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교당 오니시 히데나오 교도
〈대종경〉 일본어 번역, 일본교화 위해 중요한 일
원불교 알리며 한·일 양국 다리역할 하고 싶어

[원불교신문=이여원 기자] 일본인으로 원광대학교 대학원 불교학과에서 원불교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는 오니시 히데나오(법명 원성·오사카교당)교도. 내달 8월 박사학위 취득을 앞둔 그를 원광대학교 원불교사상연구원에서 만났다.  

능숙한 한국말로 자신을 소개하는 그에게 원불교를 접하게 된 계기를 먼저 물었다. "원기88년 전남 장성교당에서 입교했어요. 오사카에서 공립중학교 교감직을 퇴임하고 그해 5월부터 장성교당에 다니게 됐지요. 제 연원은 원광대학교 김범수 교수입니다." 그는 천천히 김 교수와의 인연을 설명했다. "일본에 유학을 온 교수님과 인연이 됐어요.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더 깊이 배우고 싶어서, 퇴직하자마자 한국에 온 것도 김 교수님과의 인연이 있어서 가능했지요. 한국어 공부도 교수님이 개인적으로 1년 동안 지도해 주셨어요."  

일상적인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고 싶어 '가벼운 생각'으로 교당을 다녔다는 그. 그러나 교당에 다니면서 느낀 교도들과의 교감은 그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법회가 끝날 때 다같이 '마음공부 잘합시다'라고 하는 말에 신선한 느낌을 받았어요. 교리와 체계를 갖춘 수행으로써의 '마음공부'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공부'를 하고 원불교를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김 교수님 입교 제안을 승낙했지요." 시종일관 예의를 갖추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전하는 그다. 이후 그는 원광대학교 어학원에 입학했다. 

"아들이나 딸 같은 외국인 유학생(주로 중국인 유학생)과 책상을 나란히 하고 한국어를 실천적으로 쓸 수 있게 공부하면서 상급까지 종료했습니다." 한국어를 '실천적으로' 쓸 수 있게 공부했다는 그의 표현이, 일순 마음에 툭 와 닿는다. 

이때부터 원불교를 더 깊이 알고 싶은 그의 고민이 시작됐다. 결국 그는 원광대 대학원 불교학과를 선택했고, 대학원 입학에 필요한 서류를 마련하기 위해 모교인 교토 입명관대학(立命館大學)을 40여년 만에 방문해 졸업증명서를 신청했다. 그렇게 시작한 석사과정은 원불교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인 지식이 됐다.  

그는 원불교 창립의 독자적인 의의를 밝히기 위해 〈원불교의 민중사상〉이라는 주제로 석사 논문을 썼다. "석사 논문을 통해 원불교가 창립된 동기의 하나로 민중사상이 바탕이 되었다는 것과, 아울러 원불교의 후천개벽사상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실 논문 제출 마감일자가 다가올 때는 마음이 많이 초조했어요. 논문 내용에 자신이 없어 망설이고 있었을 때 어깨를 뚝 밀어준 분이 최선각 원무입니다." 공부길에 도움을 준 이들,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기억해 내는 그는 도반들의 조력을 큰 힘 삼아 박사과정에 들어갔고 원불교학을 전공했다. 박사학위 논문은 〈다니카쇼조와 최제우의 비교연구-공공철학의 관점을 중심으로〉다.

언어도, 문화도, 생활도 전혀 다른 곳에서 '낯선' 종교 원불교를 전공하기 까지, 그 지난하고 힘든 여정은 가히 짐작하고 남을 일. "교학대학의 기초적인 지식이나 교육과정 체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원불교 용어부터 너무 어려웠어요. 그만큼 교리를 알아가는 과정이 더디고 힘들었지요. 지금도 교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반면에 그만큼 자유롭게 원불교의 기초지식부터 하나씩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입교 때부터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의 염려와 우려도 깊었다. "저에게 맞대놓고 말한 사람은 없었지만 아내의 걱정이나 친구들의 의심스러운 눈치가 있었지요. 그런 상황에서 가족들에게 입교도 적극적으로 권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성실한 교도였다고는 할 수 없지요." 자신의 신앙수행을 근본 삼아 가족교화를 이끄는 사람, 그가 생각하는 '성실한' 교도일 것이다.  박사과정 마지막 1년, 그는 대학원 근처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매일 새벽 5시부터 중앙총부 송대에서 좌선과 기도에 참여했다. 그 경험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그가 말을 잇는다. 

"외국인으로서 낯선 종교인 원불교를 확실하게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전공을 선택한 근본적인 동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광대 대학원 석사와 박사과정에서 깨닫게 된 원불교 교리는 이런 저의 소망을 충분히 이룰 만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에 담겨 있는 법문은 〈정전〉 제12장 솔성요론. "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을 것이요"라는 법문에서 그는 교리의 객관성과 보편성, 아울러 원불교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게 된 '큰' 이유라고 소신을 전했다. "앞으로의 서원은 오사카교당에 다니면서 일본인 교화에 제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 유학하면서 느낀 체험과 공부를 통해 배운 것을 충실히 살리면서, 김법조 교무님 곁에서 교화활동을 도와 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일본 교화에 관련된 중요한 일로 〈대종경〉 일본어 번역을 완성해야 한다고 그는 다짐한다. "〈대종경〉을 비롯해 원불교 관련 서적을 일본어로 번역·소개해서 한일 양국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그렇게 그의 나라 일본에서, 자신의 서원을 펼치는 원불교인이 될 것이다.

[2018년 7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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