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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의 삶] 살거리보다 놀거리 가득, 보러가는 전통시장
[대안의 삶] 살거리보다 놀거리 가득, 보러가는 전통시장
  • 민소연 기자
  • 승인 2018.07.25
  • 호수 18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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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마량놀토수산시장
한국의 나폴리, 강진 미항 마량바다 배경 토요 수산시장
지난해 4월~11월 44회에 27만명 다녀가 23억 매출
노래자랑·회뜨기 이벤트와 지역경제 살리는 할머니장터
남도의 미항 마량항을 향해 뻗어있는 강진 마량놀토수산시장. 크지 않은 규모지만 다양한 점포를  배치했다.
남도의 자랑 건어물을 파는 지역주민. 바가지가 없는 마량놀토시장은 정가와 정량, 정찰제로 운영하고 있다.

[원불교신문=민소연 기자] "아따, 시장에 사러만 온다요? 장은 보러 오는 것이제."
바닷내음까지 착착 감기는 구수한 사투리. 판소리처럼 밀고 당기는 추임새 속에 은근히 속내를 담아낸 말씨에 남도에 왔음을 실감했다. 일약 전통시장계의 샛별이자 강자로 떠오른 전남 강진 마량놀토수산시장. KTX는 커녕 버스마저도 서울과 부산서는 하루 여섯 번뿐, 익산이나 전주에서 출발하면 광주에서 갈아타야하는 시골 아닌가. 인구도 서울월드컵경기장 수용인원 6만7천명의 절반을 갓 넘긴 3만7천명인 강진, 그 중에서도 작은 해변 마량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전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흥강자
'강진을 살리는 효자축제', '지역경제 활성화의 알짜 선두주자'라는 수식이 붙는 마량놀토의 성적부터 살펴보자. 4만 명도 살지 않는 강진군인데, 지난해 이 시장에 방문한 사람들 수가 27만 명이었다. 총 매출액은 23억원으로, 2016년 대비 방문객은    10%, 매출은 8% 증가했다. 상시장도 오일장도 아닌, 이름처럼 토요일, 4월~11월만 여는 것을 감안하면 실로 놀라운 수치다. 잘 낳은 시장 하나가 이리도 출세하니, 마량면 전체 음식점과 상가, 숙박업소 역시 날개를 달았다. 도통 늘지 않던 방문객과 매출액 역시 10%이상 늘어난 것이다. 

2015년 문을 연 뒤 입소문을 타다 '2017 강진 방문의 해'를 계기로 전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흥강자로 떠오른 강진 마량놀토. 이곳은 상인들과 지자체가 기획부터 참 잘 해낸 결과다. 일단 만들어놓고 운영해보는 것이 아닌, 위치와 배치, 그리고 마량놀토의 자랑 '3최3무'를 시작부터 내세웠다. '3최'는 바로 최고 신선, 최고 품질, 최고 저렴이요, '3무'는 수입산과 비브리오균, 바가지요금이다. 

사실 말만으로는 뭔들 못할까. 마량놀토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정과 변화를 거듭했다.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불편하게 느끼는 주차나 공용화장실을 갖췄으며, 제품마다 이름과 가격을 붙여 정찰제를 추구했다. 마량놀토가 특별히 신경을 쓴 부분은 또 있다. 시장의 꽃이지만 뭘 택해야할지 모르고 자칫 바가지 쓰기 쉬운 먹거리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한 것이다.

마량 부녀회 등이 운영하는 다섯 군데 식당의 메뉴는 거의 비슷한데, 추천 음식인 된장물회, 소낙비(소고기낙지비빔밥)가 1만원~1만2천원이다. 이 메뉴들은 개장에 앞서 시민 시식회로 결정되는데, 광주대학교 호텔관광경영학과와 호텔외식조리학과 학생들이 직접 시장을 둘러보고 내놓은 작품들이다. 명단은 그해 수확량이나 맛에 따라 조금씩 바뀌며, 보통은 된장물회와 소낙비에 오감행복회, 삼합라면, 장어탕까지 5대먹거리로 꼽힌다.

여름이 막 기지개를 편 7월 어느 토요일, 강진에서도 한참 남쪽인 마량항에 닿았다. 그냥 바다 인근이나 바닷가 일부가 아닌, 바다를 향해 비죽 나와 있는 방파제 하나를 통째로 쓰고 있는 마량놀토. 시장 어디에 앉아도 '한국의 나폴리' 남도의 미항 마량 바다가 배경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삼삼오오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점심은 당연히 저렴하면서도 남도의 맛을 담뿍 느낄 수 있는 시장 추천 메뉴. 1만원짜리 물회 한그릇만 주문해도 손맛 가득한 반찬 8가지가 나와 남도의 푸진 인심을 느낄 수 있다. 물회 안에 오밀조밀 자리한 해산물은 당일 조업한 물고기로, 바다까지 와서 먹는 신선함 그대로를 전해준다. 새콤달콤한 된장물회에 소면까지 말아 시원하게 먹는 것도 좋지만, 옆 전복집도 벌써 대기줄이 길다. 유난히 전복이 저렴한 올해, 야심차게 준비한 전복라면, 전복뚝배기로 이열치열 몸보신도 인기다.

