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도성 도무] 원불교가 요구하는 교도상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공적인 인간', 즉 공인(공도자)이라고 생각한다. 

〈정전〉 교의편에  '일원상의 수행'과 '일원상 법어'에서 '각자의 마음'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다고 한 말씀은 매우 의미가 깊다. 마음은 '각자'의 마음이지만 일원상과 같이 '지공무사'하다. '일원상과 같이'라는 말씀은 '지극히 공변되어 사가 없다'는 진리의 실체가 각자의 마음에 갊아 있다는 것. 이는 곧 일체가 지공무사하고 만유가 공적인 관계로 얽혀 있다는 말씀이다.

설문해자에 보면 사(私)는 '벼를 내가 소유하고 있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으며, 공(公)은 '내 것을 나눈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이를 통해 공(公)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건 '나눔'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도 없으니, 내 소유도 원래 없기 때문이다.

이 지공무사가 곧 무아봉공으로 이어진다. 이미 우리는 각자가 모두 지공무사한 존재들이므로 '봉공'은 참으로 당연한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수많은 생을 지나오는 동안 '나'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워낙 완강하여 '나'가 끝없이 발호하므로, 개인이나 자기 가족만을 위하려는 사상과 자유 방종하는 행동을 버리고(무아), 이타적 대승행으로써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데 성심성의를 다하자는(봉공) 것이다.(사대강령)

'일체 중생을 제도하는데 성심성의를 다하자'는 말씀은 〈정전〉 총서편 '개교의 동기'에 언명한 '파란 고해의 일체 생령을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려 함'과 같다. 그러므로 정전의 모든 교리가 그 자체로 공(公)의 경전이다. 그러므로 자타의 국한을 벗어나 공도를 실천한 공도자에 대해서는 지공무사한 '일원상과 같이' 숭배할 수밖에 없다.(공도자 숭배)

'일원상의 수행'과 '일원상 법어', 그리고 '공도자 숭배'와 '무아봉공'은 모두 〈정전〉 '교의편'에 있다. '원만구족'과 '지공무사'는 교의편에 열 번이나 나온다. 공(公)을 얼마나 중요한 신앙 교리로 삼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를 수행 교리로 실행케 한 것은 〈정전〉 수행편 '일상 수행의 요법' 9조에 '공익심 없는 사람을 공익심 있는 사람으로 돌리자'로 표현하고 있으며, '계문' 중, 특신급 에서 '공중사를 단독히 처리하며 말며'와 '병든 사회와 그 치료법'에서 그 일단이 보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미 '공인'임을 알고, '공익심'을 길러 교육, 교화, 자선의 '공도'사업을 수행하는 것이요, '공의'에 따라 '공중사'를 처리하는 것이다. 

'그대들은 다 공도의 주인이 되라.' 〈대종경〉 교단품 36장 말씀은 공도주의를 깊게 한다. "이 회상은 오직 도덕 높고 공심 많은 사람들이 주관할 세계의 공물(公物)이니 그대들은 다 이 공도의 주인이 되기에 함께 힘쓰라." 

"돌아오는 세상에는 어떠한 사람이 제일 귀한 사람이 되겠나이까. 참되고 공심 많은 사람이 제일 귀한 사람이 되리니, 오직 큰 공심을 가진 사람이라야 대중의 환영을 받으며, 널리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까닭이니라."(〈정산종사법어〉 도운편 8장) 

그렇다. 우리는 모두 공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원경고등학교

[2018년 3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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