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종 원로교무·류시화 시인
비크람 도래스와미 주한인도대사

[원불교신문= 나세윤]  창경궁 정원 숲이 고스란히 내려다보이는 은덕문화원은 서울 도심 속임을 의심케 하는 풍광을 자랑한다. 은덕의 가을은 궁 숲의 변화와 온전히 들숨날숨으로 호흡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참빗나무 단풍에서 시작된 은덕문화원의 가을 이야기는 특별한 손님과의 대화로 더욱 깊어졌다. 초대된 손님은 비크람 도래스와미(Vikram Doraiswami) 주한인도대사와 류시화 시인이다. 류시화 시인은 25년간 인도와 한국을 오가며 생활했고, 10년 간 매년 인도 여행을 한 후 기록한 에세이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을 출판해 인도 여행 붐을 조성하기도 했다.

류 시인은 '사랑-인도문화축제'의 일환으로, 인도 클래식 음악회(10월25일~27일)를 음악가 섭외에서부터 공연기획까지 맡아 진행하고 있다. 하리프라사드 초우라시아(전통 피리 반수리), 비슈와모한 바트(인도식 기타 모한비나), 람쿠마르 미쉬라(전통 북 타블라) 3인은 세계적인 인도 전통음악의 거장들이다. 부임 3년째인 비크람 대사는 주한인도대사 중 가장 젊고 활동적이며, 한국어로 대화가 가능할 만큼 내면적으로 한국을 사랑한다. 은덕문화원을 일군 이선종 원로교무가 이들과 자리를 함께해 인도와 영성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비크람 도래스와미 주한인도대사

양국은 불교라는 가교

민간 차원의 다양한 교류 요청

'관계격상'으로 협력 강화해야

대사= "인도와 한국은 30여 년 동안 서로 호의는 갖고 있었지만 민간 차원에서는 깊어지지 않았다. 불교는 양국 간의 문화 교류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지만 다양한 교류가 부족했다. 양국은 아시아적인 전통과 문화를 공유한 공통점이 참 많은 나라다. 인도는 영국의 오랜 식민지배 속에 1947년 8월15일에 독립했고, 공산주의의 파고에도 흔들리지 않은 것은 종교적(힌두) 신앙이 깊어서였다."

류= "축제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한국은 얼마 전 추석명절을 보냈다. 인도는 10월19일에 디왈리 축제가 열리는데 일명 빛의 축제다. 빛이 어둠을 이기고, 선함이 악함을, 희망이 절망을 이기는 의미를 담고 있다. 부와 풍요의 여신 락슈미를 집으로 초대하기 위해 자기 집 주위에 버터 등을 수십 개씩 켠다. 이날 밤 위공위성에서 찍은 인도는 나라 전체가 반짝반짝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축제는 세속적 풍요보다 진정한 풍요란 무엇인가를 일깨워준다. 빛은 인간이 무지를 깨닫는 자기 탐구의 중요성을 상징하며, 지상의 풍요보다 영원한 풍요를 갈구하게 한다."

대사= "인도와 한국의 문화는 흥미롭게도 비슷한 점이 많다. 태극기에 음양이 담겨 있다면 인도철학은 탄생과 죽음, 존속과 파괴, 빛과 어둠 등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함께 존재한다. 사실은 양면의 동전처럼 서로 없어서는 안 되는 주제들이다. 그래서 빛만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도 함께 중시한다. 디왈리 축제는 종교와 상관없이 진실이 거짓을, 빛이 어둠을, 삶이 죽음을 이길 수 있도록 이끌어달라는 것이 핵심 가치다. 디왈리는 가족이 모여 음식을 나누는 풍습이나 교통대란 등 한국의 추석과 매우 유사하다."

류= "인도에 머물다 보면 축제날은 관공서가 문을 닫고, 중요한 재판이 연기되는 일을 자주 접했다. 인도인들은 태양과 달의 변화, 성인 탄생일, 신과 인간의 관계 등을 중요하게 여겨 다양한 축제로 승화시켰다."

