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교화 20주년, 함께 한 원음방송

[원불교신문=나세윤] 원음방송 개국과 군종승인을 교법의 사회화 핵심 사업으로 뒀던 좌산종법사는 취임(1994년) 하자마자 강력한 추진력으로 3년 만에 원음방송 설립 허가를 공보처로부터 받았다. 15대 대통령 선거를 얼마 남겨두지 않고서다. 원기82년(1997) 12월17일 원음방송 허가가 떨어지자 교단은 이듬해 11월30일 원음방송 FM 주파수 97.9MHz 출력 3KW 전북 익산에 주소를 두고, 모악산 송신소를 통해 첫 전파를 보냈다. 전북과 충청, 전남 일부를 청취지역으로 하는 원음방송 개국을 알린 것이다. 

라디오에서 TV로 성장한 원음방송
이후 원기86년(2001) 8월30일에 부산원음방송이 FM주파수 104.9MHz 출력 3KW로 개국한데 이어 같은 해 9월12일 서울원음방송이 FM주파수 89.7MHz 출력 1KW(나중에 3KW 출력증강)로 개국하게 된다. 광주원음방송은 원기93년(2008) 4월21일 FM주파수 107.9MHz 출력 1KW로 개국했고, 대구원음방송은 원기96년(2011) 11월20일 허가를 받으며 FM주파수 98.3MHz 출력 1KW로 마지막 열차를 탔다. 이로서 5개 방송사를 완전체로,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라디오 원음방송은 전북 익산에 있던 본사를 원기90년(2005) 9월, 원불교 서울회관으로 이전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했다. 정치, 경제, 문화, 사회의 수도이자 국제도시 서울로 본사를 이전함에 따라, 시대변화는 물론 민감한 트렌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게 됐다. 때마침 스마트폰 대중화에 발맞춰 원기99년(2014) 원음방송 어플리케이션을 오픈, 스마트폰을 소유한 청취자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어디서도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됐다. 

원기100년(2015), 원음방송은 오디오 시대를 넘어 동영상 시대로 진격을 알렸다. WBS TV 시대를 개척하면서 라디오 단파 방송의 한계를 한 순간 뛰어넘었다. 위성방송인 스카이라이프와 IPTV를 기반으로 하는 KT올레TV, SK BTV, LG U+TV, 모바일 에브리온TV 에서 WBS TV를 시청할 수 있게 됐고, 서울지역 딜라이브와 부산과 호남 CJ헬로비젼, 익산과 군산지역의 금강방송 등 케이블 방송을 통해 원음방송을 시청하게 된 것이다. 

강소종교로서 쉽지 않았던 방송국 설립
방송국 설립은 교법의 시대화, 생활화, 대중화에 가장 적합한 사업이었다. 교단은 원기74년(1989) 9월29일 '원불교방송국설립준비위원회'를 결성됐고, 원기78년 6월24일에 제29회 임시원의회에서 '원불교방송국설립준비위원회'를 '원불교방송국추진위원회'로 확대 개편하게 된다.

원기78년(1993) 7월6일에 원음방송 설립허가 추천신청서를 공보처에 처음 신청하면서 방송교화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해 11월29일 한국언론학회 커뮤니케이션 정책연구회와 원음방송 추진위원회는 서울프레스센터에서 '다채널 시대의 라디오 방송'이라는 주제로 방송세미나를 열었고, 원기79년(1994) 1월19일 다시 공보처에 서울과 익산에 원음방송 설립신청서를 제출했다. 김인철 교정원장(원음방송 추진위원회장)이 주축이 돼 설립신청서를 냈고, 이어 언론 관련 학술대회를 연이어 개최하며 방송국 설립 분위기를 조성했다. 

가시적인 성과는 좌산종사가 종법사 위에 오른 뒤 나타나기 시작했다. 좌산종법사는 취임 7개월 만에 김영삼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면담하며 원음방송 설립을 간곡히 건의했다. 건의가 곧바로 받아들이지 않자, 원음방송 추진위원회 실행위원장이었던 이선종 문화사회부장이 김정용 원로교무와 정관계 인사들을 찾아다니며 당위성을 역설한다. 또한 497개 교당과 기관에서 5,451명의 재가출가 교도의 서명을 받아 1996년 3월 청와대와 총리실, 그리고 공보처에 전달하면서 원음방송 개국의 꿈은 영글어 갔다. 결국 원음방송은 정산종사 탄생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완결됐다.

