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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대담] 대안교육의 새 길, 이제는 아이들이 걷는다
[개벽대담] 대안교육의 새 길, 이제는 아이들이 걷는다
  • 강법진 기자
  • 승인 2018.11.14
  • 호수 19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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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신문=강법진 기자] 원불교 최초 대안학교는 영산성지고등학교다. 옛 영산고등공민학교였던 영산성지고는 1986년 일반학교 부적응 청소년을 대상으로 열린교육을 해온 지 11년 만에 정부 교육부로부터 특성화고등학교 제1호로 인가를 받았다. 그 후 영산성지고는 경주화랑고등학교와 합천 원경고등학교 등이 개교(1998년 3월)함으로써 교단 내 대안학교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원불교 대안학교는 그 명성만큼 고민도 깊어졌다. 학령인구 감소와 공립 대안학교 설립으로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기 때문이다. 원불교 대안교육 20년, 초창기 영산성지고에서 만나 남들과 다른 길을 걸으며 우리사회 교육의 문제를 끊임없이 묻고 답을 찾고자 했던 정도성 원경고등학교 교장(이하 정)과 차정아 지평선고등학교 교감(이하 차)을 8일 익산 한 카페에서 만났다. 

대안학교 교사를 어떻게 지원하게 됐나 
정=인연소산이다. 출가를 결심했던 시점에 영산성지고를 찾아갔다. 기존 교육현장과 판이 달라 나를 완전히 내려놓아야 하는 고통도 있었지만 뜨거움도 있었다. 영산성지고 6년을 돌아보면 '내가 심어놓고서 정작 자라난 것은 나였다'는 자작시 한 구절 같은 시간들이었다.

차=사범대를 졸업했지만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10년간 다양한 직장생활을 경험했다. 그러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대안학교 교사양성과정 강사로 초빙된 곽진영 선생님(현 대구 한울안중학교 교장)을 만나 영산성지고 기간제 교사를 지원하게 됐다. 내가 살아왔던 삶의 형태와 너무 다른 아이들을 만나 삶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고 온전히 사람에게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 

각 학교 교육철학을 소개한다면
차=자력양성이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비로소 자력이 된다"는 대산종사님의 법문을 보면서 교육계획서에 반영했다. 그다음 고등학교 아이들의 진로를 함께 고민하면서 '인문학'을 중심에 두기 시작했다.   

정=학교는 관계를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관계를 배우지 못하는 학교를 학교라 할 수 있을까. 그 관계는 경쟁과 서열의 관계가 아니라 협동과 배움의 관계이다. 그래서 멀리 가기 위해 함께 가는 교육(길)과 '놀자, 그리고 날자'란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대안학교가 사회에 인정받은 이유는
정=종교적 지향성과 대안학교의 이념이 맞았다. 학교나 사회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끌어안고 새로운 교육을 꿈꾸며 당시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열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차=영산성지고는 기존교육의 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았다. 아이 한 명 한 명에게 집중했다. 그렇게 시작한 학점 이수제는 그 당시 누구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교사들이 밤9시까지 수업을 하며 학생들을 졸업시키고자 한 열의가 있었다.  

현재 대안교육의 어려운 점이 있다면
차=사회 전반적으로 (일반·대안)교육에 대한 본질을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시기가 왔다. 

정=원불교 대안학교 위상이 주변부로 많이 물러나 있는 게 사실이다. 다른 대안학교 종사자들이 대안교육의 다양성과 확장성을 고민할 때, 원불교는 그러지 못했다. 이는 학교를 개교할 때, 대안교육의 철학과 방향성에 대한 공유와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대외적으로는 최근 정부의 교육정책에서 대안교육이 다소 소외됐고, 현재 사회적 분위기도 대안학교는 '문제아'가 가는 곳이라는 부정적인 인식과 입시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비전을 보여주는 곳이라는 인식이 섞여 있다. 이 두 가지 인식 사이에 원불교 대안학교가 끼어 있어서 변화의 방향을 잡아내기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차=1990년대 초반, 간디학교가 새로운 형태의 교육을 지향했다면, 원불교 3개 고등학교는 부적응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안고 시작했다. 그것이 교사들에게는 일종의 소명의식이었지만 현재 '대안교육'은 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어졌다. 머물러 있지 말고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지평선고는 인문학을 들여오면서 사람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아이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한동안 어려운 시기를 겪어왔지만 누군가 다시 그 단초를 지펴줌으로써 아이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위기 속에서 함께 성장한 것이다.  

