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토 16세, 고요한 은퇴 수행자의 길 걸어
현임 교황에게 결정적 시기에 힘 실어주는 조력자

[원불교신문=김혜월 교도] 2005년 4월 19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제265대 교황에 올랐던 베네딕토 16세는 2013년에 신병을 이유로 스스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오랫동안 교황청의 신앙 교리를 담당했으며 초보수적인 교리해석으로 인해 가톨릭 교회에서도 '신의 로트와일러(독일산 맹견)'라고 불릴 정도로 강경 보수파로 꼽혀 왔다. 베네딕토 16세는 가톨릭 내의 진보성향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해방신학이나 종교 다원주의, 사제의 결혼이나 여성 사제 서품, 개신교와 합동 미사 등에 반대했다.

마찬가지로 낙태·동성애·콘돔 사용·혼전 성관계·페미니즘·인간복제 등도 반대했으며, '가톨릭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주장하는 진보적인 신학자 및 신자들과 갈등을 빚어왔다.

그가 고령 및 건강 상의 이유로 자진 사임을 선언했던 이면에는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 바티칸의 자금세탁과 관련된 부패 추문 등이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베네딕토 16세는 퇴임과 함께 '명예 교황'(emeritus pope)에 추대되었는데, 교황의 생전퇴임이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598년만의 일이어서인지, 가톨릭 내부에서는 여러 가지 우려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신학자 한스 큉은 베네딕토 16세가 사임 이후에도 바티칸에 남아 가톨릭에 영향을 미치는 '그림자 교황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2013.2.18. 독일 <슈피겔>) 교황은 이미 바티칸 내에 은퇴 후 거처를 마련해 두었으며, 그의 비서는 차기 교황이 뽑혀도 관사 총책임자로 관사에 남게 되는데, 결국 이러한 구조는 족벌주의의 새로운 형태라고 비판했다.

더불어 차기 교황이 자주적으로 교회를 이끌기 위해서는 빠른 시일 내에 유능하고 새로운 인물로 구성된 집행부를 꾸려 교황을 확실하게 뒷받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바티칸의 상황을 보면 한스 큉과 다른 진보인사들의 우려가 너무 앞서간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베네딕토 16세의 뒤를 이은 중남미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교황청 보수파들은 그가 신학과 교리에 해박하지 않기 때문에 이혼하거나, 재혼한 가톨릭 신자들에게까지 성체 성사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고, 동성애 등에 대해서도 너무 관대한 입장을 취하는 등 가톨릭 교리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또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덕적 이슈보다는 기후변화, 경제적 불평등, 난민문제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공공연히 불만을 표출해왔다. 

교황청 내 보수파 상당수가 여전히 '우리의 교황은 베네딕토 16세'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서 '은퇴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후임자 프란치스코 교황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

베네딕토 16세는 공개적으로 서한을 보내,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학적인 깊이를 결여하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은 '어리석은 편견'일 뿐이며, 나의 재위 시절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대 사이에 내적인 연속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가 은퇴 후에도 여전히 바티칸에 '자기 사람들'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리라는 비판과 우려 역시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청 내부에 있는 작은 수도원에서 간호사 4명, 개인 비서인 게오르그 겐스바인 대주교와 함께 생활하며 기도와 명상 등으로 소일하고 있으며, 카톨릭 내부의 행사나 공개석상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고 있다. 

결국 베네딕토 16세는 '상왕' 처럼 바티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신에 고요한 은퇴 수행자의 길을 걸으며, 현임 교황에게 결정적인 시기에 힘을 실어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베네딕토 16세는 올해 초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에 "육체적 힘이 서서히 쇠퇴함에 따라 주님의 집을 향한 내적인 순례에 접어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90을 넘긴 그가 마지막 순례의 길을 마치는 날, 빛의 영광 속에 들기를 빌며, 아울러 원불교에서도 이제는 그러한 종법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서울대종교문제연구소·화정교당

[2018년 5월 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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