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성지 머무는 동안, 축복과 편안함 받아
순간의 단순함 받아들일 때 모든 것 명확히 보여

[원불교신문=원지연 교도] 지난 6월 영산선원 글로벌스테이에 참여했던 나는 당시 영산이 마치 내 집처럼 편안했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내가 얼마나 축복을 받았는가'라는 감사함이 크다. 원다르마센터를 비롯한 영산에서 한 달간 정기훈련을 받게 여러모로 도와준 미국 교당의 인연들에게 감사하다. 

영산에서 매 순간 만나는 이들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학생들의 전염성 있는 미소가 항상 우리를 맞아줬고, 영산선학대 교무들의 가르침은 현명했으며, 음식은 너무도 정성스러웠다. 이 모든 것과 모든 사람들은 말할 수 없는 감사함이었고, 이들이 모든 것을 특별하게 해줬다. 

그 중 내 삶을 변화시킨 순간은 원불교 〈교사〉 수업 시간이었다. 나는 원불교 역사 수업이 내 인생을 바꿔 놓았다고 말할 줄은 결코 생각해본 적 없었다. 〈교사〉 수업은 성지를 걸어 다니며 소태산 대종사의 삶에 대해 몸과 마음으로 배우는 가이드 투어였다. 아름답게 줄 지어있는 나무 길을 따라 첫 번째 투어를 시작했고, 침묵 속에서 우리는 꽤 많은 시간을 걸었다. 걸으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목적지가 없는 어떤 길이었다. 어디로 향하는지, 언제 도착할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던 중 나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있는 내 내면을 보게 됐다. 나는 이 특별한 순간에서도 다음 여정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를 내 마음의 목표로 삼고 살고 있었다는 것을 보게 됐다. 마치 생일 선물을 받으면 바로 풀어보고, 재빨리 다음 선물을 잡는 아이처럼 어떤 기대를 하고 있었던 나를 본 것이다. 이 깨달음은 내 마음을 힘차게 일어서게 해줬다. 산책하는 지금 그리고 걸어가는 이 길이, 사실 아무것도 줄 것이 없고 그 자체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특별한 가면으로 나를 항상 가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 하나의 발견은 내가 주변 환경에 감사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마음이 항상 현재에 그곳에 있지 않았구나 하는 것이었다. 우리 삶의 이야기는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기 위한 것처럼 보여진다. 실제로 경험하지도 않은 장면의 사진들을 찍는 것처럼, 허구적 충만함과 어떤 공허한 소속감을 만들기 위해 살았다는 것을 보게 됐다. 

그때 '나'의 이야기가 저절로 풀렸다. 가식의 내 모습이 떨어져 나갔다. 내가 현재 이곳 영산에 있고, 이 모든 아름다움과 우리의 본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끼며 많은 문제들이 바로 풀렸다. 영산이라는 깨끗한 공간에는 어떤 불필요한 걱정도, 특별한 것에 대한 애착도 없었다. 단지 겸손과 존재에 대한 감사함만이 내 마음에 가득했다. 우리가 순간의 단순함과 완벽함을 잘 받아들일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명확히 볼 수 있다. 

이 경험을 통해 내게는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 일원상이 내 심장과 피의 일부가 된 것이다. 4년 전 원다르마센터에 처음 간 날, 나는 바로 일원상에 매료됐다. 그 후 원불교에 대한 꾸준한 수행과 헌신으로 그 일원상이 차차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해 이해를 넘어 삶의 은혜로 다가왔고, 일상생활에서 나의 걸음과 호흡을 축복해줬다. 

영산으로 가기 전 나는 일원상을 화두 삼았다. 일원상 이미지를 생각할 때 '일원상이 어디에서 왔고 왜 그런지'에 대해 질문했다. 나는 우리 본성에 의해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는 우리 행동이 일원상의 포옹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주에 각각의 모든 세포들은 서로 연결되어 둘러싸여있는 큰 하나의 포옹이다. 영산의 길을 걸어 내려오면서 나는 다른 사람을 향한 우리 품안의 포용이 바로 우주의 포옹과 동일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있는 그대로 경외심을 표하고, 사랑스럽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원다르마센터에서는 매달 교도들이 모여 교화단 모임을 가진다. 여자 단 모임을 이끌고 있는 나는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켜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서원이다. 그들 자신이 부처라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일원상은 벽에 있는 이미지가 아니라 우리의 고향이고 삶이기 때문이다.

/원다르마센터

[2018년 11월16일자]

저작권자 © 원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