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원익선 교무] 응용은 대응하여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응용한다는 말인가. 삼학이다. 삼학을 삶에 적용하는 것이다. 현대문명의 결점은 이 삼학을 응용하지 못하는 것에 있다. 이 문명의 치유를 위해서는 삼학을 응용해야 한다. 개인에서부터 집단으로까지 균형과 조화를 이룬 삼학 공부가 근본이 되어야 한다.

온전한 삶은 삼학의 원천인 일원상진리를 믿고 의지하며, 이 진리를 구현하는 수행자로서의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의 궁극적 목표는 평화, 지복, 순수, 확신, 기쁨으로 충만한 삶이다.

상시응용주의사항은 그러한 삶의 길을 제시한 것이다. 지도 없이 살아가는 삶을 안내하는 나침반이다. 매일 매일이 삼학의 힘을 생산하는 공장이며, 그 힘으로 행복의 이익을 내는 경영의 장소이다. 그리고 삶의 흑자를 재투자하여 진리적 삶을 전파하는 법상(法商)의 기업가가 되는 길이다. 나는 진리의 CEO인 셈이다. 이 삼학이 현실 경제, 정치, 문화, 종교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개인의 삼학이 사회적 삼학으로 확산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경제적 인간, 정치적 인간, 문화적 인간, 종교적 인간의 밑바탕에는 삼학의 원천적 힘이 있어야 한다. 한 마디로 진리적 힘을 갖춘 인간을 말한다.

오늘날 인류문명의 혼란은 진리적 삶의 상실이 불러온 현상이다. 경제문제를 예로써 들어보자. 자본주의가 석권한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생산·유통·소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경제활동은 동맥경화에 걸린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어떻게 한정된 지구 자원으로 무한대의 발전이 가능하겠는가. 지구와 같은 행성에서 자원을 가져오지 않는 한 욕망에 근거한 이 시스템은 붕괴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어 희망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어디까지나 우리의 희망을 미래 속으로 연장시킨 것에 불과하다. 

현재 일기일회(一期一會)의 순간을 사는 우리 자신은 과연 행복한가, 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이미 모든 성현의 가르침 속에 있다. 일차적으로는 지족과 안분의 삶이다. 그러나 이는 개인 차원에서 집단 차원으로까지 확대해서 보아야 한다. 개인의 삼학을 집단의 삼학으로 확산시켜야 하는 이유다. 온전한 삶은 이웃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며, 이웃의 행복이 나의 행복임을 느끼는 것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일원상진리는 삼학을 통해 개인과 사회에 고루 구현되어야 한다. 삼학으로 자신을 치유해야 하지만, 사회도 치유해야 한다.

모든 결핍, 불안, 불의, 부정, 불통, 불화를 제거하는 동시에 그 자리에 온전한 진리가 구축되어야 한다. 개개인의 마음의 고통을 제거하는 것에서부터 사회적 고통을 제거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사은의 약재와 삼학의 의술이 절실하다. 상시응용주의사항은 진리적 인간, 진리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처방인 셈이다. 핵심은 인간의 변화다. 그 변화가 문명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무상(無常)을 관조함으로써 마음에 평정을 심고, 은생어해로써 원망과 고통을 은혜와 행복으로 변화시키며, 무아(無我)를 통찰함으로써 걸음걸음이 우주와 하나가 되어 내 인생의 진정한 주인공을 회복하는 삶이 되는 것이다. 일상의 삼학이야말로 인간과 사회를 불토낙원으로 이끄는 청정에너지이자 무한동력이다. 

/원광대학교

[2018년 6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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