관광객들이 마량놀토에 와서 가장 먼저 놀라는 것 중 하나가 의외로 작은 규모다. 노량진이나 자갈치처럼 판매와 구입 위주의 거대 수산시장을 생각하고 왔다가는 돌아가는 손이 가벼울 수 있다. 실제로 해산물과 해초 및 건어물 점포의 비중은 의외로 그리 크지 않다. 마량놀토 34개의 부스 중 수산물 좌판은 7개요, 건어물 판매장이 5곳뿐이다. 물론 심사를 통해 입점하며, 친절하고 바가지가 없는 정찰제 운영이다. 기본적으로 연중 20~30% 특별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하는데, 현지인이든 외지인이든 차별없이 같은 가격에 같은 양을 내준다. 

정작 시장에서 판매 점포들보다 더 큰 것이 복판의 야외 식탁이며, 그보다 더 큰 것은 그늘막 공연장이다. 1년이면 27만 명이 찾고, 시장은 '사는 것이 아닌 보는 것'이라고들 하며, 이름에 '놀'이 들어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흔히 살 것 없으면 안 가게 되는 다른 시장들과는 달리, 마량놀토수산시장은 장바구니 하나 없이도 '놀러'들 온다. 혼자도 오고 둘이도 오며. 아예 마을에서 단체로 오기도 한다. 오후에 펼쳐지는 놀거리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오후1시 무렵 부릉부릉 시동을 건 '마량 미항 토요음악회'는 남도사투리 찐한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부리나케 사람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노래자랑. 기계음 반주에 색소폰과 전자드럼뿐이지만 선선한 바닷바람에 배도 부르겠다 노래 한자락이 안 나올 수 없다. 오늘 라이벌은 해남 마을 팀과 완도 마을 팀, 각각 관광버스를 빌려 왔다는 마을 주민들은 해물전에 막걸리를 마시며 자기네 동네 가수를 응원했다.

이어 마량놀토의 하이라이트 회뜨기쇼가 펼쳐졌다. 수산물 점포에서 솜씨를 뽐내는 이 순서는, 신선한 회를 방문객들과 나눠 먹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해질녘부터 밤까지 가수들의 무대가 진행돼 방문객들의 흥은 높아만 간다. 중간중간 경품추첨으로 냉장고, TV, 온수매트 그리고 시장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 등도 나눠주니 공연보고 회도 먹고 선물도 받는 일석삼조의 잔칫날이다.

선선한 바닷바람과 그늘 아래서 노래자랑을 즐기는 방문객들. 즐길거리가 이어지는 흥넘치는 시장이다.

마량항 넘어 군까지, 효자시장 마량놀토 
마량놀토의 흥행은 강진의 또 다른 자랑거리 고려청자와 한우에도 바람을 일으켰다. '찾아가는 강진청자 경매'도 맛깔나게 열리고,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에는 강진착한한우 10% 특별할인, 그리고 때때로 김, 미역 등 수산물을 할인하는 '깜짝 할인'도 펼쳐진다. 

마량항을 넘어 군까지도 살려내는 효자 시장 마량놀토. 무엇보다도 지역 사람들이 다 같이 잘 살자는 상생정신을 바탕으로 한 곳이라 더욱 믿음이 간다. 수산물 좌판보다 더 많은 '할머니장터'에 서는 10팀의 주민이 손수 지은 옥수수며 다시마식초, 채소 등을 판매한다. 신청하는 주민들에게 고루 기회를 줄 뿐 아니라 점심값까지 주니 뜻밖의 소득을 올리는 할머니들은 강진군과 시장이 참 고맙단다.

사실 필요한 것들이야 멀리서도 살 수 있고 인터넷으로도 주문할 수 있는 시대다. 사람 냄새 나는 전통시장이 꼭 있어야 하는 이유를 고민한 흔적이 마량놀토에는 역력하다. 살거리보다 먹거리, 먹거리보다 놀거리가 풍부하며 오랜시간 다리 편하게 앉아 즐길 수 있는 바다 시장. 교통도 불편한 강진의 작은 항구가 지난해 최고의 전통시장으로 꼽힌 이유다.   

[2018년 7월2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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