원로교무= "'일일신 우일신', 날마다 생일이다. 옛날 어느 스님은 손님이 오면 제자들에게 "고향에서 손님이 오셨으니 잘 대접해 드려라"라고 말했다. 그런데 모든 손님들을 그렇게 대하더라. 제자들이 어리둥절하며 스승님은 왠 고향 사람들이 그리 많으시냐고 되물었다. 그때 그 스님은 모든 만물은 한 포태에서 나왔으니 동체라는 의미로, 모두가 한 고향에서 온 것이라 설명했다고 한다. 원불교에서는 사은 즉 삼라만상(우주만물)이라 말한다. 대사님이 한국에 혼자 온 것 같지만 인도 전체가 왔다고 본다. 우리는 항상 현실적인 나의 작은 그릇으로 판단하는데, 본질적인 은혜 코드를 구심점으로, 내 원심력을 확대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오늘 만나는 인연, 항상 고향에서 온 손님들이다."

대사= "인도철학으로 말하면 우주와 나는 하나다. 산스크리트 말에 '전체에서 조금 떼어내도 이 작은 것은 전체와 다르지 않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우주와 나, 자연과 나는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류= "인도가 정신의 나라지만 최근 급격한 경제발전은 부의 양극화, 불평등을 초래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유는 대표적인 식품인데, 4년 전 20~30루피 했던 것이 지금은 70~80루피로 뛰었다. 힌두교는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다나와 다야다나(나눔과 베풂)가 가장 근본이념이다. 희망적인 것은 극빈자들을 위한 힌두교도, 시크교도 등이 매주 식량과 담요를 나눠주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원불교도 전 세계적으로 구호활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원로교무= "원불교는 초기 교단에서부터 봉공활동이 전통이다. 중요한 것은 에고의 껍질에 갇혀서는 진정한 나눔을 실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마음을 깨부수지 못하면 일시적으로 흉내만 낼 뿐, 참다운 대아를 이룰 수 없다. 인도 사람들이 깨닫지 못했지만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것은 익혀온 습 때문으로, 흉내를 내면서 진정한 나눔, 깨달음을 이뤄가고 있다고 본다. 나의 욕심을 조절하고, 극기하면서 수도정진하면 부처님처럼 자비의 삶을 살 수 있고, 큰살림(대아)을 일구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대사= "인도의 중산층에서 종교교육은 크게 강조하지 않는다. 종교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축제 속에서, 일상생활 속에서 체험적으로 경험된다. 문화와 종교가 그대로 스며들어 인도인의 전통을 만들고 있다."류= "비노바 바베라는 인도의 위대한 인물이 있는데, 그는 어린 시절 할머니가 아침에 눈을 뜨면 라디오나 신문 등을 일체 보지 못하게 했다. 기상 후 제일 먼저 성스러운 경전을 읽어야 했는데, 비노바 바베는 성인이 되어서 '이것이 나의 삶을 결정지었다'고 말했다. 인도인 친구 집에 머물면, 반드시 매일 아침 예불로 하루를 시작하고, 자신들의 만트라(진언)를 암송한다. 이와 같은 종교적 분위기가 현실에서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이선종 원로교무

에고 껍질 갇혀서는

진정한 나눔 실천 어려워

세상에 필요한 사람 돼야

대사= "인도에서 종교적 성장 과정을 3단계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째는 세상일에 참가해 인내심을 기르는 단계, 둘째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단계, 셋째는 모든 것이 하나라는 물아일체의 단계로, 깨달음이 수반된다. 의식을 집중해 깨달음을 얻어 성인이 되는 것이 가장 원만한 삶이다."

원로교무= "'놓고 비우라', 단순한 두 마디이지만 실천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세상 사람들은 양손과 어깨에 모든 짐을 지고 살기 때문에, '놓고 비우라'는 의미를 제대로 모른다. 새는 뼈 속까지 모두 비워야 높이 나는 것처럼 우리의 의식세계도 그래야 한다."

