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응주 교무/법무실
무상의 신속함을 알아 공부함에 힘쓰라
명이 부질없음 묵상해 담담한 마음 길들이라

佛問諸沙門하사대 人命이 在幾間고 對曰- 在數日間이니이다 佛言-子未能爲道로다 復問一沙門하사대 人命이 在幾間고 對曰-在飯食間이니이다 佛言-子未能爲道로다 復問一沙門하사대 人命이 在幾間고 對曰-呼吸之間이니이 佛言- 善哉라 子知道矣로다

"부처님께서 모든 제자에게 물으시되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느냐. 한 제자 대답하되 수일 사이에 있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는 도가 능하지 못하다. 다시 다른 제자에게 물으시니 그 제자 대답하되 밥 먹는 사이에 있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너도 도가 능하지 못하다. 다시 다른 제자에게 물으시니 그 제자 대답하되 숨 한번 쉬는 사이에 있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착하고 착하다. 네가 도를 알았도다."


〈사십이장경〉 38장의 말씀은 부처님이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천년만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중생들에게 "너의 생명은 영속하는 것이 아니다. 호흡지간에 네 생명이 달려 있으니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말씀이다.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 죽을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살지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결국 호흡한번 사이에 생을 마감한다. 그러니 부질없는 재색명리에 애착을 갖기 보다는 무상의 신속함을 알아 불생불멸과 인과보응의 이치를 공부해야 한다는 의미의 법문이다.

불문제사문 인명재기간(佛問諸沙門 人命在幾間)은 부처님이 제자에게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느냐?"고 물었다. 사람이 살아 있다가 죽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는 질문이다. 대개 사람의 죽음은 예측하지 못한다. 올 때는 순서대로 왔지만 갈 때는 가는 순서가 없고 언제 저승길을 갈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죽음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이다.

대왈재수일간 불언자미능위도(對曰在數日間 佛言子未能爲道)는 대답하여 가로되 "수일 사이에 있나이다" 부처님이 "너는 도에 능하지 못하구나"라고 말했다. 며칠전에 만난 사람의 부고를 우연히 들었을 때 흔히 우리는 인생의 허망함에 충격을 받기도 하지만 부처님이 바라는 답은 아니었다.

부문일사문 인명재기간(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은 첫 번째 제자에게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하시자 다시 다른 제자에게 물으시되 "사람의 목숨은 얼마 사이에 있느냐?"고 물었다.

대왈재반식간 불언자미능위도(對曰在飯食間 佛言子未能爲道)는 대답하여 가로되 "밥먹는 사이입니다" 부처님이 "너는 도에 능하지 못하구나"라고 말씀했다. 두 번째 제자는 죽음의 시간을 식사를 하고 나서 다음 식사를 하지 못하는 사이라고 대답한 것이다.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헤어지면서 저녁에 만날 것을 약속한 사람의 부고소식을 들었을 때 사람 목숨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깨치게 된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것도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시간으로는 만족한 답이라고 생각지 않으신 것이다.

부문일사문 인명재기간(復問一沙門 人命在幾間)은 다시 다른 제자에게 "사람의 목숨이 얼마사이에 있느냐"고 물었다. 두 번째 제자의 답도 수락하지 않으시고 세 번째 제자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 것이다.

대왈호흡지간 불언선재 자지도의(對曰呼吸之間 佛言善哉 子知道矣)는 대답하여 가로되 "숨쉬는 사이에 있습니다"고 대답하자 부처님이 "그렇다, 네가 도를 아는구나"라고 답한 것이다. 두 번에 걸친 질문에서 만족한 답을 얻지 못하신 부처님이 세번째 제자에게 살아있는 사람이 죽는데 걸리는 시간이 "숨을 내쉬었다 들이 마시지 못하거나, 들어 마셨다가 내 쉬지 못하면 죽는다"는 대답에 흡족하신 표정으로 제자의 대답을 인정하신 것이다. 아주 드물지만 직접 보고 있는 눈앞에서 혹은 잠깐 전화받는 사이에 생을 달리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허망한지 알 수 있다.

사람의 삶과 죽음의 경계는 찰라지간에 있다. 소태산 대종사도 "사람의 생사는 비하건대 눈을 떳다 감았다 하는 것과도 같고, 숨을 들이 쉬었다 내쉬었다 하는 것과도 같고, 잠이 들었다 깼다 하는 것과도 같나니, 그 조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치는 같은 바로서 생사가 원래 둘이 아니요 생멸이 원래 없는지라, 깨친 사람은 이를 변화로 알고 깨치지 못한 사람은 이를 생사라 하나니라"고 말했다.(〈대종경〉 천도품 8장) 일단 명을 마치게 되면 그동안 이승에서 애지중지하며 쌓아놓은 재색명리는 어느 것 하나도 가져가지 못하고 오직 애착 탐착의 원인이 될 뿐이다. 그러니 시시때때로 목숨의 부질없음을 묵상하여 애착, 탐착없는 담담한 마음을 길들이는 생활을 해야 하겠다.

또한, 대종사도 열반전 마지막 법문으로 생사는 마치 사시가 순환하는 것과도 같고 주야가 반복되는 것과도 같아서 불보살들은 그 거래에 매하지 아니하고 자유하지만 중생은 거래에 매하고 부자유한 것이 다를 뿐 육신의 생사는 불보살이나 중생이 다 같다. 또한, 생사일이 크고 무상은 신속하기 때문에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조심하며 살 것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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