산수련원
박성은 교무

 서품은 소태산 대종사의 깨달음의 내용과 가르침의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는 법문이다. 원불교 교법의 특성과 공부 방법 그리고 교화의 방향까지 서품에서 다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대종사의 포부와 경륜이 담긴 설계도이니, 대종사의 관리와 감독이 있는 건축 현장을 보는 듯하다. 따라서 원불교 공부인들은 서품의 설계도와 건축과정을 통해 대종사가 우리에게 살게 해 주고 싶었던 집의 모습을 확인해야 한다.

서품 1장은 대종사의 깨달음을 요약한 내용이다.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라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본이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일체 생령까지도 포함을 시켜 가족의 범위를 키웠다. 일원은 우주만유의 본원이요, 제불제성의 심인이며, 범부중생의 성품이니, 참 나의 모습이 일원으로 같다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와 예수, 대종사가 다 같은 본이요 말씀의 근원이 같다는 것이다. 대종사께서 깨달은 내용이 없던 것을 새롭게 만들어 낸 발명이 아니라 있던 것을 찾아 낸 '발견'임을 알 수 있다. 원기원년(1916) 4월28일에 대종사께서 스스로 발견 하신 것이다.

발견 하시고 나니, 모든 종교의 교리와 가르침이 이름과 모양 그리고 방법이 다르긴 하지만 같은 원리를 가르치고 있음을 확인했다. 대종사의 이러한 발견! 깨달음이 우리 각자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내가 대종사와 본이 같다고 해서 대종사가 지은 집에 주인으로 살 수는 없다. 부잣집에 벨을 누르며 "우리가 본이 같으니, 내 집처럼 사용하겠습니다"고 말하거나 또는 마트에 가서 아무 물건이나 "가족이니, 필요해서 가져갑니다"라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인과의 원칙을 적용받기 때문에 환경에 차이가 생긴다. 근본적으로 하나의 본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현실에 나타난 차별세계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무엇이 하나라는 것인가? 영원한 세상과 참 나의 발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죄 주고 복 주는 것은 하느님, 부처님, 일원상이 하는 것이 아니다.

참 나는 이미 죄와 복이 가득한 보물의 집이다. 그 집을 발견하고 잘 사용하면 되는 것이니 따로 무엇을 구하거나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보물의 집을 발견하여 지키고 사용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 보물의 집이 잘 보이지 않는가? 일원으로 본은 같지만 육근을 작용할 때 방법이 달랐기 때문에 부처와 중생의 결과가 달라진 것이다. 부처와 중생은 육근을 작용할 때의 차이가 있다.

대종사의 발견! 깨달음의 내용은 참 나의 발견과 인과를 굴리고 사는 마음기술을 알려줬다. 인과는 마음의 결과로 바라보아야 한다. "무슨 업을 지어서 내가 이리도 힘이 들까?" 라고 하는 관점은 어두운 인과의 인식이다. 그러나 "이 경계는 무슨 의미가 담겨 있을까?"라고 공부의 기회로 삼게 되면 업의 힘은 전환이 일어난다. 인은 같을 지라도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부처나 중생이나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니 선택만 남아 있을 뿐이다.

/와룡산수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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