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혜성 교무] 오늘 아침에도 사과 한 쪽을 베어 문다. 꿀사과다. 훈련원에서는 아침마다 사과를 먹는다. 아침사과는 보약이란다. 더군다나 이 사과는 '영주에 있는 농장'에서 직접 배달되는, 싱싱하고 맛있는 사과다. 사과를 좋아하지 않는 나도 이 사과는 참 맛있다. 사과 안에 꿀이 스며 있어 더욱 상큼하고 달다. 

맛있는 것을 먹다보니, 서울에 있는 어머니가 떠오른다. '한 상자 주문해서 보낼까' 생각이 절로 스민다. 교무가 뭔 돈이 있느냐고 어머니는 분명 불편해하겠지만, 이 사과가 정말 맛있어서 그런다. 실은 고백하건데, 집에서 먹는 과일은 다 맛이 없었다. 나에겐 이것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왜 같은 과일인데, 집에서 먹는 것은 맛이 없을까. 그 이유를 얼마 전에 비로소 알게 됐다. 딸이 집에 가는 날, 가끔 보는 큰 딸을 위해 어머니는 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한다. 과일도 사 놓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집에서 먹는 과일은 딸기도 맛이 없고, 오렌지도 맛이 없고, 복숭아도 맛이 없다. 뭔가 간이 부족하다. 딸기는 이 맛도 저 맛도 아니고, 오렌지는 껍질이 너무 두껍고, 복숭아도 맹탕이다. 처음에는 '거래하는 과일가게가 영 시원치 않나보다' 생각했고, 다음에는 '우리 엄마가 과일 고르는 눈이 없나보다' 생각했다. 시종일관 이렇게 싱거운 과일만 골라오는 것을 보니 말이다. 여느 날도 엄마가 깎아 준 배를 먹는데, 배가 또 맛이 없다. 바야흐로 배는 시원한 육즙이 철철 흘러야 하는데, 뭔가 부족하다. 그마나 배는 좋아하는 터에 맛이 없으니, 실망하는 마음이 컸나보다. 

나도 모르게 투덜거린다. "엄마, 과일을 대체 어디서 사요? 왜 이렇게 맛이 없어요?" 그러자 어머니가 이상하다는 듯 쳐다본다. "아니 교무님, 이게 맛이 없어요? 이 정도면 괜찮은데? 우리야 다들 대형마트에서 사죠. 근데 이 과일이 교무님 입에 정말 맛이 없어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재차 묻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순간 한 생각이 번뜩인다.

'보통의 과일'과 '내가 먹어 온 과일'이 다르다? 그렇다! 달랐다. 집에서 먹는 과일이 맛없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유독 내가 맛있는 것만 먹고 살아온 거다. 생각해보니, 스승님 모시고 살며 어른들께 시봉 올린 과일을 주로 먹었다. 그러니 그 과일은 얼마나 좋은 품질이었겠는가. 출가 후 19년 동안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보통의 과일보다는 늘 좋은 과일을 먹어왔던 거다. 과일 맛에 대한 기준이 상향되어져 있었다. 그리 생각하면, 또 덜컥 무섭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모르는 사이'다. 달라진지도 몰랐다. 알면서가 아니라는 사실에 덜컥 오싹해진다. 

정산종사는 "혜시 받기를 좋아 말며, 신심 깊은 이의 혜시를 함부로 받지 말라. 자칫하면 노적에 불 질러 놓고 튀밥 주워 먹는 격이 되나니라"고 법문했다. (〈정산종사법어〉 법훈편 43장) 교도님들이 뭘 가져다주든, 늘 좋은 것을 챙겨주신다. 그러니 정신을 차려야 한다. 얼마나 젖어드는지 깨어서 지켜봐야 한다. 절대 당연히 여기면 안 된다. 당연히 아는 순간, 감사도 없어지고 공부심도 자취를 감춘다. 노적에 불 질러 놓고 튀밥 주워 먹지는 말자. 인과를 생각하면 참으로 무섭고 또 무서운 일이다. 

/중앙중도훈련원

[2018년 12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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