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도상 작가/북일교당
'존재의 근원을 체험하는 사후세계'인 초에니 바르도의 기간은 열반 후 두 번의 칠 일까지다. 열반 직후의 치카이 바르도와 초에니 바르도에서 '성주'와 '후생길 인도하는 법설'을 듣고도 영가가 깨닫지 못하고 해탈천도의 대자유에 이르지 못했다면, 이제 영가는 분노의 신들이 출몰하는 시드파 바르도를 여행하게 된다. 법신불사은의 은혜를 받고 일원진리를 깨달아 적공을 쌓은 영가들만이 초에니 바르도에서 해탈천도에 이를 수 있었다.

법신불사은의 은혜를 받았다는 표현에 오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사은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사은의 은혜를 먼저 나누어야 한다. 내 안에 있는 네 가지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고 사은을 공(空)해야 한다.

내 안에서 사은이 공해지면 새로운 비움의 공간이 생긴다. 법신불은 사은을 비워내지 않은 사람에게는 사은을 주지 않을 것이다. 죽음의 보따리를 챙긴다는 것은 삶의 보따리를 모두 비운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보따리가 무거우면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들다.

대자유를 얻지 못하고 초에니 바르도를 떠나게 된 영가들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드파 바르도를 여행하게 된다. 시드파 바르도는 '환생의 길을 찾는 사후세계'이다. 시드파는 초에니보다 한 단계 낮은 강급된 세계이지만, 여기서도 '성주'를 듣고 '후생길 인도하는 법설'을 듣고 깨닫기만 하면 환생을 멈추고 대자유에 이를 수 있다. 해탈천도란 환생을 멈추고 윤회계를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시드파 바르도에 들어섰다고 하더라도 방황하지 말고 대자유의 길로 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티벳 사자의 서〉에는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진리를 단단히 붙들려고 한다면 그대는 그대의 영적 스승으로부터 설명을 들었듯이 밝고 순수하고 티없이 맑으며 텅 빈 충만으로 가득한 무위(無爲)와 무집착의 상태에 그대의 마음을 머물게 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대는 자궁에 들어가지 않고 대자유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그대 자신을 알 수 없을 때는 그대의 수호신과 영적 스승이 누구든지 강한 애정과 겸허한 믿음으로 그들에 대해 명상하라. 그들이 그대의 정수리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처럼 상상하라.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것이다. 마음을 다른 곳에 빼앗기지 말라."

그대의 영적 스승은 평소에 인연을 맺고 가르침을 받아왔던 교무들이다. 영가의 수호신은 법신불이다. 무엇보다도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영가를 위해 올리는 기도야말로 영가를 밝고 순수하고 티없이 맑으며 텅 빈 충만으로 유지하게 한다.

영가들은 시드파 바르도에서 환생길을 찾아 여행을 하게 된다. 대개의 영가들은 아무 자궁이나 뛰어들어 이 여행을 끝내고 싶어 한다. 그 욕망이 너무 커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교미하고 있는 자궁 속으로 뛰어들려고 한다. 그 자궁의 주인이 돼지든 뱀이든 거머리든 혹은 사람이든 가리지 않는다. 삼재는 아무 자궁으로나 뛰어들기 위해 눈이 벌건, 초조하고 조급한 영가들에게 느림을 가르치는 천도재다. 잠시 멈추고 생각하는 마음공부를 통해 아무 자궁으로나 들어가지 말고, 진급하는 환생길을 찾아가라고 올리는 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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