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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명과 〈정전〉 58. 좌선과 염불
현대문명과 〈정전〉 58. 좌선과 염불
  • 원익선 교무
  • 승인 2018.04.11
  • 호수 188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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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석가모니불은 좌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이후에도 이를 일관했다. 소태산 대종사 또한 평생에 걸쳐 좌선 수행을 했다.

깨달아 부처가 되게 하는 선, 부처가 되어서도 그 깨달음의 분상에서 다양한 자비구제의 방편을 쏟아내게 하는 선은 무엇인가. 심신의 통일을 목표로 하는 독좌명상이라는 인도의 요가 수행법이 불타에 의해 수용이 된 것이 좌선이다. 이후 대승경전이 양산되고, 중국에 이르러 이에 근거한 선의 수행체계가 발전했다.

실천불교로서 선을 뿌리내리게 한 사람은 인도인 달마대사다. 이후 6~8세기에 걸쳐, 2조 혜가는 능히 밝고 어둡지 않아 두렷하게 아는 상태인 '요요상지(了了常知)'를, 3조 승찬은 버리거나 취할 것이 없는 마음인 '유혐간택(唯嫌揀擇)'을, 4조 도신은 하나를 지켜 움직임이 없는 '수일불이(守一不移)'를, 5조 홍인은 부동하며 청정한 참 마음은 우리 안에 있다는 '수본진심(守本眞心)'의 사상을 펼쳐 선의 뿌리를 더욱 깊게 내렸다. 6조 혜능에 이르러 〈금강경〉의 '응하여도 주한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응무소주이생기심 應無所住而生其心)'는 구절의 깨달음에 의해 선은 거대산맥을 형성했다. 임제종, 조동종, 위앙종을 필두로 5가7종의 장강이 이 산맥에서 흘러내려 불법의 대지를 풍요롭게 했다.  

그렇다면 좌선은 무엇인가. 그것은 몽산덕이의 〈휴휴암좌선문〉 핵심인 '천만 경계에 치연히 작용하나 마음의 정체가 여여부동함을 좌라 하고, 종횡으로 묘용을 얻어 일일에 걸림이 없음을 선'이라고 하는 것에 잘 나타나 있다. 경식구민(境識俱泯, 경계와 인식이 소멸되어 분별이 없는 상태)은 물론, 성상(性相, 본성과 현상) 또는 체용(體用, 심성과 작용)이 일치되어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반야(지혜)의 움직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즉 좌선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불성을 현현케 하는 무한 동력을 말한다.

또한 염불을 중심으로 하는 정토사상은 중국에서 4~8세기 동안 발전했다. 발원지는 셋으로 여산혜원의 백련결사에 나타난 견불중심의 수행, 정토경전을 중심으로 주석을 행하고 내세정토를 희구한 담란·도작·선도의 정토신앙, 선·염불·계율의 융합을 지향하는 혜일의 선정쌍수(禪淨雙修) 혹은 선정일치의 계통이다. 두 번째의 계통은 일본, 세 번째의 계통은 한국에서 발전했다. 

염불의 방법은 부처의 공덕이나 자비하신 모습을 떠올리는 관념의 염불, 부처의 이름을 외는 칭명의 염불, 진리로서의 부처를 염하는 법신의 염불이 있다.

견불을 위한 염불은 관념의 염불에 속한다. 중국 천태종의 수행인 상행삼매는 90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염불을 하며, 아미타여래의 비전을 떠올리는 극한의 수행이다. 칭명염불은 문자 그대로 '나무아미타불'을 외는 것으로 주로 내세정토를 위한 염불과 결합됐다. 선정쌍수는 일종의 법신의 염불이다. 예를 들어, 염불하는 주인공은 누구인가를 생각하는 염불선은 우주의 법신과 내 안의 법신이 하나임을 확인하는 수행이다. 마음 속 아미타불을 찾는 것도 같은 이치다.   

염불이야말로 가장 서민적인 신앙이자 수행이다. 남녀노소, 사회적 계급, 장소를 불문하고 염불을 할 수 있다. 동아시아 불교의 발전은 이 염불 수행과 신앙이 기반이 됐다. 인간의 한계상황을 오직 일념으로 돌파하는 삶의 염불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광대학교

[2018년 4월 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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