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연말이다. 저녁이 되면 거리 곳곳에 장식된 알록달록한 조명들이 켜지며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올 한 해를 정리하며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예술작품을 감상해보는 건 어떨까?

클래식 작품 중에는 어느 특정한 시기에 꼭 연주되는 곡들이 있다. 연말에 전 인류를 사랑하자는 의미가 담긴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이 전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것이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발레작품 중에서는 러시아의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1892년에 작곡한 작품 '호두까기인형'이 많이 공연된다.

나도 얼마 전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인형'을 공연장에서 감상하고 왔다. 늘 음악만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음악과 함께 연출되는 발레공연을 보는 것도 색다르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이 '호두까기인형'은 독일의 작가 호프만의 '호두까기인형과 생쥐 왕'을 발레화 시킨 것으로 크리스마스에 주인공이 선물을 받고 또 꿈을 꾸며 일어나는 일들이 주 내용이기 때문에 특히 어린이들이 좋아하지만 사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일단 음악이 정말 아름답고 한 곡 한 곡 개성이 넘친다. 그리고 모든 장면이 아름답지만 특히 눈송이 역을 맡은 무용수들이 새하얀 발레복을 입고 펼치는 군무는 가히 환상적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발레는 규모가 큰 공연장에서만 주로 무대에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아쉽게도 언제나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니다. 그런 아쉬움을 달랠 수 있도록 차이콥스키는 음악만으로도 작품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을 많이 만들어주었다. 이 '호두까기인형' 역시 발레작품으로는 2막 3장의 대규모 곡이지만 이중 8곡을 선별해 관현악곡으로 편곡해 발레 없이 오케스트라 작품으로 무대에 자주 올린다.

판타지의 성격이 강한 동화적인 작품이어서 한 곡 한 곡 제목에 어울리는데 특히 성격 춤곡이라 불리는 인형들이 둘씩 짝지어 나와 추는 춤곡이 인상적이다. 이 부분에서는 사탕요정, 러시아, 아라비아, 중국, 풀피리 요정 등이 자신들에게 딱 어울리는 음악에 맞추는 춤을 추는 부분인데 곡 하나하나가 개성 있으면서도 전체적인 조화를 잘 이룬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적 역량을 잘 보여주는 음악들이다.

이 중 사탕요정의 춤에는 클래식 음악에서 쉽게 들을 수 없는 아주 신비하고도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데 바로 '첼레스타'라는 악기의 소리이다. 이 악기를 차이콥스키가 이 작품에 사용하게 된 데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 이 악기는 1886년에 발명된 악기로 당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악기였다.

호두까기인형을 작곡하고 있던 차이콥스키는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의 연주를 위해 파리를 경유하게 되고 파리의 한 악기점에서 이 악기를 발견하게 된다. 이 악기의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소리에 매료된 차이콥스키는 지인에게 악기 구매를 부탁하며 당시 러시아의 대작곡가였던 림스키코르샤코프나 글라주노프에게는 절대 이 악기의 존재 여부를 알리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 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이 악기를 자신의 작품인 호두까기인형 중 사탕요정의 춤에 사용하게 되고 누구나 한번만 들어도 뇌리에 박힐 수밖에 없는 명곡이 탄생하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이 어린이를 위한 쉽고 조금은 유치한 곡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라고 예상한다. 사실 차이콥스키도 이 작품을 처음 의뢰 받았을 때 이미 대작곡가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 내용을 듣고 유치하다고 생각하고 작곡하기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발레로 각색되었을 때의 완성도를 생각한 차이콥스키는 결국 작품을 완성하였고 지금까지 매년 연말이면 전 세계 사람들을 환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명곡이 되었다. 또한 차이콥스키의 많은 발레곡 중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함께 3대 발레곡으로 꼽히고 있다.

지면에 다 실을 수는 없지만 인간 차이콥스키의 삶은 굉장히 어둡고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남긴 이 작품은 정말이지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누구든지 이 작품을 들으면 잠시나마 동화 속 세계로 떠날 수 있다.

올해를 보내며 함께하면 좋을 음악으로 차이콥스키의 관현악 모음곡 '호두까기인형'을 추천하며 원기102년의 문화코드를 마무리한다.

/강북교당

[2017년 12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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