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이 세 차례에 걸쳐 달마산 자락에 사드를 진입시킨 냉혹한 현실에도 원불교인과 소성리 주민, 평화지킴이들이 '사드 말고 평화'를 소리 높이 외치고 있다.

  [원불교신문=강법진 기자] “저는 온몸이 부서졌습니다. 군청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촛불에 나가서 사드 막겠다고 했는데 4월26일 허무하게 들여보냈습니다. 그날 새벽 깜깜한 부엌에서 혼자 울고 있을 때, 누군가 와서 '부녀회장, 지금 뭐하나. 정신 차리라. 왜 이렇게 울고 있나. 저기 밥도 못 먹고 울고 있는 어르신들 컵라면이라도 끓여 드려야제' 하는 말에 정신이 바짝 났습니다. 그래, 끝이 아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6월3일 소성리 범국민 평화행동에서 임순분 부녀회장(63)은 무대에 올라, 울분을 머금고 또 다시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들춰낼수록 생채기뿐인 그날의 기억, 이렇게라도 알리지 않으면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기 일쑤라는 생각에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작 100여 명 밖에 살지 않는 조그마한 마을을 경찰 8천여 명이 들쑤시고 간 그날,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장비 일부가 달마산 자락에 들어앉았다. 갈수록 더 잔혹해진 장비 반입 작전은 그로부터 두 차례 더 일어났다. 수천 명의 경찰병력에 모두 속수무책으로 패배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이들의 싸움은 추운 겨울 진밭교 위에 서 있었다.
 
달마산(달뫼)아래 핀 평화
겨울인지 봄인지도 모를 그 길목은 손발을 꽁꽁 싸매어도 칼바람이 파고들었다. 1700만 촛불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핵시킨 그 다음날, 두 교무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롯데골프장으로 향했다. 경찰은 여지없이 진밭교 위에서 이들을 막아섰다. 두 교무는 차디찬 맨땅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새 날이 왔건만, 성주 소성리는 여전히 추운 겨울이었다.

2017년 3월11일, 물러설 수 없는 긴긴 싸움이 그렇게 시작됐다. 사드가 침입한 달마산은 18세 젊은 송도군(정산종사)이 스승을 찾아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길을 떠난 구도길이다. 불과 열흘 전만 해도 성자의 발자취를 따라 순례했던 그 곳. 닦이지 않은 거친 길을 이제야 바람구멍 내어가는 중인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날로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이른 새벽 찬 이슬을 맞으며 철야기도를 올렸다.

주저앉은 그 자리는 사드철회 평화수호의 최전선이 되었다. 산천은 그대로인데 진밭교 위 롯데골프장은 더 이상 한국 땅이 아니었다. 벚꽃 흐드러지던 봄날에도, 뜨거운 한여름에도, 가을 지나 다시 매서워진 겨울 한복판에서도 사람들은 진밭교를 찾았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그곳에 앉아 사람들은 기도를 하고 가장 낮은 자세로 참회의 절을 올리며 평화를 노래했다.

사드반대운동이 한창이던 한여름에는 달마산이 밤마다 울부짖었다. 골골이 굽이쳐 내린 깊은 산골짜기에 웬 낯선 사람들이 들어와 자신의 뼈를 깎고 살을 도려냈다. 철철이 나물 캐러 오던 마을사람들의 발길은 보이지 않고 종일 군홧발 소리뿐이었다.

달마산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속에서도 피난민을 다 품어 안았다. 겹겹이 둘러쳐진 깊은 산세만큼 속이 깊었다. 땅이 비옥하고 물이 마르지 않아 참외 농사, 벼농사, 수박 농사가 풍년인 날도 많았다. 사람들은 이곳을 평화의 성지라고 불렀다. 원불교 2대 종법사 정산 송규 종사의 탄생지, 구도지, 성장지가 있는 소성리는 원불교 성주성지였다.

