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첫번째 일요일에 차선공양법회를 개최하는 흥성사 경내 차선총의 모습.

[원불교신문=노근숙 교수] '대종사서 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경외심을 놓지 말라 함이니, 어느 때 어디서 어떠한 사람을 대하거나 어떠한 물건을 대하거나 오직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하라." (<대종경〉 제4 인도품 33)

사람에게 경외심과 공경심을 가지라는 것은 다른 성현들의 가르침에도 많이 있다. 그리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라는 것도 고금을 막론한 가르침일 것이다. 그러나 물건을 대할 때도 경외심과 공경심을 가지라는 말은 흔하지 않다. 다만, 물건을 소중히 다뤄야 한다는 정도의 가르침에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대종사의 말씀은 대수롭지 않은 경계와 하찮은 물건에게도 흔히 구속과 피해를 당하는 것은 공경과 두려움을 놓아 버려서 함부로 행하는 까닭이라고 성냥 한 갑을 예로 들어 말씀한 따끔한 가르침이다. 일상생활 속에 나타나는 우리들의 바르지 못한 마음에 대한 경계의 말씀일 것이다. 

일본 차노유(茶の湯)에도 물건을 소중히 하라는 경(敬)의 가르침이 있는데, 바로 화경청적(和敬淸寂)이라는 일본 차의 정신이다. 물론 이 말이 태어난 곳은 중국이지만, 이 단어에 가치를 부여한 것은 일본이다. 그리고 화경청적은 사규(四規)라고 해일본 다도정신의 근간을 형성하고 있다. 화경청적은 당연히 일본의 차의 정신으로 정착해 일본 다인(茶人)이 지녀야 할 4가지 덕목이 됐다.

화경청적의 경(敬)은 사람에 대한, 사물에 대한 경의 마음가짐을 이르는 말이다. 즉, 타인을 경애하는 마음과 서로 존엄한 인격체임을 인정하며 스스로 겸손해지라는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그리고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경의 마음, 산천초목에 이르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들어 있다. 사물에 대한 경의 마음은 다실의 다구를 다루는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차노유에 필요한 도구, 다구에 대한 경의 마음을 늘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가짐은 일상생활 속으로 이어져 배려의 예로 나타난다.

차노유, 즉 다도를 배우는 것은 사범이 되어 타인을 가르치기 위함이 아니고, 우리 아이들의 인성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익히는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 차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우리가 건강하게 활동하기 위해서 식사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도 마음을 위한 식사, 양식이 필요한 것이다. 일본 차노유 공부는 마음의 양식을 갖기 위해서 차와 친해지고, 차와 하나가 되어 평생의 친구가 되는 것이다. 

차와 평생 친구가 되기 위해서 일본 다도(차노유)는 행다를 익히기 전에 화경청적의 정신부터 마음에 담도록 교육이 진행된다. 예를 들면 미즈야(水屋 : 차노유를 준비하는 곳으로 다구를 정리하고 씻는 곳이다.)에서 행하는 여러 가지 일이다. 미즈야는 주로 다구와 사람이 만나는 장소이다. 따라서 물건에 대한 경의 마음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물건에 대한 경의 마음이 하나의 문화 형태로 나타난 다인들의 행사가 있다. 바로 차선 총 공양의 의(茶筅塚 供養의 儀)라는 차선 공양법회이다.

이 행사는 교토(京都)부 우지시(宇治市)에서 매년 10월 첫 번째 일요일에 개최되는 우지차 마츠리(축제)에서 진행되고 있는 행사이다. 차선공양법회는 3인의 다조(茶祖), 에이사이(榮西) 선사, 묘에(明惠) 큰스님, 센노리큐(千利休)의 유덕을 기리는 헌다제와 함께 흥성사라는 사찰에서 거행된다. 흥성사 경내에는 차선총(茶筅塚)이 있는데, 바로 차선공양법회가 거행되는 곳이다. 차선은 말차를 격불할 때 사용하는 도구로 장인이 자신의 기술과 온 마음을 쏟아 제작하는 공예품이다. 그러나 용도가 소모품으로 수십 회 사용하다보면 차선 끝이 부러지게 된다. 

우지시에 있는 흥성사는 매년 10월 한 차례 우지차 축제를 열고 있다. 축제는 에이사이 선사, 묘에 큰 스님, 센노리큐 등 3인의 다조를 위한 헌다제도 진행된다.

차선 공양법회는 오래 사용해서 낡아버린 차선을 공양하는 의식으로 일본 전역에서 거행되고 있다. 그 동안 수고한 차선에 대한 감사와 이제 이별을 해야 하는 애틋한 마음을 전하는 의미가 포함된다. 의식 내용을 보면 차선총 앞에 이미 그 역할을 다한 차선을 겹겹이 쌓아 놓고 공양법회를 진행한다.

승려에 의해 진행되는 법회 후반부에 불을 피워 차례차례 차선을 태운다. 마치 오래된 친구나 가족을 보내는 것과 동일하게. 공양물을 올리며, 스님은 엄숙하고 정중하게 법회를 진행한다. 사물을 대상으로 하는 공양법회이지만 그 분위기는 사람을 보내는 공양법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차선을 공양하는 법회는 차가(茶家)의 세시풍속으로 차와 관련된 순수한 행사이다.

이렇게 사용한 차선을 태워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일본 다인(茶人)의 풍습이며 다인의 마음이다. 그리고 물질에 대한 경(敬)사상이 적용된 대표적인 차 문화이다. 즉, 물건을 소중히 하라는 일상생활의 지침을 구체적인 형태로 만든 것이 바로 차선 공양 법회라는 차 문화이다. 이러한 공양 법회문화는 일본사람들의 생활풍습에도 많이 남아있다, 예를 들어보면 바늘공양, 인형공양 등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부러진 바늘을 애통해하는 유씨 부인이 지은 수필 <조침문>이 있다. 

일본은 실체가 보이지 않는 경사상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기에 앞서 <차선 총>이라는 조형물을 통해서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이해하는 실용적인 문화로 들였다. 일본인은 이렇게 자신의 문화를 일정한 모양으로 만들어 낸다. 즉,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하게 구체화시키고, 그것을 조형물로 만들어 일반적인 뜻이나 내용으로 보여주고 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형태는 일상생활 속에 용해되기 쉽고 사람들의 마음도 쉽게 움직여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차선공양 의식은 물건의 소중함을 아는 마음에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융합된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경사상를 갖고 있는 차노유문화를 디지털문화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21세기에 접목시키려는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것은 디지털 문화에 아날로그 문화를 결합하는 하이브리드현상이 일어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필요한 시도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감정이나 공감능력이 발현되는 것은 역시 아날로그적 문화에서 배양된다는 것이고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일본 차노유문화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차노유문화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산업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며, 또한 새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고자 하는 연구도 지속되고 있다. 

물질에 대한 경 사상과 더불어 또 하나의 축을 이루고 있는 것이 사람에 대한 경사상으로 기일다례, 헌다의례이다. 엄숙하게 진행되는 기일다례와 헌다의례는 경사상의 실체를 보여주고 있는 또 하나의 차 문화이다. 우리 모두 대종사의 가르침과 차 문화가 4차산업 발전에 든든한 기반이 되어 그 역할을 수행하기를 기원해 본다. 

차선을 태워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 

[2018년 5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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