류= "소태산 대종사를 생각하면 12세기 인도의 라비다스 성인이 떠오른다. 이전 힌두전통은 앎, 지식을 통한 깨달음을 추구했는데, 라비다스 성인의 출현으로, 진리와 신에 대한 헌신, 즉 박티 신앙이 시작됐다. 이 새로운 종교운동으로 신분(카스트)과 차별로 신과 진리에 다가설 수 없었던 이들에게 예불의 자유가 주어졌다. 이로 인해 힌두 사원의 건축양식도 바뀌게 된다. 라비다스 일화는 유명하다. 젊은 시절, 스승에게 만트라(진언)를 받게 되는데, 스승은 귀에다가 비밀리에 속삭여줬다. 그러면서 스승은 이 만트라는 너무나 강력해서 이것을 암송하면 곧바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니,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발설하게 되면 우리 교단에서 너는 제명할 것이고, 지옥에 떨어지는 것은 물론 방황하다가 죽게 될 것이라고 거듭 충고했다. 하지만 라비다스는 스승에게 받은 만트라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통 지붕에 올라 큰 소리로 외친다. 이 만트라를 외우면 곧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전한 것이다. 다른 제자가 라비다스의 이탈행동을 스승에 고하자, 스승이 라비다스에게 왜 너에게 준 만트라를 사람들에게 알려 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라비다스는 이 만트라를 통해 모든 사람들이 깨닫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옥에 떨어져도, 모든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대답하자, 스승은 나에게 더 배울 것이 없다고 말하며 떠나보낸다.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후 산속이 아니라 민중 속으로 들어간 것과 사상적으로 비슷하다고 본다."

원로교무= "수도인 중에 말의 참뜻을 모르고, 문자에 속아서 허송세월을 살다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무를 볼 때, 보통사람들은 나무와 잎만 본다. 저 보이지 않는 뿌리까지 봐야 하는데, 그 의식 단계까지 가지 못하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류= "내가 인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대사님처럼 어디서나 이런 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다. 다시 축제로 돌아가자. 축제는 산스크리트어로 웃사브인데, 높은 곳으로 성장한다, 세속적인 슬픔을 제거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힌두교의 신화 중 시바신이 히말리야 동굴에서 수도할 때, 함께 간 아내 파르바티 여신은 추위에 불평이 많았다. 시바신이 아내의 투정 부림에 명상이 안 되자, 여신을 가난한 자든 부자든 인생에 꼭 한번 가야 할 곳으로 안내한다. 그곳은 바라나시의 화장터였다. 그 광경을 본 여신은 충격에 빠지면서 귀고리를 한 개 떨어뜨리고 만다. 그래서 부쳐진 이름이 바라나시의 최대 화장터 '마니카르니카(보석귀고리)'다. 결국은 모두가 죽는 구나, 왕도 왕비도, 천민도 누구나 죽는다. 세속적인 부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준 것이다."

원로교무= "어느 곳이 제일 좋은가? 자기가 머문 공간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 지금 만나는 인연이 내 생에 최고의 인연이다. 그러니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운 것이다. 하루를 기쁨으로 맞이해야 한다. 누가 알아주든 몰라주든 최선을 다해 자기 몫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스스로가 세상에 필요한 사람, 유익한 사람이 돼야 사회가 아름답게 변화된다. 오늘, 이생을 잘 살면, 내일, 다음생이 좋아지는 것이다."

 

 

류시화 시인

소태산 보면 라비다스 생각나

박티운동, 차별없는 신앙 열어

디왈리축제, 진정한 풍요 일깨워

대사= "요즘 세상에는 진심이 중요한 것 같다. 인도 크리슈나 신이 친구의 집을 방문했을 때, 친구는 거지와 주민들에게 이미 많은 음식을 공양한 상태여서, 자기들 먹을거리도 없는 상황이었다. 빈 그릇에 밥풀 몇 개 붙어 있는 정도였지만 크리슈나 신에게 진심으로 공양하고 싶어 했다. 친구의 진심을 안 크리슈나 신이 빈 그릇의 밥풀 한 개를 먹자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의 배가 불러왔다. 진심의 중요성을 설파한 일화다."

원로교무= "몇 해 전 만난 동경대학교 교수가 했던 강연을 잊을 수 없다. 벌새 이야기인데, 숲에 불이 났다, 그런데 큰 동물들은 모두 도망가고, 활활 타는 숲을 벌새만 끄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다. 냇가에서 양 날개에 물을 묻혀서 쉼 없이 왕복했다. 이 모습을 본 숲속 친구들은 어리석다며 한마디씩 했다. 하지만 벌새는 아랑곳하지 않고 불을 끄려는 몸짓과 생각뿐이었다. 평생 살아온 숲을 지키기 위해서. 요즘 시대는 벌새 같은 인재가 필요하다. 자신의 역량을 온통 공익에 헌신하는 진실된 벌새들이 많아야 한다. 내 도량이 좁고, 역량이 한계가 있어도, 우리가 원하는 사회, 나은 세상을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의 적공이 필요하다. 나는 내가 살아온 날들, 앞으로 살날들을 벌새처럼 살아 갈 것이다."

[2017년 10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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