다시 진밭교에 앉아 깊은 밤, 별을 세어본다. 선·후천 교역기라, 달뫼의 울음소리 커지고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의 시름소리 더욱 깊어졌다. '사드 가고 평화 오라.'

사드 배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주성지를 수호하는 사무여한 평화결사단 단원들이 진밭교에서 기념촬영하다.

원불교는 평화입니다
참 많이도 외쳤다. 사람들이 종교의 님비 현상이 아니냐고 물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한반도 어디에도 사드는 필요 없다', '원불교는 평화입니다'라고 소리쳤다. 성주성지에서 출발해 서울 광화문, 보신각, 시청, 서울역 등지에서 쉼 없이 외쳐온 '평화'는 원불교의 대사회적 메시지가 됐고, 전국의 재가출가 교도들을 응집시킨 사드철회 평화운동으로 번졌다.

사드의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하나둘 소성리 진밭교를 찾았다. 사드장비가 들어오던 날, 70~80대 할머니들이 온몸으로 막아내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는 청년 차차(별칭)는 최근 직장을 그만두고 소성리 마을회관에 짐을 풀었다. 매일 새벽 진밭교에 올라 공사차량을 막는 피켓 시위로 부채의식을 씻는 중이라고 했다. 가끔 마을회관에서 듣는 할머니들의 투쟁사는 들을 때마다 눈물을 훔치게 하고, 장난삼아 "그때 왜 안 왔노?" 하고 툭 던진 외마디에 눈물이 핑 도는 그녀다.

돌아보면 너무도 많은 연대자들이 진밭교를 찾았다. 때로는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와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평화운동가들이 찾아와 우리에게 힘을 실어줬다. 힘든 싸움인 걸 알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평화임을 알기에 기꺼이 달려와 준 연대자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었다.
 
날이 새면 평화는 오리
올해도 벌써 진밭교에 수차례 눈이 내렸다. 겨울이 오기 전, 마을주민이 직접 만들어 보낸 난롯가에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지킴이들. 멀리 부산에서 보내준 장작불로 평화의 불씨를 지피면 길 위에서 먹는 컵라면에도, 교무님이 끓여다 준 떡국에도 평화가 깃든다. 제아무리 동장군이라도 평화로운 마음 앞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

오늘은 소성리 상황실 강현욱 교무가 골뱅이무침으로 점심상을 차렸다. 부산에서 온 한의사(이중광 교도)에게 침 맞고, 맛있는 점심까지 먹고 난 할머니들에게는 저 달마산 아래 사드만 뽑아버리면 더 이상 원이 없을 하루다.

뒤늦게 금연 할매가 점심을 먹으러 왔다. 영화 '소성리' 덕분에 이래저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할매가 요즘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다. "예전에는 죽을 때까지 싸운다 했는데 사드 뺄 때까지 안 죽을 끼다. 사드 빼고 죽을 끼다." 살면 얼마나 살겠느냐며,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금연 할매는 올해 나이 여든하고도 하나다.

올해 11월 새로 이엉을 이은 정산·주산종사 탄생가.
진밭교 앞에 굳건히 자리한 '진밭평화교당'.

평화의 길 위에서
사람의 발길이 끊긴 한밤중에는 진밭평화교당에도 적막이 감돈다. 그럴 때면 사무여한단 깃발과 수십 개의 평화 깃발이 세차게 나부낀다. '여기가 토굴이지. 꽈리를 틀고 앉으면 지상 낙원이 따로 없어.' 평화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 그들은 오늘도 기도로 새벽을 연다.

"은혜로운 세상은 결코 쉽게 주어지지 않기에 우리는 스스로 그 험한 길을 선택했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결코 그 길이 힘겹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안에 무한한 기쁨이 있고 보람이 있고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희열과 충만함을 누가 알겠습니까."

진밭교에서 울리는 어느 수행자의 뜨거운 눈물과 외침을 달마산은 알고 있으리라.

[2017년 12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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