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도성 도무] 공자가 〈논어〉에 밝히기를 '젊은 사람들은 집에 들면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공손하며, 행동거지를 삼가고, 믿음을 주어야 하며, 널리 뭇사람들을 사랑하고 어진 이를 가까이해야 한다. 그러고도 남는 힘이 있다면 글을 배워야 하지.'(〈논어〉 학이편)

자하도 말했다. '어진 사람을 받들 때 어여쁜 사람을 좋아하듯 하며, 부모를 섬길 때 그 힘을 다하고, 임금을 섬길 때 그 몸을 다하며, 친구를 사귈 때에 말에 믿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비록 배운 게 없다 할지라도 나는 반드시 그가 배운 사람이라고 할 것이네.'(〈논어〉 학이편)

글을 익히고 학문을 닦는 것보다 실행과 실천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말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글을 배우되 그 글과 일치되는 실행이 부족한 것은 매 한가지며, 도리어 지식과 학문의 습득만을 앞세워 바른 덕행의 실천을 방해하는 폐단을 말한 것이리라.

〈논어〉에 또 이런 말이 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옹은 어질긴 하지만 말재주가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공자 말씀하셨다. "말재주를 어디에 쓴단 말인가? 잘난 말재주로 남의 말을 막으면 미움을 받기 쉬우니, 옹이 어진지는 모르겠지만, 말재주를 어디에 쓴단 말인가?"(〈논어〉 공야장편) 이 말은 '듣기 좋은 말을 잘 하고, 낯빛을 꾸미는 사람 중에 어진 사람이 드물다'(학이편)고 한 말과 통한다. 내면의 진실을 세우기에 앞서 말을 그럴 듯하게 잘 하는 것을 매우 강하게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대종사 또한 그러했으니, '사람을 쓰실 때에 매양 그 신성과 공심과 실행을 물으신 다음 아는 것과 재주를 물으'셨기 때문이다.(〈대종경〉 실시품 40장) 

공자가 말과 재주를 질타하고 경계한 것에 비해 대종사의 심법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대종사 제자 가운데 말만 하고 실행이 없음을 경계는 하셨으나 그 말을 버리지 아니하셨고, 재주만 있고 덕 없음을 경계는 하셨으나 그 재주를 버리지 아니하시니라.'(실시품 35장) 또한 '대중 가운데 처하여 특별한 선과 특별한 기술은 없다 할지라도 오래 평범을 지키면서 꾸준한 공을 쌓는 사람은 특별한 인물이니, 그가 도리어 큰 성공을 보게 되리라'(요훈품 40장) 하는 법문도 있으니, 오래 '평범'을 지키는 일은 드러나지 않는 일이고, 드러나지 않는 가운데 꾸준히 공을 쌓으라는 말씀은 명예욕을 내려놓게 한다.

정산 종사도 처음 교화 선상에 나가는 제자가 보감이 될 말씀을 청하자 '몸으로써 먼저 실행할 것이니라'(〈정산종사법어〉 응기편 17장)는 말씀으로 실행의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일러 주었다. 아는 것과 재주보다 실행과 실천을 더 중하게 여기는 건 모든 성현들의 으뜸 가르침인가 보다.

세상에 많이 아는 것으로 위신을 삼고, 재주의 출중함으로써 능사를 삼는 이가 많다. 몸보다는 매끄러운 말이 앞서고,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 낯빛을 꾸미는 이가 또한 많으니, 이러한 세태에 대종사의 제자를 자처하는 사람은 공부의 최종 구경이라 할 수 있는 '실행의 힘'(작업취사의 결과)을 기르기에 힘쓰고, '오래 평범을 지키면서 꾸준한 공을 쌓는 사람'을 실행 공부의 표준으로 삼음이 마땅할 터이다. 

/원경고등학교

[2018년 11월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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