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신은경 교무] 영산선학대학교에 입학해 새도반훈련을 받을 때였다. 법당에 들어서자 불단 옆에 큰 현수막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나 여기 무엇 하러 왔는가.' 일주일 동안 이루어지는 새도반훈련 기간 동안 우리가 연마해야 할 의두였다. 도시에서 살다가 영산으로 들어간 첫 날부터 나는 답답하고 우울했다. "이곳에서 과연 잘 지낼 수 있을까?" 교무가 되는 첫걸음부터 자신이 없었다. 마음가짐보다는 환경이 눈에 먼저 들어왔고, 편리함에 더 끌렸다. 추천교무에게 학교를 옮겨달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한 기억이 난다. "정말이지 내가 여기 왜 왔을까. 무엇하러 왔지?" 끊임없이 되뇌고 되뇌었다. 때때로 욕심이 생기고 마음이 나태해질 때 나는 이 의두를 꺼내어 연마하며 마음을 챙기곤 한다. 

얼마 전 인사이동 명단이 교역자광장 게시판에 올라왔다. 출가자들은 대개 3년 내지 6년이 되면 교단의 인사정책에 따라 발령을 받아서 생활하게 되므로 연말에 발표되는 인사이동이 뜨거운 감자로 올라온다. 게시판을 열어 이번에 옮기는 동기교무들이 없을까 하고 명단을 보았다. 

"000 교무는 여기로 가네, 좋겠다. 000 교무는 힘들겠군. 아~ 나도 이런 곳으로 가고 싶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마음이 요동쳤다. 자기가 있는 그 자리가 꽃자리라는 어느 교무의 말을 듣고 "내가 지금 뭐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불제중의 서원으로 출가의 길을 가는데 좋고, 안 좋고, 편하고, 힘든 자리가 어디 있으며, 자리를 구분짓고 있는 내가 갑자기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새벽 좌선을 하는데 문득 새도반훈련 때 나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나 여기 무엇 하러 왔는가' 라는 의두가 떠올랐다. 한동안 잊고 있던 이 의두가 홀연히 생각난 것이 참 신기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사심이 가득하고 계교하는 내 마음을 이 의두에 잡아두었다. 내가 진정 왜 출가를 했는지, 무엇하고자 하는지, 공심은 온데간데없고 사리사욕에 사로잡힌 내 마음을 점검하고 내 서원을 바로 세우는 시간을 가졌다. 

"말씀하시기를 그대들이 도량에서 생활하는 가운데 주심(主心)과 객심(客心)을 분간하여야 하나니 우리의 주심은 무엇인가. (중략) 우리는 성불 제중을 목적하고 이 도량에 모여 사나니, 성불하고자 함이 주심이요, 제중하고자 함이 주심이라, 우리가 만일 그 주심을 놓고 객심에 사로 잡혀서 주객이 바뀐 생활을 하게 된다면 우리의 전도는 어찌 될 것인가. 그런즉 그대들은 항상 그 주심을 철석 같이 견고히 하고 경우에 따라 객심을 잘 이용할지언정 객심으로 하여금 도리어 주심을 지배하지는 못하게 하여야 그 근본이 확립되리라."(〈정산종사법어〉 무본편 23장) 

주심을 잃어버리고 객심에 치우쳐버린 나를 보며 많이 반성했다. 어떻게 하면 성불하여 단 한 명이라도 더 대종사교법으로 낙원 세상에 인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노력해도 모자랄 시간에 헛된 망상으로 허송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있는 이곳이 늘 새롭게 피어나는 꽃자리임을 잊지 말고, 나 여기 성불 제중하러 왔노라고 마음에 새기며 매일을 희망차게 살아가야 하겠다. 

/광주교당

[2018년 1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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