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대법원이 '사람이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나이'인 가동연한을 65세로 봐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았다. 이러한 대법원 판결이 향후 정년연장으로 이어질지는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이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재판부가 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사회의 여건을 고려한 결과 나온 취지여서 60세 이상으로 규정된 현행 정년 규정도 상향해야 한다는 논의가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않다.

유엔에서는 인간 수명 100세 시대가 도래했다는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라는 단어를 10년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을 보면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이슈는 그다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다만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가 '호모 데우스'에서 밝힌 것처럼, 우리는 불사(不死)라는 미지의 앞날에 대해 막연함과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가본적 없는 길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수명연장 또는 정년연장에 대한 고민이 더 이상 개인에게만 맡겨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세계적으로 이미 공식화된지 오래됐을 뿐 아니라, 노년층에게 고령화에 대한 아무런 지식과 대안없이 맞이하라는 것처럼 이 세상에 가혹한 형벌은 또 없을 것이다. 103세 나이로 2015년 별세한 호서대학교 강석규 명예총장이 남긴 글은 오늘날 대안없는 고령화 사회의 비극을 실감케 한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 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하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3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한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날.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노인의 가슴 아픈 후회. 개인이 아닌 우리의 책임이다.

[2019년 3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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