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도성 도무]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인 1234년,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만들어 책을 펴냈다. 그로부터 200년 뒤에 독일사람 구텐베르크(1394-1468)가 금속활자 인쇄술을 발명했다. 구텐베르크는 1455년 42행의 성서를 인쇄하여 발간함으로써 금속활자 인쇄술의 신기원을 마련했다. 근대 학문은 더욱 발전하였고, 이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이어졌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에게 지식을 전파하고 세상의 진화에 기여했다. 

우리나라의 금속 활자 기술이 서양으로 전파됐는지는 정확하진 않지만 분명 영향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는 널리 보급돼 유럽이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됐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금속활자를 발명한 우리나라는 왜 그러지 못했던가. 그 차이는 문자의 차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라틴어뿐 아니라 유럽 각 나라가 사용하던 다양한 문자들이 널리 활용되고 발전하는 토양이 됐지만, 우리나라는 일반 대중들과 유리된 한자서적, 한자를 익힌 계층만 읽을 수 있는 책을 인쇄했기에 인쇄술이 세상에 미친 영향력은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묘한 것은 구텐베르크가 금속 활자를 발명한 시기는 1443년에서 1444년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한글 역시 1443년에 창제되었고, 1446년에 세상에 반포됐다는 것이다. 엄청난 거리로 격절되어 서로 융통을 보지 못했으나 인류 문화의 역사에 한 획이 그어질 때는 그 매듭이 동서양을 관통한다는 것도 알게 된다. 다만 한글이 그 가치를 발하기에는 500년이라는 세월을 더 기다려야 했다.  

대종사 한 제자가 한문 지식만을 중하게 여기자 말씀한다. "도덕은 원래 문자 여하에 매인 것은 아니니 그대는 이제 (한문 지식만을 중하게 여기는) 그 생각을 놓으라. 앞으로는 모든 경전을 일반 대중이 두루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편찬하여야 할 것이며, 우리말로 편찬한 경전을 세계 사람들이 서로 번역하고 배우는 날이 멀지 아니할 것이니, 그대는 어려운 한문만 숭상하지 말라."(〈대종경〉 전망품 3장)

대종사는 '일반 대중이 두루 알 수 있는 쉬운 말'이 곧 우리말임을 알리고, '일반 대중이 두루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우리말의 가치를 삼았다. 어려운 한문 경전은 일부 사람들만 볼 수 있고, 일반 대중은 접근하기 어려우므로 천하 사람이 다 행할 수 있는 '천하의 큰 도'를 담아내기 어렵다. '쉬운 말'로 경전을 만드는 것은 차별을 깨고 '균등 세상'을 만드는 바탕이 된다. 글을 읽으면 지식을, 지식은 지혜를, 지혜는 각성을, 각성은 행동을, 행동은 변화를 가져온다. 세상의 진화는 그 가운데 있다. 교법의 시대화·생활화·대중화를 표방했던 대종사가 우리말을 드러내고 한문 숭상을 경계한 것은 어쩌면 시대를 통찰하고 내린 당연한 가르침이었다. 

〈원불교전서〉는 우리말 사용을 확장했고, 탄생부터 한글 경전의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아직 한자의 영향을 다 벗어나지 못했다. 한자와 한글을 섞어 쓰는 국한문 혼용체의 모습이 남아 있고, 의례나 규칙, 휘호나 현판, 법문 등에 한자 사용이 많다. 그래서 여전히 어렵다. 더 쉬운 우리말, 우리글을 활용하여, '누구든지', '아무라도' 쉽게 알 수 있는 글로 자아낸 경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원경고등학교

[2018년 8월1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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