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석 광고연구소 대표는 교리의 단편적인 메시지 힘과 교전 단어의 상용화로 원불교 홍보를 해야 한다고 했다.

[원불교신문=나세윤 기자]  "불리하면 판을 뒤집어라", "룰의 노예가 되지 말라", "나의 주인은 바로 나다"

한국사회 학연, 지연의 사다리를 거침없이 걷어차 버리고 새 길을 개척해 온 이제석 광고연구소 대표. 그는 〈광고천재 이제석〉이라는 책으로 일약 스타로 등극했다. 아니 그 이전 지방대학 출신이라는 편견을 '판 뒤집기'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며 우리사회에 혜성처럼 등장했었다. 그는 계명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자신만만하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뉴욕 비주얼아트스쿨에 입학한 후 6개월 만에 세계적인 광고 공모전에서 최고상을 받았고, 1년 동안 국제 광고 공모전에서 29개의 메달을 획득하는 등 세계 광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내 기업이나 광고업계는 자연스럽게 그를 주목하며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한국에 돌아와 '착한 일을 못되게 하자'는 모토로 공익광고를 전문으로 하는 이제석 광고연구소를 설립한다.

그가 만든 대표적인 공익광고는 물 부족, 반전운동(뿌린대로 거둔다), 안전운전, 청년 취업난 해소캠페인 등 누구나 한번쯤은 봤던 기발하고 재치 넘치는 광고들이다. 그는 "뉴욕에서 만난 문명은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다. 빈민층과 살았던 그 날 것들의 경험은 내 광고작업의 원천이다"며 "공익광고는 현대문명에 대한 내 다름의 성찰이고, 세상을 광고로 바꿔보겠다는 신념에서 나온 행위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는 은덕문화원에서 진행됐고, 이공현 원장이 함께했다.

- 광고회사를 경영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여러 가지 장르의 광고를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공익광고로 내 이름이 더 알려졌다. 좋은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개척한 게 공익광고인데 10년째 경영하다보니 회사의 인지도도 크게 높아졌고, 공익광고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 같다. 회사 경영은 개인 성향과 장점을 최대한 살려 운영한다. 내 성격이 자상한 편도 아니고, 호흡도 짧아서 단기간 프로젝트가 나에게 맞는 것 같다. 어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관련 인재를 모아 3개월 정도 집중적으로 모든 것을 불사른다.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을 내가 가장 잘하고 능수능란하다. 육상으로 보면 마라토너보다는 단거리 선수가 체질에 맞다."

- 창작의 영감은 어디에서 얻는가.

"내 일상생활은 대단히 평범하고 규칙적이다. 보통 저녁12시에 자고 아침8시 정도에 기상한다. 회사에서의 작업도 파격적이지 않고, 아주 일상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편이다. 아침 기상 이후 멍 때리기 30분을 굉장히 소중히 관리하는데, 의식 없이 지켜보면 몇 달 동안 풀리지 않았던 문제가 해결되곤 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손짓할 때 바로 메모장에 기재한다. 그때 떠오른 생각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긴급하게 메모를 해 둔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광고 아이디어는 대부분 고객들에게서 얻는 것 같다. 나는 단지 파이프 혹은 브릿지 역할만 할 뿐이다. 내 광고는 결국 의뢰인의 절심함, 기발함에서 아이디어가 톡톡 튀어 나온다고 봐야 맞다. 역할의 비중을 정리하면 나와 회사는 30%, 의뢰인은 70%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통역자로서 역할을 할 뿐이다. 내가 아무리 좋은 광고안을 가지고 가도, 의뢰인이 흡족해 하지 않으면 그 제안은 실현되지 못한다."

▲ 이제석 광고연구소 반전캠페인.

- 아이디어가 생명인 광고업계에서 휴식은 매우 중요하다. 휴식의 노하우를 소개해 달라.

