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정도성 도무] 아침 좌선을 할 때, 먼저 '일상수행의 요법'을 독경한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일상수행의 요법을 외며 일상의 삶 속에서 신앙과 수행의 마음을 다지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이어서 입정하고, 좌선이 끝나면 짧게 의두 연마를 한다. 의두 연마가 끝나면 다시 '일원상 서원문', '반야심경', 그리고 '휴휴암 좌선문'을 독경한다. 

휴휴암 좌선문은 〈불조요경〉에 수록되어 있는 경문으로 원나라 말기의 선승인 몽산덕이 화상이 지었다고 한다. 고려 말 나옹 화상이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구해왔다고 알려져 있으며, 그 내용은 동정 간에 정혜쌍수의 불리선법을 좌와 선으로 구별하여 자세하고 생생약동하게 설명하고 있는 경전이다. 원불교의 무시선법과 그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한다.(〈원불교 사전〉, 손정윤 편저, 2006년 발행) 

휴휴암 좌선문은 언제부터 독송됐을까. '보아도 보이지 아니하고,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며, 공이로되 공이 아니요, 유로되 유가 아니라, 크기로는 바깥이 없는 데까지 포함하고, 가늘기로는 안이 없는 데까지 들어가며, 신통과 지혜와 광명과 수량과 대기와 대용이 다함이 없'는 자리를 '참구'하자는 경문인데, 좌선과 같은 정시선의 경문이 원불교의 무시선법과 얼마나 그 맥락을 같이 하는지는 잘 알지 못하겠다. 

휴휴암 좌선문은 한문 문장이 주체요, 한글은 토씨 정도가 붙어 있는 국한문혼용체로서 사용한 언어도 내용도 매우 어렵다. 다소 어려워야 독경할 만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있다면, 이는 대종사가 경계한 바이다. '세상 사람들은 경전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야 도가 있는 것으로 인증하여, 같은 진리를 말하더라도 옛 경전을 인거하여 말하면 그것은 미덥게 들으나, 쉬운 말로 직접 원리를 밝혀줌에 대하여는 오히려 가볍게 듣는 편이 많으니 이 어찌 답답한 생각이 아니리요.' (〈대종경〉 수행품 22장)

좌선은 '사람의 순연한 근본정신을 양성하는 방법'(〈정전〉 정기훈련법)이며, 정신수양의 한 과목임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일원상과 같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각자의 마음을 양성'(일원상의 수행)하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은 '작업취사의 목적'에 있다. '정신을 수양하여 수양력을 얻었고 사리를 연구하여 연구력을 얻었다 하더라도', '실행을 하지 못하면 수양과 연구가 수포에 돌아갈 뿐이요 실 효과를 얻기가 어'려운 까닭이다. 양성은 솔성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휴휴암 좌선문' 대신에 '솔성요론'을 독경하자는 이유이다. 

앉아서 선을 하고 난 다음엔 누구나 일어나서 움직여야 한다. '일어나 움직일 때', '솔성'을 하는 것이고, '제생의세'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세상 만드는 건 우리 모두의 염원이다. 그렇기에 '각자의 마음을 거느리는데 꼭 필요한 말씀'(솔성요론)을 독경해 늘 하루의 공부에 활용해도 좋고, '개교의 동기'나 '병든 사회와 그 치료법'을 독경해 대종사가 법을 편 의미를 항시 새겨 봄도 좋을 것이다. 무엇이 됐든, 고경을 독경하느라 밀려나 있는 〈정전〉 경문들, '쉬운 말로 직접 원리를 밝혀'주는 대종사의 교법을 운곡에 맞춰 즐거이 읊조려 봄이 어떠한가.

/원경고등학교

[2018년 12월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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