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혜성 교무] 기차역이다.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긴'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중간쯤 내려왔을까. 뒤쪽이 뭔가 요란하다. 이어폰을 꽂고 있던 터라, 잘 들리진 않았지만 불길한 예감에 뒤를 돌아본다. 앗! 커다란 캐리어 가방이 내 쪽으로 굴러 떨어지는 중이다. 피할 겨를도 없이 딱딱한 가방은 내 종아리를 강타한다. 아프다. 

그래도 '가방이 더 굴러 떨어지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다른 성한 발을 이용해 가방을 잡는다. 뒤이어, 에스컬레이터 시작점에서 가방주인이 후다닥 뛰어 내려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에스컬레이터엔 나 밖에 없었다. 갑자기 흉기가 된 본인의 가방에 주인은 얼마나 놀랐을까. 아프긴 하지만, '괜찮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뛰어온 가방주인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말을 쏟아낸다. "아! 제가 뒤에서 계속 가방 굴러 떨어진다고 소리 질렀는데 이어폰 끼고 계셔서 못 들으셨죠?" 응? 다짜고짜 무슨 말인가. 귀를 의심했다. 가방에 맞은 것이 '이어폰을 끼고 있던 내 잘못'이란 말인가? 가방을 간수 하지 못한, 사고를 일으킨 본인 잘못이 아니고? 그 말엔 '네, 제가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못 들었네요'라고 대꾸해야 하나. 먼저 죄송하다고 말해야지. 왜 자기 잘못을 남에게 돌리나. 당황스럽다. 요란해진 마음은 일단 멈춘다. 큰 숨을 들이쉬고 나니, '지금 당황해서 말을 이렇게 하겠지. 내 잘못이라는 것은 아닐 거야' 생각한다. 

상대의 당황을 이해하고, 적당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곤 기차에 올라타 생각한다. 가방주인의 첫마디 "소리를 질렀는데 이어폰 끼고 계셔서 못 들으셨죠?"가 떠오른다. 자기 잘못을 내 잘못으로 돌리는 것 같아 요란했다. 헌데 마음이 온전하고 보니, 그 사람 말이 사실이긴 하다. 이어폰을 끼고 있지 않았다면, 가방을 피할 수 있었다. 아깐 분명 그 사건에 내 잘못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니, '내 잘못'도 있다. 그 사람만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도 '내 잘못은 인정하기 싫은 사람'이었다. 그가 당황해서 그랬다고 치부했지만, 실상 그 사람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은 거다. 그 사람은 '사실'을 말했다. 

대산종사는 "잘못을 나에게 돌릴 때가 참으로 평안하나니,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마음에 비추어 보아서 지금 나에게 잘못이 없더라도 어느 생에서인가 잘못이 있었구나 하고 돌려 버리라"고 했다. (〈대산종사법어〉 운심편 7장) 

부끄럽지만, 이 법문을 읽으며 나도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스승님 말씀 따라 '잘못은 나에게 돌려야지'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상대의 잘못과 내 잘못이 부딪힐 땐 내 잘못을 알아차리기조차 어렵다. 내 잘못이었다고 바로 수긍하긴 더 어렵다. 아까, 그 사람의 말에 내가 진심으로 "아…, 제가 이어폰을 꽂고 있어서 소리치는 것을 못 들었네요. 저 때문에 놀라셨죠? 죄송합니다" 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황홀하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문득 부끄럽다. 

지지리도 부족한 공부인의, 꿈만 거창한 바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이라도 크게 나아가자. 잘못은 나에게 돌릴 때 참으로 평안하다. 

/중앙중도훈련원

[2018년 10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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