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물걸레로 때 무든 장판을 닦다가, 이 장판의 본색도 과연 깨끗하지 않었든가. 그러나 오래동안 버려두고 닦지를 아니한 결과, 그 한 겹 두 겹으로 무든 때가 가위 묵지를 편 것 같이 되었는데, 내가 이 장판을 닦기 시작한 처음에는 아무리 닦아도 닦아진 형용이 좀처럼 보이지 않더니 오늘까지 쉬지 아니하고 매일 일과로 닦고 또 닦아온 바 인제는 장판의 본색이 완연히 나타나며 물건을 대함에 맑은 영채가 빛이게 되었으니 나의 마음도 또한 이와 같아야 근본은 깨끗하여 추호의 진애가 없지만은 못 쓸 습관이 한없이 물들여서 오늘의 이 성격을 가지게 되였은즉 마음 닦는 공부도 또한 쉬지 아니하고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한다면 나의 자성에도 저 장판과 같이 본색이 도라 오고 광명이 나타날 때가 있으리라고 생각 합니다.  

글:  김양전(인적사항 미상)
출처: 원기 25년 <회보> 63호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인쇄물이 많지 않았을 1950년. 법설을 듣고 마음을 챙기니 사물을 통해 마음이라는 형상을 깨칠 수가 있었다. 이 글은 시가 아닌 감각감상이다. 위와 아래 부분 글은 생략했다. 때 묻은 장판을 닦으면 내 마음 역시도 이렇듯 때가 묻었음을 깨친 부분만 인용했다. 

사물에는 때, 무형한 내 마음에는 업력이 있다. 눈에 볼 수 있는 때는 어느 정도 닦으면 닦였다고 보인다. 하지만 내 마음의 때는 얼마나 두터운지 볼 수가 없다. 한정 없이 닦고 또 닦아야 한다. 그러니 조급한 마음도 해이한 마음도 내지 말고 그저 행해야 한다. 글쓴이는 '종사님 대법하에서 영원히 묵은 습관을 다 청산하고 청정 원만한 본심을 회복하겠다고 맹서'를 했다. 

교단초기의 감각 감상을 읽다보면 종사주에 대한 신성, 공동체 생활에 대한 환희를 느낄 수 있다. 순수하게 써 내려간 글 속에서 여의보주를 찾아낸 기쁨도 함께하게 된다. 내가 그 시대로 들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착각도 한다. 마음의 때를 닦기 위해 또 다시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둔산교당

[2018년 2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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