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주차장에 고양이가 보이기 시작한 건 지난 봄이었다. 여윈 몸에 뭉텅뭉텅 빠진 털, 늘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인 고양이는 식지 않은 보닛에 올라있다가 주민들을 놀래키기 일쑤였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면서, 고양이는 다리를 다쳤는지 차 아래나 화단 근처에 앉아있었다. 누군가 '고양이가 차 아래 있을 수도 있으니 기척을 내고 기다려주세요'라는 안내를 붙였고, 또 누군가는 한쪽 구석에 통조림을 두는 캣맘이 됐다.

찬바람이 불면서, 고양이는 눈에 띄는 곳에서 미동도 없이 누워 있곤 했다. 가까이 갈 용기가 나지 않아 멀찍이서 배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보고야 돌아섰다. 한번은 1층 현관 앞에 누워 있길래, 눈을 꼭 감고 담까지 넘어 돌아가버렸다.

겨울 초입, 언제부턴가 고양이가 보이지 않았다. 동네슈퍼에서 고양이의 부고를 들었다. 누군가는 거두어가는 119구조대원을 봤다고 했다.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주말, 교당에서 명절대재를 앞둔 특별천도재 소식을 들었다. 혹시나 해서 여쭸더니 그런 원혼들 위해 하는 거라는 반가운 답이 돌아왔다.

지난 100주년기념대회의 많은 장면 중에, 가장 거룩하고 장엄했던 것은 서울시청의 해원상생 특별천도재였다. 근현대사의 평지풍파 속에서 연유도 모른 채 억울하게 떠난 이들의 넋이 광장에 너울거렸다. 세상을 구제하고 민중을 치유하는 종교 본연의 역할이 그 빗속에서 실현됐다. 그 밤, 소태산 대종사가 지상으로 내려와 우리 모두를 쓰다듬었다.

실업계고등학교 실습생, 크레인노동자, 늘어나는 자살 등 사회적 죽음들이 더욱 아픈데, 그 이별마저도 간난해 재주(齋主)들이 없다. 죽음은 그저 뉴스가 되고 의미가 되느라, 원혼들은 위로 한번 없이 갈 곳 모르고 방황한다. 그때마다 시청 특별천도재가 떠오른다. 그날 대한민국 역사의 주인은 원불교였다. 그 밤 우리는 세상을 치유했다.

이 땅의 늘어만 가는 원혼들에게 "거친 이생 버티느라 수고했다", "고맙다", "함께 아파 주지 못해 미안하다", "다음생 선연으로 법연으로 만나자" 라는 말을 해주는 원불교 특별천도재가 곳곳에서 열린다면 어떨까. 종교를 떠나 누구라도 마음 한 구석에 맺힌 아픈 죽음들을 위로 받으러 온다면.

특별천도재 첫날, 고양이의 재주가 되어 향을 살랐다. 아마도 이생 유일했을 이름도 교무님 말씀 따라 빌라 이름을 따서 '정우'라고 지어줬다. 오랜만에 꺼내보는 옛 이름들도 위패에 모셔 안녕을 전했다. 교도들도 저마다 먼저 떠난 친구와 가족, 또 그 너머의 인연들의 이름을 올려 천도를 축원했다. 너의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요, 이들 중 하나가 곧 나라는 진리를 그 자리에서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울었다.

[2017년 12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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