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와 무가 구공이나 구공 역시 구족이라' 새겨
일상생활 경계 부딪힐 때마다 부족함 깨달아

교법에 맞춘 생활, 교도로서 마땅히 할 일


봄기운이 완연했던 3월27일, 임피교당 보산 라철중(70·普山 羅喆重), 혜타원 박정선(70·慧陀圓 朴正善) 부부 교도를 만났다. 1시간가량 진행된 만남은 '인터뷰'라기보다는 편안한 대화의 시간이었고, 두 교도의 인생을 담은 짧은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온 듯한 기분이었다. 편안했기에 더욱 좋은 추억들이 쏟아져 나왔던 그날의 대화를 지면에 옮긴다. 그들의 첫 만남을 아내 박정선 교도가 회상했다.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나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고자 원광종합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원광대학교(단과시절) 경리일을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재학시절 원불교에 대해서 알았지만, 입교한 것은 원광대에 취직한  원기55년쯤 될 겁니다. 어느 날 고등학교 친구들과 여행을 떠났는데, 그 곳에서 남편을 처음 만났어요.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그저 스쳐가는 인연이라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원광대학교 정문에서 다시 만나게 됐죠. 그게 인연으로 이어졌고, 부부의 연을 맺게 됐습니다." 

한국 광복군 제5지대장으로 활약했던 독립운동가 라월환 장군의 종질(從姪)로 전남 나주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라철중(본명 귀동) 교도는 오롯이 성실과 책임감 하나로 제일제당에 취업, 야간대학을 마쳤다. 결혼 후 신태인으로 이주하게 됐고, 아내 박정선 교도와 함께 신태인교당에 나가게 됐다. 

"어느 날, 교전을 읽어보니 마음에 와 닿아서 아내와 함께 교당에 다니게 됐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오게 됐죠. 어릴 적 출가를 염원해 항상 출가지원서를 지니고 있었던 아내였는데, 나를 만나 출가하지 못함에 미안함이 있었습니다. 딸도 원광어린이집을 다녔고, 며느리도 원불교 집안이어서 자연스럽게 모든 가족이 일원가족이 됐어요."

신태인에서 부안으로 이사해 소, 돼지 목장을 시작한 교도 부부는 가축파동을 맞는다. 결국 가축 일을 정리하고 서울로 이주해, 잠실교당-도봉교당에 다녔다. 박정선 교도는 도봉교당에서 깻잎김치를 만들어 팔던 일을 회고했다. 

"서울에 가서 잠실교당에 다니다가 쌍문동으로 이사를 해 도봉교당에 나가게 됐어요. 17년간 도봉교당을 다니면서 남편은 청운회장, 교도부회장을 역임했고, 저는 봉공회장을 했죠. 봉공회장을 할 때 깻잎 김치를 열심히 담았는데, 도봉교당 깻잎 김치는 무공해로 유명했어요. 새벽 4시반에 차를 타고 연천군에 가서 밭을 일구고 깻잎을 심고 재배해서 김치를 만들었죠. 자녀들이 성장을 하고 나니 원불교에 더욱 심취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앉아있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지만, 교전을 많이 읽고, 설법도 많이 들었죠. 그러다보니 내가 봉사를 해서 여러 사람을 웃게 만들어 주는 것이 큰 보시가 아닌가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2002년 현재 군산시 서수면에 위치한 ㈜원광빙고 농업회사법인을 설립한 라철중 교도는 임피교당으로 이적한다. 원광빙고는 보냉용 아이스팩 제조와 냉동 보관 및 급속 동결 등을 하는 업체로 아이스팩 분야 전국 최초로 브랜드 대상을 2차례나 수상한 바 있다.

"사업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부족하지만, 교당교화 활성화에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서전주교당에 다니고 있는 자녀와 손자들이 임피교당에 와서 법회를 보면 3대가 함께 하는 것에 큰 기쁨을 느낍니다. 현재는 교도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회장을 맡은 6년동안 교도들의 법회 참여를 이끌기 위해 노력했고, 교당에 일원가족이 더욱 많아지길 바라는 일념이었습니다."

전무출신의 의료, 보건, 요양사업을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는 공익복지부 법은사업회의 회장직을 5년간 맡고 있는 라철중 교도는 전무출신들의 복지제도 개선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퇴임 원로교무들의 정양형태 정립이 시급하고, 출가교역자 복지제도 개선은 교화 주체의 사기를 높이는 교단 혁신과제 중의 하나입니다. 교무님들이 교화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하는데 최근 인건비가 오르고, 금리까지 떨어져 예산 지원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태양에너지와 같은 재생에너지 사업을 시작해서 그 수익을 예산으로 사용한다면 출가교역자 복지 개선 및 교화 주체의 사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至極)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정전> 게송)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는 라철중·박정선 교도 부부. 그들의 이야기는 오롯이 교법으로 시작해 교법으로 끝맺었다. 

"유에서 무로 돌아간다는 게송이 큰 가르침으로 다가왔습니다. 남을 위해 봉사하고, 존중해야 나도 존중받는다는 것을 교법을 통해 깨달았죠. 일중에도 교전을 옆에 두고 읽으면서 경계에 부딪힐 때마다 나의 부족함을 깨닫곤 합니다. 모든 생활을 교법에 맞춰서 생활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원불교 교도로서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2018년 4월 13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