"광고 작업 자체는 늘 재미있고, 구름 위에 있는 것처럼 즐겁다. 작업 자체로는 스트레스를 받아본 적 없다. 하지만 인간사회에 맞춰 사는 것이 스트레스다. 어른이 될수록 어른놀이가 어렵고 사회인이 될수록 사회인 놀이는 어렵기만 하다. 처세라든지, 서류행정작업, 관공서 인허가, 각종 법률과 격식을 챙겨야 하는 것 등은 태생적으로 어려운 것 같다. 여기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영혼이 맑은 사람들을 만나 힐링한다. 자주 접하는 예술가나 시인, 음악가,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만나 정신의 근육을 키운다. 특히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가치철학과 업의 세계관이 일반인들과 다르기 때문에 영혼이 참 순수한 것 같다. 공무원 중에도 공익심으로 국가 사회 일을 진정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 좋은 영향을 받는다. 좋은 사람들과 작업할 때는 스트레스를 안 받지만 자기 잇속만 추구하는 탁한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사회가 공무원을 더 뽑는다면 자기 것(공부)만 악착같이 해온 사람보다는 사회공헌 정신이 있는 사람 위주로 뽑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성적보다는 적성을 봐야 한다는 뜻이다) 탁한 사람들을 만나면 내 '공장설비'가 망가지는 느낌을 받는다. 내 머리 속에는 엄청난 공장설비가 돌아가고 있는데, 평생 돌릴 수 있는 설비 임에도 빨리 망가지는 것은 우리 업종만의 특성이다. 공익광고 영역을 개척하고 전문으로 해 온 것은 업종의 특성을 고려한 나만의 출구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을 위한 보상이었다. 다른 분야도 치열하지만, 광고업계는 그보다 더하다. 도중에 자살하는 사람부터 우울증,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일에 있어 내 나름의 원칙이 있는데, 너무 많은 일을 맡지 않고, 즐길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내가 체험한 바로는 머리를 비우는 데에는 극한의 육체적인 노동만한 것이 없다."

- 원불교를 접한 느낌이 궁금하다.

"원불교나 불교는 교리 자체가 논리적이고 자유롭다.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내 개인 성향과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원(○)은 완벽한 심볼이다. 광고하는 입장에서 보면 모든 종교를 통틀어서 가장 잘 만든 상징을 가졌다고 본다. 종교적 완벽성을 가진 원은 공익광고 쪽에서는 순환의 원리로 종종 사용된다. 내가 만든 반전 캠페인이나 환경 광고도 원의 순환원리를 적용했다. 뿌린 대로 거둔다, 나와 사회, 나와 환경, 나와 만물의 관계를 표현했고, 표면적인 원이 아니라 순환과 공동체적인 원을 이야기 한 것이다."

- 이 대표가 원불교 홍보 분야를 맡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선 복잡하고 어려운 교리를 짧고 쉬운 문구로 만들어 홍보하겠다. 여기에 고래 한 마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엄청 커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다. 이 고래가 볼거리인지, 먹거리인지, 또 먹는다면 어디서부터 먹어야 할지를 모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보는 순간 기가 질려버린다. 광고는 대중들의 눈높이를 맞추며 갈비살은 갈비살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부위별로 분류한 다음 초밥의 형태로 만들어 제공하는 것이다. 누구나 먹고 싶은 형태로 가공하고 손질해서 대중의 손에 쥐어줘야 한다. 그러면 대중들은 이것도 맛보고, 저것도 맛보면서 '아, 고래라는 것이 이런 거구나'를 연상하게 된다. 그만큼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광고계에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 선배가 고객에게 테니스공 한 바구니를 전부 쏟았다. 그런데 그 고객은 어떤 테니스공도 받지 못했다. 이처럼 자신이 원하는 심오한 철학이나 주제,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을 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광고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고, 보는 순간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차려야 하기 때문에 단순함이 중요하다. 많은 교리를 전해주기보다 단편적인 메시지의 힘이 오히려 강렬하다. 나라면, 작은 단위의 초밥을 많이 만들어 홍보할 것이다.

둘째는 현실세계와의 링크가 필요하다. 교전에 나오는 단어와 용어들은 현재 쓰지 않는 것들이 통용되고 있어서 상용화 작업이 요청된다. 초밥과 김치를 비교했을 때, 초밥은 세계화에 성공한 반면 김치는 편리성, 접근성, 단순함에서 아직 상당히 부족하다. 김치를 초밥으로 바꾸는 작업은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큰 고래를 앞에 놓고 '알아서 드세요'라는 홍보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제석 대표는 계명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뒤 뉴욕비주얼아트스쿨에서 공부했다. 2007년 영건스 국제 광고 공모전 동상을 비롯해 클리오 광고제 광고포스터부문 금상(2009), 뉴욕 원쇼페스티벌 옥외공익광고부문 은상(2009), 뉴욕 페스티벌 그랑프리(2009), 칸 국제광고제 금상(2009),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다.

[2017년 9월 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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