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혜성 교무] 13박14일간의 겨울정기훈련에 들어왔다. 예비교무들이 한데모여 훈련으로 옴팡지게 쪄질 것을 생각하니, 감사하고 기쁘다. 스스로에게도 적공의 시간이 될 것 같다. 그러나 한 가지 애석한 점은 멀리 '유배'간다는 느낌이 든다는 거다. 그리고 이 발상의 근원엔 '커피'가 있다. 커피를 먹을 수 없단 사실은, 외지로 내던져지는 느낌을 준다.

고백하건데, 나는 아침마다 '핸드드립커피'를 먹는다. 인스턴트커피를 입에 대지 않은 지 이미 오래다. 좌선-청소-아침식사-커피까지가 가장 평범한 나의 아침이다. 갓 갈은 원두의 향은 내 심연의 향기도 끌어낸다. 좋아하는 재즈까지 틀어놓으면 온통 평화다. 혼자도 좋고, 함께여도 좋다. 이는 텅 비고 충만한 하루를 맞이하는, 세리머니에 가깝다.

덧붙여 '아침의 카페인'은 조금 과장하면 생명줄이다. 신선한 '검은 피'를 수혈하는 시간, 뛰어난 각성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아, 이토록 찬란한 커피를 동선 내내 못 먹다니" 외부간식 반입금지 선규 때문이다. 짐을 싸며 고뇌한다. 커피기구를 들고 가자니, 예비교무들이 걸린다. 지도교무가 외부간식을 반입하는 격이다. 또 요즘엔 다들 커피 좋아하던데, 치명적인 원두의 향을 펄펄 풍기며 우리만 먹는다는 것도 양심에 가책 된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커피를 포기하기로 결정한다. "인스턴트커피는 제공된다 했으니, 예비교무들과 같은 조건으로 연명하자"란 결심은 정말 용장했다. 덕분에, 오늘까지 커피에 대한 끌림이 전혀 없었다. 배급받은 인스턴트커피와 식당의 뜨거운 물로 일상의 빈자리를 채워왔다. 그런데, 오늘 아침 다른 교무와 대화하며 방을 나서다 커피를 챙겨 나오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어머" 외마디 소리를 지른 우리는 "커피를 안가지고 왔어요" 호들갑스레 말하며, 후다닥 방으로 다시 들어간다. 천만다행이다. 하마터면 커피를 안 가지고 내려갈 뻔했다. 커피를 들고 식당으로 향하던 중, 소중히 부여잡은 커피를 보다 문득 한 감상이 들었다. 놀랍고도 부끄럽다.

대종사는 '신이라 함은 믿음을 이름이니, 만사를 이루려 할 때에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이니라'(〈정전〉 교의편 5.팔조 제1절 진행4조) 객관화 시켜보니, "커피신심"이 장하다. 커피를 가지고 나와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방에 뛰어 들어갔다. 커피에 마음이 딱 달라붙어 지극한 원동력이 된다. 일호의 고민도 없이 뛰어 들어가니, 커피신심이 정말 대단하다는 반증이다. 커피,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거라고 외마디 소리를 내 지르고 챙겨 나와 천만다행이라 여기는가.

순간 마음을 멈춰, 가지고 올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도 없었다. '알아차린 즉각 실행, 이런 신심으로 공부를 하면, 대각도 벌써 했겠다'하는 자조적인 깨달음이 머리를 강타한다. 나는 지금 어느 곳에 신심이 있는가. 내 행동을 보면, 나의 신심이 보인다. 마음을 정하는 원동력이 신이기 때문이다. 기억하자.

'참 나'는 잊어버리고 찾지 않아도, 핸드폰은 잊어버리면 내내 마음 졸이며 찾아다니는 것이 현실 아닌가. 말로만, 회상과 스승과 법과 자신에 신심이 있다고 하지 말고 냉정히 내 행동을 살펴야 한다. 나는 어디에 딱 달라붙어 있는가.

/교학대서원관

[2019년 2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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