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도은 교도/중앙교구 동영교당
나를 이끈 원불교 마음공부, 용심법
행복은 욕망을 감소시키는 데 있으니
내가 좀 손해 봐도 선심 잃지 않아야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인연'이라는 글자다. '인연' 하면 피천득의 수필이 떠오른다.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춘천에 갔다 오려한다.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 어쩜 이게 인간과의 만남의 인연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럼 종교와의 인연은 어떨까? 나는 종교와의 만남도 분명히 깊은 인연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아무리 좋은 종교라도 나랑 인연이 안 닿으면 강요할 수 없다. 나도 원불교를 다니면서 한때는 종교적 외도도 했었다. 지금도 가끔 외도의 향수가 그리울 때가 있다. 그렇지만 다시 외도를 할 거냐고 묻는다면 이젠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내가 종교적 인연을 원불교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의 제부는 원불교 교무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나의 동생의 남편이 교무인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만남을 내가 이어주었다. 동생은 원불교의 원자도 모르던 시절, 나처럼 대학에서 간호학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의 말을 믿고 인생의 중요한 선택을 하게 됐다. 언니의 제안에 거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느끼고 결혼을 하고 정토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대학교 3학년 때, 아무 연고도 없는데 스스로 원불교를 찾아왔다. 그리고 교전을 읽으면서 원불교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때 나를 이끌었던 단어가 원불교 '용심법'이었다. 마음 쓰는 법, 결국 마음공부가 나를 원불교와의 인연을 끈끈하게 했다. 한참 정체성을 찾고자 했던 청년시절, '용심법'은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내가 이것만 잘 알면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파랑새가 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파랑새는 어디에 있는가. 사실은 자기 마음 안에 있다. 누군가 나에게 왜 종교를 믿느냐고 물으면 나는 당연히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나는 계율을 중요시하는 사람도 아니고 원불교적 색채가 느껴지는 사람도 아니다. 우리 학교(원광보건대) 학생들도 내가 원불교인이라고 하면 놀란 표정을 짓는다. 거기에는 내 나이 40세가 되도록 나는 원불교 문화가 아닌 일반인과 같은 문화 안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런 내가 원불교 종립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 나의 장점이 된 것이다.

나는 나를 이렇게 표현한다. 보여지는 것은 극히 원불교인이 아닌 것 같지만 나는 뼛속까지 원불교인이라고. 결국은 내가 행복하기 때문에 그 확신이 서는 것이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은 욕망분의 재화라고 한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다. 결국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모인 욕망을 감소시키는 데 있다. 그것이 바로 마음공부 또는 <대종경>에 나오는 용심법(用心法)이다. 나는 마음공부 또는 용심법을 굳이 분석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그냥 내 마음과 양심이 향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그리고 사색을 한다. 틈만 나면 머릿속도 비우려고 노력한다. 힘든 일일수록 머리를 가볍게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내가 하고 있는 나만의 용심법이며 마음공부 스타일이다. 나는 학생들에게도 자기만의 스타일과 향기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대종사께서 '나의 법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증득하라'고 한 뜻이 여기에 담겨 있다고 본다.

내가 한동안 종교적 외도를 했을 때, 당시 인문학 공부에 심취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에서는 선한 것이 아름다운 것이고 선한 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했다. 칸트의 의무론적 관념론에서는 선의지를 표명했다. 내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행위를 했느냐가 나타나는 결과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선한 마음으로 행했을 때 그것이 진정한 선이 된다. 교도들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인문학과 함께하는 삶을 추천하고 싶다. 그래야지 인간을 사랑할 줄 알고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들여다보고 만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교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에게 순수하고 선한 마음을 잃지 않으면 스스로가 정말 행복해질 수 있고, 상호가 행복한 인연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종경> 신성품 11장에 대종사께서는 "봄바람은 사(私)가 없이 평등하게 불어 주지마는 산 나무라야 그 기운을 받아 자라고, 성현들은 사가 없이 평등하게 법을 설하여 주지마는 신 있는 사람이라야 그 법을 오롯이 받아 갈 수 있나니라"고 말씀했다. 오늘 하루도 순수하고 예쁜 본인의 마음을 지켜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교도들이 됐으면 한다. 종교적 인연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고, 종교적 인연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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