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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륜 도무 교화자의 삶 4. 잘난 것 하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도
김천륜 도무 교화자의 삶 4. 잘난 것 하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도
  • 김천륜 도무
  • 승인 2018.06.28
  • 호수 189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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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김천륜 도무] 정전마음공부방에 다니는 것이 낙이었다. 그곳에 다녀오면 너무 행복하고 재미있어 장례식장 식당에 근무하는 여직원들에게 '오늘은 이것을 배웠다'며 가르쳐 주기도 했다. 가르치면서 결국 내가 공부하는 것이라고 하면 여직원들도 참 좋아했다. 그리고 교전공부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여직원들과 교전을 읽으면서 "이게 무슨 뜻인 것 같아요?" 라고 물으며 토론도 했다.  처음에는 서로가 말을 잘 하지 않으니 "네 생각은 어떤데?"라면서 자꾸 물어보면서 사회자 역할도 했다. 그냥 읽고만 넘어가면 형식적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이렇게 서로의 생각과 의견을 묻고 답하다 보니 교전공부가 깊어진 것 같았다.

재밌게 공부하면서 한편으로는 기도에 대한 갈증도 커져만 갔다. 외부인들이 드나드는 병원 건물이라 한층을 차지하는 법당임에도 항상 열쇠로 문이 잠겨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도 기도가 절실했는지 나는 법당 교무에게 번번히 열쇠를 달라고 졸라대곤 했었다. 

법당 교무는 귀찮았는지 "네 맘대로 하셔" 하면서 별도의 열쇠 하나를 줬다. 아무도 없는 법당에 기도를 하기 위해 앉아있으면 정말 세상이 전부 내 것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정말 기도를 많이 했다.

예전 총부에서 모셨던 기도는 남편에 대한 원망심을 녹이는 기도이자 참회기도였다. 그러나 산본병원 장례식장에서 올리는 기도는 '내가 잘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을 깨닫는 기도'였다. 총부에서 올린 기도는 남을 위한 참회였다면, 여기서 올리는 기도는 내가 정말 잘난 게 하나도 없는, 그동안 너무 많이 오만하게 살았다는 나 자신에 대한 참회기도였다.

'내가 겸손하게 살았어야 하는데 너무 오만했구나.' 내가 하나둘 없어져갔다.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지니 생활에 활기를 띠었다. 마음이 살아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참 열심히 다녔던 정전마음공부방이 담당교무의 인사이동으로 없어지고 말았다. 아쉬운 마음과 나에 대한 참회심으로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고 초심으로 돌아갔다. 

'원불교에서 어떻게 살려고 왔는데 너무 자만하고 살았구나. 내면을 갖춰야 하는데 외연에 치우쳤구나' 하는 마음들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는 기도를 올렸다.

홀로 법당에 앉아 기도하면 온 세상이 내 것 같아
매일 심신작용처리건과 감각감상 적어 문답감정

또 한편으로는 일기기재를 꾸준히 했다. 매일매일 심신작용처리건과 감각감상을 적어서 어느 스승님에게 메일로 보내 감정을 받다 보니 내 마음의 변화를 관찰하는 법도 알게 됐다. 지금도 자연의 변화하는 이치나, 심신작용을 꾸준히 살피며 일기기재하는 공부를 놓지 않고 있다. 소태산 대종사가 <정전> 정기훈련법에 밝힌 '우주 만유의 본래 이치와 우리의 자성 원리를 해결하여 알자'는 성리 공부에도 나름 열심히 공부 중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내 스스로 넉넉해지고 마음이 안정됐다. 처음에는 이 곳 번화가의 산본병원이라는 무인도에 들어와 나홀로 떨어져 사는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이 없어지면서 즐거움, 행복감, 자신감 등으로 편안해졌다. 내가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해도 이젠 잘 살 수 있겠다는 자신이 생겼다.
이후에 나는 서울보화당에서 2년 살다가 중앙여자원로수도원으로 옮겨 6년째 살고 있다.

내가 살았었던 삼정원이나 산본병원 장례식장, 서울보화당은 모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기관이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가 할 수 있는 그런 곳.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무출신하러 와서 누구라도 살 수 있는 이런 자리에 내가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말해서 월급을 받고, 사대보험도 되기 때문에 이런 곳은 다른 누구라도 충분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마음공부법을 알고 나니 정말 우리 법대로 사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그동안 내가 은혜받은 것을 생각한다면 아무리 열악한 곳이라 할지라도 그곳으로 가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던 차에 황영규 원로교무님이 "다른 복지시설 갈래?"라고 물었다. 나는 "아닙니다. 전무출신인데 부족한 곳에 가서 열심히 살아야지요. 대신 법으로 살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그렇게 중앙여자원로수도원으로 왔다.

/중앙여자원로수도원

[2018년 6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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