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경진 교도/강북교당
올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가장 화제가 된 소설을 뽑으라면 조남주 작가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꼽을 수 있다. 나 역시 82년에 태어나 지금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으로, 내 주위 수많은 김지영들과 함께 현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 깊은 공감을 하며 단숨에 소설을 읽었다.

82년생 김지영은 양성평등이란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시대에 태어나 남자아이들과의 은근한 차별을 당하며 자랐지만 대학을 나오고 직장에 적응하며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러다 또 평범하게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임신과 출산을 하면서 엄마가 되었다는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 은연 중에 차별을 당하고 양보를 강요당하며 살아온 82년생 김지영은 결국 자신보다 더 심한 불평등을 당하며 살아온 엄마에게 빙의된 듯 말과 행동을 하는 이상증세를 보이게 된다.

'19세기 부모님을 모시고 20세기 남편과 함께 사는 21세기 여성'이 현대의 여성들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는 것에 비해 여성들이 처한 상황은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시스템이나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보면 위의 말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의 혼인율과 출산율이 자꾸만 낮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을 사회적 문제로 보고 있지만 시스템과 인식은 거의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김지영이 이상증세를 보인다는 것 말고는 너무나 평범한 이야기다. 그냥 내 주위에 누구에게 주인공을 대입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그 평범하고 지극히 당연하게 일어나는 사회적 부조리가 소설을 읽는 동안 독자에게 스며든다.

이 소설과 더불어 요즘 인터넷에서 큰 화제몰이를 하고 있는 웹툰이 있다. '며느라기'라는 제목의 웹툰인데 요즘 네티즌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SNS를 통해 연재되고 있다. 이 웹툰을 연재하는 작가를 팔로우하는 사람이 19만 명을 넘어섰고 수만 건의 조회수와 한편의 웹툰이 올라올 때마다 만 건 가량의 댓글이 달리는 등 엄청난 호응을 받고 있는 웹툰이다.

웹툰 제목 '며느라기'는 사춘기나 갱년기처럼 며느리가 돼 시댁에게 사랑받으려 노력하는 시기라고 한다. 주인공인 민사린은 갓 결혼한 이 시대의 여성이다. 여느 며느리들이 그렇듯 결혼생활을 하며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악의는 없지만 답답한 시댁 식구들의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당연해져버린 차별을 조금씩 느끼는 과정을 겪는다.

예를 들면 시부모님의 생일날 새벽에 혼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후식으로 과일을 준비해 주고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를 하고 오면 자신이 먹을 후식은 없다. 시어머니는 하나 남은 과일을 먹어치우자고 말한다. 이 상황에서 불편을 느끼는 것은 며느리인 민사린 뿐이다.

명절에 시댁에 먼저 가는 것이 당연함을 아무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고 시댁에서 하루 종일 음식을 하지만 식사를 할 때는 부엌이나 작은 상에서 따로 먹어야 하는 것 그리고 다 먹은 식사를 정리하는 것도 당연히 며느리가 주가 되어 하는 일임을 아무도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남편과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지만 출장을 가게 되면 시어머니로부터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출장을 가게된 것에 대한 불만을 듣게 되고 남편이 가는 출장이나 회사일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시댁의 부조리에 차마 아무 말 못하는 주인공의 모습 등을 보여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다.

오랜 시간 공고해져 버린 우리사회의 은근한 불평등과 차별을 많은 매체들이 이야기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소설과 웹툰은 아직도 우리사회가 만연해 있는 불평등과 부조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강한 어조로 부르짖지 않는다. 그냥 지금도 어디에선가 일어나는 일상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세련된 어법이다.

페미니즘이 더 이상 여성운동을 하는 소수의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생각하고 행동하는 분위기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혹자는 여성의 권리가 신장된 것을 넘어서 여성상위시대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런 이야기들이 수면위로 올라와 조금이나마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분위기 정도가 되었다고 본다. 앞으로도 이런 조용하지만 힘 있는 작품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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