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순찬 센터장/서울시자살예방센터
▲ '살자 사랑하자'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둥근마음상담연구소에서 원기100년 자살영가와 유족들을 위로하는 천도재를 진행했다.
종교는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리턴시키는 역할
4개 종교와 손잡은 서울시 ‘살자 사랑하자’ 프로젝트

지난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사망원인통계'에 의하면 2016년 총 자살사망자수는 13,092명,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5.6명으로 전년도인 2015년 26.5명에 비해 0.9명(-3.4%)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남성이 인구 10만명당 36.2명, 여성이 15.0명으로 남성이 여성에 비해 2.4배 높은 자살률을 보였다. 사망 원인별로는 10~30대의 사망원인 1위, 40~50대의 사망원인 2위가 자살로 나타났다. 연령대별로는 30대 이상 전 연령에서 다소 감소했고 70대에서 많은 감소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노인 자살이 젊은 층에 비해 더 심각하여, 인구 10만명당 60대가 34.6명, 70대가 54.0명, 80대 이상이 78.1명으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살률도 급격히 증가하는 양상을 지속적으로 보였다. 연령대별 자살 사망자수로는 50대가 2,677명, 40대가 2,579명으로 가장 많은 자살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10~30대 사망원인 1위, 40~50대 2위

이러한 자살통계는 현재 우리사회의 자살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그러나 이 통계가 구체적인 자살의 원인과 대책을 시사해주지는 않는다. 또 수많은 개개인들이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한국의 자살률은 15년째 OECD 국가 중 1위라는 보고역시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해주는 역할만 반복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정말 심각한 것은 20년 전 IMF경제위기이후 한국의 자살문제가 계속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살사망자가 몇 명이라고 알려주는 통계수치 외에 구체적인 자살연구나 대책이 추진된 바가 없다는 점이다. 자살현상이 삶과 관련된 총체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예방이라는 한정된 표현을 쓰는 것이 한계가 있지만 통상 예방이라고 할 때의 전제조건은 과학적인 인과관계가 밝혀지고 이러한 원인을 제거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IMF경제위기이후 한국의 자살률이 계속 증가하고 20년이 지나도록 외환위기 이전수준으로 감소하지 않는 것은 비슷한 외환위기 경험을 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노인인구의 자살률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것도 한국만의 현상이다. 40대, 50대 남성 자살사망자수가 이렇게까지 많은 것도 한국만의 고유한 맥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자살문제가 품고 있는 이러한 특징은 외국의 연구결과를 차용한 개입프로그램들이 실제 현장에서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현장경험과 소규모 심층면담연구를 통해 확인한 바로는 우리의 자살예방사업이 과도하게 정신건강문제를 부각시키고 의학적 치료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을 살리는 정책 필요

자살행동에 있어 정신건강 문제가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인 것은 분명하나 정신건강상의 어려움에 앞서 사회경제적인 문제, 대인관계문제, 신체건강문제 같은 선행이슈들이 더 근원적인 이유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대부분의 40~50대 자살시도자들은 사회경제적 문제와 신체건강문제를 호소하고 있는데, 이들의 욕구와 다른 정신건강서비스를 우선순위에 두고 개입프로그램을 구성하다보니 실질적인 위기상황에 있는 당사자들이 자살예방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거나 서비스이용 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자살위험성을 가진 노인 역시 빈곤과 외로움, 신체질병 등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살문제에 국한된 개입보다는 다양한 형태의 노인복지서비스가 확대되면서 노인층 자살률 감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노인대상 정책과 복지연계망은 두터워지는 반면, 40~50대 중년층의 경우는 실직, 경제적 어려움, 이혼, 가족해체, 신체건강문제 등으로 극단적인 상태에 몰리고 있음에도 복지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노인대상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다른 연령대에서도 자살위험성을 호소하는 개인의 상황에 맞는 개입서비스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역설적이게도 자살현상 그 자체에만 집중해서는 자살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살아있는 사람을 살리는 정책과 개입서비스가 필요하다.

▲ 4대종단 자살예방사업 간담회가 원불교 잠실교당에서 열렸다.
경제적 이유보다 가족과의 단절

또 다른 한국적 맥락은, 지금까지 알려진 가족, 종교, 공동체 같은 보호요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더 경제적으로 열악했던 시기에도 한국사회는 이처럼 자살률이 높지 않았다. 과거에도 한정된 시기에 자살률이 높은 경우는 있었지만 이렇게 장기간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례적이다. 끼니를 걱정할 만큼 어려운 상황에도 가족 간의 유대감은 살아있었고 어려운 형제들과 그 자식들을 챙기는 문화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관계 마저 점차 이해관계로 바뀌고 손익을 따져 관계를 단절하기도 한다. 결혼 역시 쉽게 해체될 수 있는 형식이 되어 버렸다. 40~50대 남성의 경우는 실직, 사업실패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초래되면 가장역할을 상실하고 이혼, 가족해체, 신체건강문제, 대인관계 단절, 자살 등으로 이어지는 패턴(역할상실-관계단절-존재소멸)이 거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자살위험성을 가진 노인의 경우도 대부분 가족과 단절된 경우가 많았고 스스로를 짐으로 간주하고 주위 사람들과도 점차 고립, 단절되는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종교는 과거 어렵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들의 안식처였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종교의 문을 두드리기가 점점 더 힘들다. 사라져가는 사람들은 종교에서 위로와 진정한 수용을 경험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지금의 종교는 축복받은 사람들의 사교모임 같다고 이야기 한다. 과거 종교의 핵심 구성원이었던 가난한 이들, 마음 둘 곳 없는 이들은 이제 축복받지 못한 사람들, 벌을 받은 사람들, 신앙을 저버린 사람들로 치부되고 있다. 공동체는 자살위험성을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 대다수가 경험하기 어려운 상징이 되어버렸다. 과거 오랫동안 한 곳에서 정주하며 이웃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공동체적 삶은 추억과 동경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사라져가는 사람들은 주로 경제적 이유로 어려서부터 한곳에 오래 살지 못하고 여기저기를 옮겨 다니며 유목민처럼 살아온 삶을 이야기 한다. 이들에게 마음을 나눌 공동체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으며 유일한 의지처는 가족밖에 없다. 그러나 가족, 형제간의 관계도 단절된 경우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된다. 사라져가는 사람들은 직장도 잃고 가족도 잃고 아무런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 삶,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삶 속에서 유일하게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죽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서울시는 2014년부터 종교계와 함께 자살예방사업을 고민하고 2015년부터 원불교, 기독교, 조계종, 천주교 등과 함께 '살사(살자 사랑하자)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매년 1만 명 이상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 앞에서 마지막까지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리턴시키는 역할에 종교계가 동참한 것이다. 지상에서 자신이 있을 곳을 찾다 끝내 찾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어떻게든 이들이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할 때다. 더 이상 그들을 "못 봤다, 볼 수 없었다"고 치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 자살 위험이나 아픔을 치유하는 종단,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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