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내 몸은 자동차요, 이내 맘은 운전수라 
한정없이 넓은 천지 전망 없이 먼 먼 길에 
자동차에 올라 앉아 목적한 길 가려하니 
좋은 길도 있거니와 험한 길도 더욱 많다.  
만일 한번 방심하여 운전 잘못 하고보면 
세세생생 거래 간에 육도 윤회 못 면하고 
악도타락 될 것이니 그 얼마나 두려운가 
수도인인 우리들은 일층주의 하여보세.  
어느 곳을 행하든지 어느 곳에 머물든지 
항상 일심 놓지 말고 연구 취사 합력하면 
운전하기 수월하고 매매사사 골라 맞아 
어떠한 험로라도 무사통과 하오리라. 
시_공타원 조전권(1909~1976) 종사. 
출처_원기 22년 <회보> 제34호 

어린 시절에 이 글을 읽었다면 '내 몸이 왜 자동차예요'라고 물었을 법하다. 자동차 운전은 기사가 하는 것이 현실에서는 맞다. 그러나 비유법이나 대유법을 알고부터는 '아- 세상에 재미있는 법칙이 많구나'하고 생각의 틀이 깨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검은 구름이 한 꺼풀 벗겨지는 느낌이랄까.

19세에 중앙총부에 찾아와 대종사를 뵈었던 공타원 종사도 '아-하'를 외쳤을 것 같다. 대종사에게 '전권'이란 법명을 받고 '일체중생의 어머니가 되어라'는 법문을 받들며 얼마나 마음속에 다짐을 했을까. 그러기에 이 시에서는 일체중생의 어머니로서 길을 잃지 않으려는 간절한 마음이 읽혀진다. 각골명심(刻骨銘心), 뼈에 새길 정도로 마음속 깊이 새겼을 듯하다.

하지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초심을 잊지 않으려하나 경계 따라 방심이 된다. 방심하여 운전을 잘못하면 사고를 불러온다. 바로 육도 윤회를 면치 못할 사고다. 일상생활에서 쉽게 운전을 하려면 일심을 놓지 않는 것이다. 그 일심에 의해 어떤 일도 무사통과가 된다. 오늘은 마음운전을 잘해서 낙원생활을 했는가. 그렇다. 그러면 내일도 일심으로 그리하면 된다. 
/둔산교당

[2018년 1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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