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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심법 〈정전〉 응용 문답 7. 수양이 부족함을 괴로워하며 살았습니다
용심법 〈정전〉 응용 문답 7. 수양이 부족함을 괴로워하며 살았습니다
  • 오덕진 교무
  • 승인 2019.02.26
  • 호수 1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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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마음을 진리로 믿는 것이 일원상의 신앙
오덕진 교무

[원불교신문=오덕진 교무] 구전심수란 입으로 전하여 주고 마음으로 가르친다는 뜻으로, 일상생활을 통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배도록 가르침을 이르는 말입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구전심수의 정법 아래 사람사람이 대도를 체험하고 깨치도록 하기 위해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을 내놓으셨고 이를 훈련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셨습니다. 간단한 교리와 편리한 방법인 〈정전〉을 생활 속에서 응용한 후 지도인에게 일일이 문답할 때 법맥(法脈) 신맥(信脈) 법선(法線)을 올바로 연할 수 있습니다. 

▷공부인: 제 원래 마음은 텅 비어서 흔적도 없고 모양도 없고 색깔도 없어 분별이 없는 자리입니다. 영원히 늙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 그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부르면 신기하게 바로 대답합니다. 그동안 이 텅 빈 자리를 고수하는 것이 수양이요 공부인 줄 알고 대답하고 변하는 그 마음을 부정하며 나오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간섭하고 때론 그 마음 때문에 수양이 부족함을 괴로워하며 살았습니다. 

▶지도인: 나에게서 '나오는' 마음들을 변명하지 않고 진리로 믿는 것이 일원상의 신앙이고, 전체 신앙입니다. 한 웹툰 작가가 <정전>을 생활 속에서 응용한 공부 자료를 보고 놀라워했습니다. 그 작가가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선악 업보가 끊어진 자리로 믿으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선악 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는 것을 믿으라고 하셨네요. 사회적으로 악한 것이라고 정의된 마음이 일어날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대종사께서는 경계 따라 악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도 진리의 자연스러운 작용이니, 다만 그 마음으로 공부만하라고 해주셨어요. '내가 원래 못된 사람이구나, 악마구나. 저 사람은 원래 죄 많은 사람이고, 구제 못할 사람이지' 자학하고 비난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네요"라고 말하더군요.

자신에게서 나오는 모든 마음을 인정하는 체험을 한 사람은 세상 사람들을 비난하고 싶은 욕구를 잊고, 그 상황 그 경계에서 '한 마음 안 챙겼구나'하는 자비심이 나옵니다. 부처님이나 우리 모든 사람의 마음은 정한즉 선도 없고 악도 없지만 동한즉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합니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성품 즉 우리의 마음은 공(空)한 자리라고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소태산 대종사는 성품이 공하다고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대소 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에서, 선악 업보가 끊어진 자리에서, 언어 명상이 끊어진 자리에서 공적 영지의 광명을 따라 대소 유무에 분별이 '나타나서', 선악 업보에 차별이 '생겨나며', 언어 명상이 '완연하여' 시방 삼계가 손바닥 위의 구슬같이 '드러난다'고 하셨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이 어디 있었는지 알 수 없죠? 그런데 묘하게도 미워하는 사람이 멀리서 보이면 미워하는 마음이 나옵니다. 

깨치지 못한 범부와 중생의 성품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중생도 한 마음 챙기면 부처고, 부처도 한 마음 안 챙기면 중생이라는 불교의 평등사상을 알아야 합니다. 정산종사는 "성인도 시비나 증애는 있으나, 오직 공(公)을 표준하여 시비를 가리고, 끌림없는 마음으로 증애를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공부인: 하지만 두렵습니다. 능히 악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버리면 어떻게 하죠? 개인적으로는 삶이 엉망이 될 수 있고, 사회적으로도 엄청나게 혼란스러울 겁니다. 

▶지도인: 그래서 성품을 공부하는 사람은 '나는 마음'과 '내는 마음'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나는 마음'은 공적 영지의 광명을 따라 묘하게 있어지는 진리의 작용이라면 '내는 마음'은 마음의 원리, 내가 목적하는 것, 내가 이루고자 하는 것에 내 마음을 비춰보고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정산종사께서 말씀하신 대로 성인께서도 범부 중생과 똑같이 '나는 마음'이 있지만 '나는 마음'을 그대로 내지 않고, 공익에 표준해서 옳고 그름을 가립니다. 그리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끊는 것이 아니라 끌림없는 마음으로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십니다. 그래서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계문에 탐심, 진심, 치심을 '내지 말며'라고 하셨지 '나지 말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한 마음을 챙겨서 주의하라는 뜻입니다. 

▷공부인: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교화훈련부

[2019년 3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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