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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뀌어야 할 것과 지켜져야 할 것'
'바뀌어야 할 것과 지켜져야 할 것'
  • 박중훈 교무
  • 승인 2019.04.09
  • 호수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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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키고 보존할 것, 고치거나 폐기해야 할 것 결정해야
가정, 교단도 앞으로 쓰일것은 무엇인지 물음 필요할 때
 

[원불교신문=박중훈 교무] 새로운 임지에 부임해 근무하다 보면 모든 것이 낯설기 마련이다. 이전부터 살아오던 식구들 하며 교당의 교도님들, 그리고 그들의 삶 속에 연결되어 있는 문화와 건물구조며 생활용품들이 하나 같이 익숙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하루는 주방과 부속 공간을 돌아보다, 오랜 시간 사용하지 않은 주방 그릇들이 보관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을 며칠 바라보다가, '지금 사용하지 않는 것은 뒤에도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서서 밖으로 내놓기로 했다. 이후 마당에 나와 있는 물품들을 몇몇 교도님들이 보고서는, 그 식기들을 사용했던 때를 말하며 "지금 버리면 다시 사게 될 터이니 보관해야 한다"고 의견을 주었다. 결국 식기들 중 일부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고, 나머지는 재활용품으로 내놓아졌다. 

물론 '때가 되면 필요하다'며 골라진 그 물건들이 과연 언제 쓰이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벌써 몇 년 동안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난 날 동안 필요에 따라 그 식기들을 우리가 사용했으므로, 이를 기반으로 훗날을 기약하는 것이다. 

때가 되고, 또 인연을 만나 쓰일 것들은 무엇일까. 지금은 시절을 만나지 못하여 필요치 않지만 때가 되면 긴요하게 쓰일 것들이 있는 반면에, 지금 결정하지 못해 변화하지 못하고 그것에 묶여 사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철에 맞지 않아 때를 기다리며 보관하는 것들이 철이 되었다고 해서 모두 쓰일까? 꼭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다. 이치적으로는 여름이 되면 부채가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는 도구가 필요한 것이 당연한 것이지, 그 당연한 것이 부채라는 물건에 고정되는 것은 아니다. 사오십년 전 여름은 부채 하나로 철을 넘기던 시절이었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부채가 선풍기로 바뀌었고 선풍기는 다시 에어컨으로 바뀌었다. 이 부채의 변화에는 몇 가지 생각할 점이 있다. 

하나는 지금은 쓰이지 않으나 다음에 반드시 쓰일 것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시대를 따라 변하지 않는 것들이다. 비유컨대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줄 도구, 그리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해줄 도구들이다. 여기에서 부채나 화로라고 명명하지 않고 '도구'라고 표현한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시원하게 해주고 따뜻하게 해주는 것들이 그 모습을 달리해왔을지언정 '도구'라는 본래 기능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는 도구를 반드시 부채로만 한정한다면 선풍기나 에어컨은 사용할 인연이 되지 못한다. 법이나 제도 또한 이와 같아서 원칙이나 방향은 변함없으되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은 시대를 따라 답이 다름을 알아야 한다.  

둘은 지금도 쓰이지 않지만 다음에도 쓰이지 않을 것들이 있다는 점이다. 몇 해 전, 겨울 점퍼를 새로 구입했다. 그리고 전에 입던 점퍼는 옷장에 놓아두었다. 지난겨울에 겨울옷을 점검하는데 낯설고 고루한 점퍼가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새 점퍼를 구입하면서 넣어둔 헌 점퍼였다. 이제는 다시 입기도, 누구를 주기도 어려운 폐품이 되어 있었다. 

사람이 바뀌고 계절이 바뀐다는 것은 음양의 이치에 따른 순환의 원리에 의한 것이니 당연하고 피할 수 없는 순리이다. 따라서 누군가의 삶에 물건이나 조직과 제도가 고착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옛 사람이요, 조직과 제도는 옛것들로 불릴 것이다. 교단도 100년을 지내면서 언제나 이러한 상황에 직면해 왔다. 그 시대를 이어 살아가는 우리는 그때그때 지키고 보존해야 할 것과 고치거나 폐기해야 할 것들을 결정해야 한다. 100년 전과 지금은 물질문명과 이를 이용하며 사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판이하게 다르다. 사람도 바뀌고, 물건도 바뀌고, 삶의 구조도 바뀌었다. 단지 개교와 창립의 정신이 맥맥히 계승될 뿐이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개교와 창립의 정신은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는 '도구'이지, 창립기에 사용하던 '부채'는 아니라는 것이다. 

시대의 트렌드가 바뀌면 과거의 물건과 제도는 무용지물이 되어 공간만 차지하고 조직을 고루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우리의 가정과 교단도 물품이나 조직과 제도가 현재 쓰이고 있는 것, 앞으로 쓰일 것은 무엇인지 물음이 필요한 때이다.

/정읍교당

[2019년 4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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