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신문=이혜성 교무] '새도반 훈련' 중이다. 출가 서원한 원불교학과 신입생들이 받는 첫 훈련이다. 청포도 마냥 푸르른 시간을 마치고 '처음으로 정복을 입던 날', 그렁그렁한 눈으로 서원기도를 올린 뒤 성탑을 향해 걸어간다. 

달무리가 찬란한 밤하늘, 아지랑이 모양의 안개가 성탑을 감싼 아름다운 밤. 소중한 것을 품은 듯, 살포시 걸어가다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 멋있다!' 성탑에 이르는 길을 작은 초로 한 땀 한 땀 꾸민 환상적인 장면을 마주한다. 고즈넉한 촛불과 더 고요한 세상, 분위기만으로도 서원을 온전히 들여놓을 아름다운 장면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한다. '각이 살아있네. 줄 맞춰서 세팅하느라 엄청나게 고생했겠다.'

낭만은 순간이고, 이것은 현실이다. 교무는 '일도 잘하는 부처'다. 말문 막힐 아름다운 장면도 감상만 하기엔 '노고가 눈에 보인다.' 세팅 장면을 상상하다, 피식 웃은 나는 다시 걸음에 집중한다.

성탑을 둘러싸고, 새도반들이 자신의 출가일성을 고하기 시작했다. "이번 생에 지킨 약속, 다음 생에도!" 목이 터져라 외치는 출가서원을 들으며 마음이 울컥, 왜인지 모를 눈물이 또록 떨어졌다. 지금 나는 오직 한 마음이다. '이 모든 서원을 부디 이뤄주소서. 부디 도와주소서.' 다들 세상을 위해 살겠다고 서원한다.

숭고한 서원들을 목도하며, 자연스레 나의 서원을 돌아보았다. 나도 타인을 위해서 살겠다며 출가를 했다. 중학교 시절, 커트머리의 나는 사랑도 젊음도 돈도 명예도 모두 변한다. 변하는 것만 쫓으며 살다 보면, 죽기 전에 후회할 것만 같았다. 후회하기는 너무 싫었다.

죽음을 앞에 두고 후회하지 않는 길은, 타인을 위해 사는 길이란 결론이 났다. '세상의 고통을 덜어내고 싶습니다.' 그 시절, 나의 출가일성이었다. 수학기간 가장 힘들었던 일은 '지금 내가 타인을 위해 사는가?'였다. 당장 내 앞의 미움과 내 앞의 욕심에도 정신 못 차리는 주제에, 타인의 행복을 위한 삶이란 요원한 것 같았다. 또 여기서 우리끼리만 뭉쳐 살면, 아픈 사람들은 언제 도와주나 하는 생각도 했다. 세상을 위해 살겠다고 말하면서, 정작 그렇지 못한 것 같아 괴로웠다.

하지만 살다 보니, 알게 된 것이 있다. 출가는 그 자체가 이미 '나를 위한' 것이었다. 그 증거로 내가 행복하다. '남을 위해' 출가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출가를 한 거다. 다만 중요한 것은 내가 온전히 평화로워야, 비로소 세상에 온전한 도움이 될 수 있단 사실이다. '나를 위한' 출가지만, '나만 위한' 출가는 아닌 거다. 나의 '온전'이 세상의 '온전'이다.

대산종사는 "내 한 마음 깨칠 때 그 빛이 온 세상을 두루 비쳐 일체중생을 제도하게 되고, 내 한 마음 큰 서원 세울 때 그 소리가 허공 법계에 울려 퍼져 성불의 문이 열리게 된다"고 법문했다. (〈대산종사법어〉 적공편 7장)세상을 위해 살겠다는 새도반들이 부디 한마음 깨침으로 세상에 빛이 되길 기원해본다.

그리고 어느 날엔 '세상을 위한' 출가의 길일 뿐 아니라 '나도 위한' 출가의 길이었음을 꼭 알게 되면 좋겠다. 자신 있게 "출가해서 너무 행복하다" 말하며 해사하게 웃게 되는 그날 말이다.

[2019년 3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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