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당 대문을 나서는데 스치는 봄기운에 문득 가슴이 설렜다. 얼마 전까지 쌀쌀했던 공기가 조금은 훈훈하게 바뀌어 내 코끝에 봄을 얹어 주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내가 봄을 알아차리는 방법은 조금 특별하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개 땅에서 올라오는 새싹을 보거나 나뭇가지 끝에 맺힌 꽃망울을 보거나 사람들의 가벼워진 옷차림 또는 바뀐 달력을 보고 '아~ 봄이 왔구나' 하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코에서 봄을 느낀다. 따뜻한 봄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할 때면 봄이 왔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까지 새롭게 두근두근 뛴다. 그래서 나는 봄을 타는 편이다. 밖에 나가 코를 대고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면 겨우내 차가웠던 내 몸에 따뜻한 온기가 충전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렇게 봄을 만끽한다. 

봄이 왜 좋은가 하면 아마도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아서일 것이다.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오듯이 움츠리고 게으름을 피우던 나의 몸과 마음도 부지런을 떨며 시동을 걸 준비를 하게 된다. 그렇게 봄기운에 만물이 생생약동 하듯이 나 또한 활기 찬 에너지가 생겨나니 봄이 더욱 반가울 따름이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봄을 기다렸을 것이다. 새해가 되면 새 마음을 챙기듯이 겨울이 가고 새 봄이 오면 죽었던 마음이 새롭게 깨어난다. 그래서 정산종사는 봄에 비유해 우리 마음의 생사를 일러줬다. 

"세상에는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있다. 산하 대지에 봄이 오면 만물이 그 기운을 받아 씩씩하게 자라나지마는 고목에는 그 움이 트지 않는 것은 그 나무가 죽어서 봄 기운을 받을 능력이 없기 때문이요, 도덕 회상에 성자의 은혜가 충만하더라도, 신심이 지극하고 수행에 정진하여 구습을 고쳐 나가는 사람은 성불도 하고 제중도 할 수 있으나, 신심도 없고 수행에 게으르고 구습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퇴보 일로에 놓일 것이니, 이는 그 사람의 마음이 죽은 연고이다. 보통 사람들은 죽고 사는 것을 육신을 두고 판단하려 하나 마음의 생사가 더 중요한 것이다. 항상 공부에 부족을 느끼고 자기 개조에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은 산 사람이요, 공부에 자만 자족하여 전진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다."(<한울안 한이치에> 법문과 일화 마음공부 32절) 

몸이 죽고 나는 것은 깨우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러나 마음이 죽고 나는 것은 수행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순간마다 놓지 않고 바라보아야만이 깨달을 수 있다. 그렇게 마음을 챙기고 공부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을 진정 살아있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보지 못하고 생각 없이 흘러가는 대로 살게 되면 내 마음의 생사도 알 수 없을 뿐더러 죽어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때문에 우리는 항상 공부심을 챙겨서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키되 퇴보하지 않아야 성불제중의 서원을 이루는 생생한 부처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지난 겨울, 유난히도 추웠던 날씨만큼 내 마음도 따스한 온기를 많이 잃어버리고 살진 않았는지 봄이 오기 전 다시금 살펴본다. 원기103년 새 봄, 푸르게 빛날 세상을 기대하며 우리의 마음도 언제나 건강하게 살아 숨쉬기를 염원한다. 

/광주교당

[2018년 3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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