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응주 교무/법무실

육신과 마음, 동과 정이 중도에 맞아야
조급한 마음으로는 큰 도를 이룰 수 없어


有沙門이 夜誦經할새 其聲이 悲緊하고 欲悔思返이어늘 佛呼沙門問之하사대 汝處于家하야 曾何修爲오 對曰- 恒彈琴이니이다. 佛言- 絃緩하면 何如오 曰不嗚矣니다. 絃急하면 何如오 曰聲絶矣니이다. 急緩이 得中하면 何如오 曰諸音이 普矣니이다. 佛告沙門하사대 學道猶然하야 執心調適하야사 淸淨安樂하야 道可得矣니라.

"한 제자 있어 공부를 급히 하고자 하여 밤새 경을 외울새 필경에 기운이 다하여 그 소리가 매우 가쁘고 장차 퇴보할 생각을 내거늘 부처님께서 그 제자를 불러 물으시되 네가 집에 있을 때에 무엇을 많이 해 보았느냐. 대답하되 거문고를 많이 타 보았나이다. 거문고 줄이 늦으면 어떠하더냐. 소리가 나지 않더이다. 또 거문고 줄이 된 즉 어떠하더냐. 소리가 끊어지더이다. 완급이 골라 맞은 즉 어떠하더냐. 그러면 모든 소리가 다 골라 맞더이다. 부처님께서 그 제자에게 말씀하시되 도를 배우는 것도 또한 그러하여 너무 급히 하지도 말고 너무 게을리 하지도 말고 오직 중도로써 마음을 골라 써야만 몸에 병듦이 없고 마음에도 병듦이 없어서 청정 안락하여 마침내 도를 얻으리라."

〈사십이장경〉 34장은 공부인이 수행을 할 때 의욕만 앞세워 몸을 돌보지 않는 무리한 정진을 하거나, 긴장감 없이 나태하게 공부해서는 뜻을 이룰 수 없다는 말씀이다. 거문고를 연주할 때 줄의 완급이 골라 맞아야 모든 소리가 잘 나듯 육체와 마음, 동과 정이 함께 아우르는 중도의 수행만이 도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의 법문이다.

야송경(夜誦經)은 밤에 경을 읽는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경(經)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설법하는 광경을 담고 있는 유교경(遺敎經)을 말한다.

기성비긴 욕회사반(其聲悲緊 欲悔思返)은 그 소리가 슬프고 조급하여서 출가를 후회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낸다는 뜻이다. 출가하여 수행을 하는 것이 늘 기쁘고 즐거울 수만은 없다. 때로는 하늘을 뚫을 것 같은 신심과 정진심이 솟구치다가도 어떤 때는 끝 모를 추락의 심경이 되어 자기 몸 하나 돌아볼 여유가 없어 퇴굴심을 내기도 한다. 이런 경계가 수행 도중 당연히 찾아온다는 것을 알아야만 긴 호흡으로 공부를 할 수 있지 그렇지 않고 공부가 늘 전진만 한다고 생각하면 이는 철이 덜든 수도인이다. 그래서 〈대종경〉의 말씀처럼 천지의 일기도 어느 때에는 명랑하고 어느 때에는 음울한 것과 같이, 사람의 정신 기운도 어느 때에는 상쾌하고 어느 때에는 침울하며, 주위의 경계도 어느 때에는 순하고 어느 때에는 거슬린다.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은 그 변화를 겪을 때에 수양의 마음이 여여하여 천지와 같이 심상하나, 이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그 변화에 마음까지 따라 흔들려서 기쁘고 슬픈 데와 괴롭고 즐거운 데에 매양 중도를 잡지 못하므로 고해가 한이 없다고 했다.(〈대종경〉 인과품 6장)

학도유연 집심조적(學道猶然 執心調適)은 도를 배우는 것도 마땅히 그런 것이니 마음을 잡아 알맞게 조절하라는 말씀이다. 집심(執心)이란 외경에 흘러가지 않게 마음을 잘 붙잡음을 의미한다. 정산종사도 집심공부란 "염불 좌선을 할 때와 일체 때에 마음을 잘 붙잡아 외경에 흘러가지 않게 하기를 소 길들이는 이가 고삐를 잡고 놓지 않듯 하는 것이다"(〈정산종사법어〉 경의편 65장)고 했다.

청정안락 도가득의(淸淨安樂 道可得矣)는 마음을 너무 피곤하게 하지도 말고 너무 게으르게 하지도 말아서 맑고 조촐하고 편안하게 하면 도를 가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이 설산에서 6년 고행을 한 뒤 "육체를 의식적으로 괴롭힌다는 것은 그만큼 육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육체에 관심을 두기보다 차라리 마음을 고요히 바르게 가누는 수행이 오히려 육체의 정화까지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즉, 몸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으로는 해탈할 수 없음을 간파하고 네란자라 강가에서 목욕했다. 수자타가 공양하는 우유죽을 드신 뒤 보리수하에서 입정해 결국에는 도를 깨치게 된다. 이는 부처님은 한쪽에 치우친 수행으로는 도를 깨달을 수 없고 오직 중도의 수행만이 가능함을 실제로 보여준 것이다.

소태산 대종사는 좌선에만 전력하여 수승화강을 조급히 바라다가 두통을 얻게 된 제자에게 "무릇 원만한 공부법은 동과 정 두 사이에 공부를 여의지 아니하여 동할 때에는 모든 경계를 보아 취사하는 주의심을 주로하여 삼대력을 아울러 얻어 나가고, 정할 때에는 수양과 연구를 주로하여 삼대력을 아울러 얻어 나가는 것이니(하략)"라고 말했다.(〈대종경〉 수행품 40장)

어찌 성불제중의 서원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큰 공부를 조급한 마음으로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큰 도를 이루고자하는 사람은 짧은 시일에 속히 이루기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잦은걸음으로는 먼 길을 걷지 못하고, 조급한 마음으로는 큰 도를 이루기 어려우니 허리끈 턱 풀어놓고 공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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