탄생100주년(2000년 9월)을 앞두고, 발족한 정산종사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1996년)는 거교적인 보본사업이었다. 원기83년(1998) 11월30일 총부 문화회관(본사)에서 라운딩을 마친 뒤 반백년기념관에서 원음방송 개국 기념식을 진행했다. 

성시종 정산종사탄생100주년 기념사업회 사무처장의 사회로 열린 개국식에서 좌산종법사는 '원음방송 개국의 의미'를 주제로 설법했다. 당시 조정근 교정원장(원음방송 이사장 겸직)은 기념사를 발표하며 개국의 어려웠던 점과 개국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짚었다.  

노하우 없이 시작한 방송, 전쟁터 방불
원음방송 초대사장이었던 황인철 원창학원 이사장은 "개국 행사가 끝나고 방송국은 전쟁터로 변했다"며 "매일 19시간(05시~밤12시) 방송을 만들어야 했다"고 회고할 정도로 첫 시작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같은 날 인가 받은 평화방송이 1년간 시범 운영 이후 방송한 것과 비교하면 너무 급하게 방송에 뛰어들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럼에도 방송이 빠른 시일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PD, MC, 작가, 엔지니어 등 1인 다역의 헌신적인 노력을 해준 직원들 덕분이다. 

다만 공보처의 허가 조건이 광고수입 없이 운영경비를 만들어 사용해야 했기에 재정적 어려움은 가중돼 갔다. 이런 상황에서 원음방송국은 최소 인원으로 시작했고, 기획과 제작, 아나운서와 오퍼레이터(operator 기계조작)까지 혼자서 해내는 1인 다기능 운영체제를 도입했다. 전자산업의 발전 덕분이다. 

한방건강 TV 또 다른 모험
한방건강 TV 개국(2004)은 원불교 종교방송 TV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었다. 한방전문채널인 한방건강 TV는 교단의 풍부한 한방 인프라를 활용한 간접 교화 기능을 목적으로 설립됐다. 다음해 원음방송과 한방건강 TV를 합쳐 원음종합미디어를 발족하며 황규환 교도를 회장으로 영입한다. 

원음방송 라디오는 메이저리그 경기 중 박찬호 선수의 부분만 야구 중계 계약을 맺는 등 인지도와 수익성을 끌어올렸고, 한방건강 TV는 공격적인 경영기법으로 주목을 받았다. 2007년 2월부터 이관도 교무가 원음방송 사장으로 교단의 사령을 받아, 내실화와 콘텐츠 개발, 재정의 건전성 확보에 매진하게 된다. 

원기98년(2013) 2월 원음방송 TV국과 한방건강 TV 간 조직연계 업무를 시작한 원음방송은 'WBS TV 개국의 건'을 다음해 9월 원음방송 이사회를 거쳐 수위단회에 상정하게 된다. 한방건강 TV는 건설적으로 WBS TV로 해체 통합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원불교100주년기념성업의 일환으로 추진된 WBS TV 개국(2015.11)은 본격적인 영상교화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창사 20주년 이후 원음방송의 과제
원음방송 개국은 교단을 4대 종교로서 사회적 위상을 잡아가는 계기가 됐다. 종교음악제 주관 방송사로 나서기도 했고, WBS TV 개국으로 원불교의 정체성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게 됐다. 교화와 마음공부, 교전봉독, 경전강의, 선 요가 등 특색 있는 우리만의 TV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음방송이 풀어야 할 과제는 수두룩하다. IPTV, 케이블TV, 포털, 유튜브(1인 미디어 시대) 등 급변하는 방송환경은 미래를 예측하기 힘들게 하고 있다. 먼저 보편종교로서 원불교가 2세기를 맞아 대중교화 시대를 여는 일이다. 또 TV시대의 문화 콘텐츠 개발은 많은 재원과 인력이 필요하고, 창의적인 기획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방송사 단독 건물을 갖지 못할 만큼 열악한 재정상황은 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상업방송이 아닌 공공적 성격의 원음방송은 교도들의 관심과 성금으로 추진동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방송사 단독 건물, 수익사업의 창출, 일정규모 이상의 기금 설치 등이 과제로 떠오른다. 

서울원음방송은 원기86년 9월12일에 개국했다. 

[2018년 12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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