정=내부적으로는 어려운 아이들을 데리고 산다는 명분으로 위안을 삼아서 사회변화를 꿰뚫어보지 못했다. 또한 원불교 대안학교 내부의 민주성, 학교 운영의 공공성과 혁신성도 중요시 돼야 한다. 원불교 대안학교가 지금처럼 소외된 청소년 교육에 머물러 있지 말고 입시 위주의 기존 교육을 대체할 수 있는 보편교육으로 나아가야 하며, 시대의 가치를 담는 다양한 대안교육의 흐름과 같이 해야 한다. 이러한 방향성에 대해서는 더 깊은 토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차=덴마크 같은 나라는 전체학교의 20%가 대안교육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5%에 불과하다. 우리나라는 국가가 교육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정아 교감

원불교 대안학교 20년의 궤적 
일반학교 변화시킬 원동력 갖춰 

 

정도성 교장

멀리 가기 위해 함께 가는 교육 
다른 대안교육 진영과 연대해야



대안학교의 학부모·학생·교사들에게 하고픈 말
정=대안학교라도 해서 힘든 아이들만 모아놓으면 준거집단이 없어 서로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자부심도 약하다. 그래서는 지속가능한 교육이 안 된다. 지금은 학부모와 학생의 인식이 많이 달라져 입시교육, 경쟁교육이 싫어서 오는 학생들이 많다. 이 아이들은 개성과 자율을 더 많이 존중받고 싶어 한다.  

차=지평선고를 개교한 지 8년째인데 벌써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교사들이 있다. 젊은 선생님들이 초창기 가졌던 결기들을 다 잃어버렸다. 교사가 살아나야 한다. 교사가 학교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면 부모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원동력이 생겨난다. 

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이 갖는 의미는
정=마음공부가 교육의 중요한 바탕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들은 활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내가 교장이 됐을 때, 교육부에서 예술교육모델학교를 공모했다. 고등학교는 전국에서 3개만 뽑는 좁은 문이었는데 우리학교가 뚫고 예술교육모델학교로 지정되어 연극과 사진예술을 지원했다. 그 뒤에 문화예술교육이 더욱 확대되었고, 북카페형 도서관, 학교 법당도 개축해서 마음공부와 문화예술교육, 공동체교육을 수행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차=지평선고등학교는 학생 스스로 연극반을 꾸렸다. 연극은 관련분야 지원자뿐 아니라 자기 삶을 이야기하고 또래들과의 공감하는 장이다. 연극은 관계 맺는 방식을 가르쳐 주는 살아있는 현장이다. 연극 공연 하나 올리기 위해 눈에 보이는 배역뿐 아니라 스텝들도 고생이 많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뿐 아니라 스텝들도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이 커튼콜에서 기운으로 보여준다. 

정=원경고 연극반은 지역연극제에서 다수의 상을 받을 만큼 자부심이 대단하다. 연극하는 아이들을 보면 아름답다. 나는 왜 타 학교에서 연극 교육을 안 시키는지 안타깝다. 예술교육을 해야 한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시험성적만을 위한 죽은 지식을 매만지게 하는 교육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이것이 곧 대안학교가 존재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원불교 대안교육에 바람이 있다면
차=대안학교가 20년 동안 살아온 궤적이 일반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졸업하고 성인이 돼서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간다. 남들이 가지 않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힘이 길러졌다. 어른들의 눈에는 가능할까 하지만 아이들은 그 삶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런 아이들이 우리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정=원불교 대안학교는 또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한다. 초창기에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갔듯이 말이다. 다른 대안교육 진영과 연대하여 대안교육을 더 많이 배우며 품을 더욱 넓혀야 한다. 이러한 도전들이 우리사회의 잘못된 교육정책과 방향을 바로잡아 나가는 작은 이정표가 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2018년 11월1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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