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상 작가/북일교당
자유의 길을 찾는 진언

"이제 흙이 물 속으로 가라앉고, 물은 불 속으로 가라앉고, 불은 공기 속으로 가라앉고, 공기는 의식 속으로 가라앉는 죽음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간의 몸이 지수화풍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육체를 빠져나온 프라나가 세파로 변한다. 프라나는 마음(心)이고 세파는 영(靈)이다. 이제 아무개는 영가(靈駕)가 되었다.

티베트불교에서는 이때, 영가에게 육자진언(六字眞言)의 만트라 '옴마니밧메훔'을 끊임없이 불러준다. 옴(Om)은 천상계에 환생하는 문을 닫고, 마(ma)는 인간계에 환생하는 문을 닫고, 니(ni)는 아수라계에 환생하는 문을 닫고, 밧(pad)은 축생계에 환생하는 문을 닫고, 메(me)는 아귀계에 환생하는 문을 닫아 주며, 훔(hum)은 지옥계에 태어나는 문을 닫아 준다고 한다. 즉, 육도(六道)를 떠나 자유자재하라는 진언을 영가가 온전하게 들을 수 있게 주문을 외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영가는 그 주문을 듣고 환생하는 문을 닫아야 한다. 그래야 완전한 해탈천도에 이를 수 있다. 대자유란 육도에 들어가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만일 육도에 머물러 있다면 그 영가는 업에 의해 부자유한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영가의 부자유를 풀어주기 위하여 진언을 외우는 것이다. 영가들은 생전에 쌓은 업(카르마)에 따라 진언을 듣기도 하고 듣지 못할 수도 있다. 영가가 중음 밖에서 들려오는 진언을 듣고 깨우친다면 환생의 문은 닫히게 된다.

티벳불교에 육자진언의 만트라가 있다면 원불교에는 성주가 있다. 성주 역시 영가를 위한 진언이며 주문이다. '영천영지영보장생'은 하늘과 땅, 즉 우주는 영원하고 만물 또한 기나긴 생을 갖고 있다는 주문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원불교대사전〉의 뜻풀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원불교대사전〉에서는 영원을 불생불멸로 풀이했는데, 일종의 오류라고 생각한다.

성주에서 말하고자 하는 영원은 생멸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교차된다는 것의 영원성이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 하나에서부터 우주의 은하계에 이르기까지 성주괴공과 생로병사를 겪지 않는 것은 없다. 그것을 겪는 것의 영원성을 말하는 것이지 불생불멸의 영원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만세멸도상독로'는 온전한 해탈천도를 하여 육도로 돌아가는 길을 끊는 것이 진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과응보의 업을 해소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육도를 떠도는 것이 '만세'이며, 그 만세의 육도로 돌아가는 것을 끊는 것이 '멸도'이다. 윤회의 천업에서 벗어나 완전한 해탈에 이르기 위한 진리만이 '상독로' 유일한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거래각도무궁화'는 소태산의 진리 그 자체이다. '삶과 죽음이란(生死) 오고가는 것(去來)이고 그것은 꽃이 피고 지는 것과 같다'라는 진리의 영원성이 잘 드러나는 주문이다. '보보일체대성경'은 처처불상 사사불공이니 중음의 세계에서도 걷는 걸음마다 소태산의 말씀대로 일원대도, 즉 부처의 길로 가라는 뜻이다.

재를 지낼 때마다 끊임없이 성주를 암송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가들은 성주를 듣고 자신이 가야할 자유의 길을 찾아낸다. 그 길찾기를 돕기 위하여 성주는 꼭 필요한 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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