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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 / 강원교구 횡성교당 함경효 교도
신앙인 / 강원교구 횡성교당 함경효 교도
  • 민소연 기자
  • 승인 2017.10.20
  • 호수 18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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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사랑하는 법 가르쳐준 원불교

아이업고 교당 찾아온 젊은 주인이자 보물
어려운 교당 지키며 마음공부로 자존감 키워

그의 이름 세 글자는 몰라도, '횡성교당'이라고 하면 그의 얼굴을 떠올리는 재가출가 교도들이 많다. 컬이 잘 들어간 긴 머리에 뽀얀 얼굴, 조곤조곤하고 예쁜 목소리 등 어디서든 눈에 띄는 함경효 교도. 그는 횡성교당 터줏대감이자 강원교구 행사 어디서든 빠지지 않는 장한 교도, 그리고 교구에서 손에 꼽는 젊은 주인이다.

"내일모레면 쉰 살인데 십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막내라고 예뻐해 주세요. 예전에는 그게 마냥 좋았는데, 이제는 '내가 칭찬 받을 만큼 역할하고 있나?'라는 책임감이 들어요."

종교를 떠나 일반적으로도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강원도. 더구나 보수적인 성향에 도시간 거리도 멀어 교화불모지로 손꼽히는 곳이 강원교구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젊고 화사한 그의 존재는 자랑거리이자 보물이다.

"입교해보니, 제가 잘하는 건 없고 그저 교무님 발이 되어드릴 순 있겠더라고요. 교무님들을 차로 모셔다 드리다보니 배울 것도 많고 참 좋았어요. 그렇게 한 군데 두 군데 가기 시작하니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생기고 덜 외롭더라고요."

시골 작은 교당들이 더러 그렇듯, 교도 한 둘이 주인되어 오가는 교무를 보좌하고 그 얼굴이 곧 교당이름이 된다. 함경효 교도 역시 횡성교당 입교 후 늘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입교 당시 등에 업혀 있었던 아들 제성이도, 원경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일요일이면 늦잠도 안자고 법회를 봤다.

"교무님과 둘셋이 법회 보는 일이 많은데, 그만큼 저는 복 받았다고 생각해요. 인원이 적다보니 마지막 공지순서에서 개인 대소사를 나누고, 그러다보면 자연히 회화로 넘어가게 돼요. 한 주 동안 있었던 일, 다음 주에 있을 일 속에 경계가 있고 마음공부가 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법회 준비도 하게 됐다는 그. 일요일은 교당에 갈 수 있도록 미리 일을 처리해두고, 법회를 앞두고 회화에서 할 이야기를 정리 해 간다. 얼마 전부터는 그가 먼저 강원교구 김재원 교무에게 부탁해, 의두 한 단락을 받아 한 주 동안 연마한 뒤 그 결과를 나누고 있다.

"큰 교당에서 마음공부방이나 교리공부방을 하면 쫓아가곤 했었는데 너무 멀어 힘들더라고요. 마음공부는 회화로 한다해도, 교리공부에 욕심이 나서 숙제 받듯 시작했는데 아직은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래도 이제는 예전처럼 뭉뚱그리지 않고 어려운 건 어렵다, 힘든 건 힘들다 말할 수 있게 됐지요."

늘 웃는 얼굴인 그녀지만, 사실 '착한여자 콤플렉스'가 있었다는 의외의 고백, 누구에게도 당당하지 못한 채 무조건 괜찮다고만 했던 딱딱함이 교당에서 풀어졌다.

"제가 결혼하자마자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는데, 엄마도 허리가 안 좋아 수발이 어려웠어요. 더구나 하나밖에 없는 오빠도 IMF 때 힘들어져 아버지를 보살필 사람이 저밖에 없었죠. 재활에 대장암 수술 등 병원비도 많이 나오다보니, 매주 학원강사를 하면서 번 돈으로 계산을 해야했어요. 그렇게 21년을 병상에 계시다 지난해 열반하셨어요."

임신한 몸도 챙기지 못한 채 학원과 친정을 오가기도 했던 그. 그러나 21년이라는 세월동안 힘들다 소리 한번을 못했다. '쓸데없는 자존심 때문에 솔직하지 못했다'고 돌아보는 그. 그 와중에 만난 원불교는 그에게 희망이었다.

"제 사정을 아는 대학 선배(조연화 교도)가 '마음공부를 해보니 좋은데 너도 해봐'라고 권유해서 원주교당에 찾아갔어요. 그러다 아버지 일로 잠깐 쉬는데, 이형덕 교무님이 횡성에 오시면서 횡성교당으로 온 거죠. 쉽게 문을 열지도 않지만 한번 열면 닫지도 않는 강원 지역 정서처럼 저도 횡성교당에 발붙이며 '아, 이제 내가 주무처럼 살아야겠구나' 했어요."

그가 입교시킨 몇몇 교도들 합쳐도 적은 수이다보니 특별한 사례들도 있다. 독자적인 훈련이 어려우니 다른 교당과 함께하는데, 그는 말그대로 '끼여있게' 된다.

"강원교구는 알음알음 아는 얼굴들이 있는데, 다른 교구인 경우는 서로 어색하죠. 교당 이름도 있으니 실수없이 잘해야 한다는 긴장도 커요. 평소엔 밝은 옷을 입지만 훈련일 때는 무채색을 입고요. 그런데 꾹 참고 갔다오면 언제나 결과가 같아요. '오길 잘했다'라고 생각합니다."

천천히 원불교 물이 들어가고 교당 주인으로 성장하면서, 그는 좀 더 솔직해지고 비워졌다. 매주 회화를 하다보니 스스로도 모르던 속마음이 나왔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원불교를 만나고 스스로 칭찬하게 됐어요. 나는 횡성교당의 주인이구나, 교무님들이 나를 이렇게 믿어주시는구나, 이렇게 되더라고요. 원불교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줬어요."

이제는 그 은혜를 교화로 돌리며 점차 도반들을 늘리고 싶다는 함경효 교도. 강원교구청 봉불도 주위에 말 한마디 더 꺼낼 수 있게 돼 설렌다고 말한다. 강원교구 보물이자 막내로 여전히 영글어가고 있는 그, 그는 오늘도 스스로 북돋는다. "꽉 찰 날 얼마 안남았어, 잘했다. 경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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