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 최대 경축일인 대각개교절, 교단 최고지도자인 전산종법사가 일간지 기자들과 4월23일 간담회를 가졌다. 원불교의 미래와 세계종교로서의 행보를 명확히 제시한 전산종법사. 절대은혜와 절대감사로 대각개교절의 참 의미를 설파했다.
전산종법사는 마음공부는 바쁜 일상 속에서 단련해야 하며, 대각개교절의 참 가치는 새 마음으로 거듭나는 마음생일에 있음을 강조했다.

종교마다 성직자가 줄어들고 있다. 종교는 지금 위기에 서있다. 미래의 원불교, 어디에 중심을 두고 있는가
영산선학대학교에서 6년간 총장으로 있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봤다. 100년 전 우리나라가 극도로 어려웠던 시절, 이곳 영광은 어떠했을까?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어떻게 이 열악한 곳에 태어나셔서, 신학문을 하신 것도 아니고, 누구의 지도도 없이 20년의 구도 끝에 대각하신 것은 인류사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대종사께서는 남녀노소, 선악귀천, 지우와 종교의 차별 없이 평등하게 법을 내셨지만, 이 교법을 스스로 받아들여 실행하면 우선 자신이 행복하고, 가정이 행복하고, 사회와 국가, 세계가 행복해진다. 

원불교는 알지도 보이지도 않는 어떠한 절대자를 믿는 종교가 아니다. 실제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잘 쓰는 공부길을 밝히고 있다. 세상의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류는 이해득실에 마음이 얽히고 사회가 혼란해지고 괴로움을 겪고 있다. 원불교는 이 미세한 마음작용을 바르게 쓰는 길을 가르치기 때문에 자연히 이 교법을 찾게 될 것이라 확신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원불교는 더욱 필요할 것이다.

대각개교절 이제 세계적 경절이다. 공동생일의 참 의미를 알고 싶다
대각개교절은 대종사의 대각과 제도의 문인 회상을 열어주신 것, 우리의 마음생일을 뜻한다. 대각, 개교, 생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생일이다. 생일이라는 것은 우리의 육신의 생일이 아니다. 과거의 마음이 아닌 이 회상, 이 법을 만나 새 마음이 나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생일이다. 

대종사께서 최초의 9인 제자를 기도시키고, 법계에 서원 올리게 하고, 그런 후에 "과거의 너희들은 이미 죽었고 앞으로 새로운 사람으로 살린다" 하셨다. 9인 선진은 그때 거듭 태어났다. 
나도 처음에 우리 모두의 공동생일이라 하는데 이해가 안됐다. 살면서 그 생일이 아니었구나, 이 회상을 만나기 전 과거의 나와 회상 만난 후의 나는 완전히 딴 사람으로 거듭나 있다. 대각개교절의 가장 큰 가치는 거듭나는 것이다. 거듭나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대종사님의 은혜를 크게 알 수가 없다. 

대산종사께서 교도들에게 "대종사께서 누구를 위해 오셨냐"고 물어보셨다. 이런 저런 답을 듣고 "구아주(救我主)다. 대종사님은 나를 위해 오셨다"고 일갈했다. 우리 각자 각자가 대종사께서 나를 위해 오셨음을 깊이 느껴야 참으로 대종사의 은혜를 아는 것이다. 그래야 제도 받은 것이다.

통일부원장을 신설했다. 남북평화를 위해  원불교의 역할은
원기52년, 1학년 여름방학 때 익산 금강리에 계셨던 대산종사께 인사드리러 갔다. 대산종사께서는 "너희들, 원기100년에는 몇 살이냐? 100년기념대회는 금강산에서 할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당시는 공산당 '공(共)'자만 나와도 다 잡혀가서 감옥 가는 시절이었다. 금강산은 공산당을 용인한다는 말씀이라 덜컥 겁이 났다. 시국이 엄혹했던 그 시절에도 '통일은 반드시 되고 하나가 된다, 남북의 관계가 계속 좋아진다, 자고 나면 통일이 되는 시기가 올 것이다' 할 정도로 원불교는 통일에 아주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대산종사는 종법사 재임기간부터 각 교구별로 북한의 큰 도시를 책임 맡고 통일기원을 하면서 미래를 준비하도록 하명했다. 정산종사께서는 60년 훨씬 전부터 "앞으로 통일이 되면 출가교역자들은 북한으로 올라가야 하고, 남한은 재가들이 교화할 것이다. 1만명 교역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어른들의 말씀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다. 통일은 된다.

힘든 일속에서도 마음공부 가능한가
내가 수학하던 시절에는 많은 학생들이 아침에 좌선하는데 공을 들였다. 그래야 도인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대종사님의 법은 그러한 법이 아니다. 생활 속에서 해야 한다. 대산종사께서 생활 속에서 공부하는 상시훈련을 강조해도 대중들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요즘에는 생활 속에서 정진하는 공부로 방향이 많이 달라졌다. 생활 속에서 선을 하고 공부해야 한다.

어떤 사람이 돈을 벌고 싶어 상점을 열었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손님이 온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주인은 손님 많이 오는 것이 기쁠까 안 기쁠까? 모르긴 몰라도 전혀 고되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너희들이 마음 쓰는 공부를 한다고 하는데 그 마음을 언제 쓰는가." 

우리의 공부는 좌선이 목표가 아니다. 좌선을 통해 마음을 맑혀서 판단력을 기르고, 일을 당해 그 일을 잘하자는 것이 마음공부의 결과다. 그래야 상대방에도 도움이 되고 나와 세상에도 도움이 된다. 그것이 공부의 실제다 

"그럼 마음 잘 쓰는 공부는 언제하는가" 또 물어봤다. 마음 잘 쓰는 것은 써야할 때가 왔을 때 잘 쓰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일이 곧 공부도량이다. 그렇다면 공부거리가 많은 것이 좋은가, 적은 것이 좋은가. 공부거리가 많아야 그 공부가 빨리 성숙되고 복도 많이 짓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관계를 몰라서 공부와 일을 분리했다.

대종사님께서 처음 회상을 여실 때 방언공사부터 시키셨는데 주위에서 조소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왜 그렇게 시키셨나. 하기 어려운 이 일을 할 때 신심이 있는가를 보고, 실제로 일을 해보면서 복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체험해보고, 더 중요한 말씀은 이 어려운 일을 이뤄나갈 때 솔성(率性, 마음 쓰는 법)하는 길을 단련하게 하셨다. 그 일을 그렇게 이뤄내면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능히 성취할 수 있는 힘이 쌓이는 것을 증거하게 하신 것이다. 

일속에서는 단련하지 않은 마음이라는 것은 꼭 온실 속 화초 같다. 볼 때는 참 좋은데 밖에 내놓으면 바로 시들어버리지 않는가.

 

원(圓)은 진리요, 은(恩)은 진리의 무궁한 작용

 

마음공부, 인류 역사 달라지게 할 놀라운 인성교육

일 속에서 단련하지 않는 마음, 온실 속 화초와 같다

통일은 반드시 된다. 정산종사 교역자 1만 명 양성 부촉

소태산 대종사께서 나를 위해 오셨다는 
'구아주(救我主)'이심을 깊이 느껴야 

미래 교단의 개혁과제, 남북통일과 평화를 준비하는 원불교의 역할론에 대해 첨예한 질문이 오고갔다

최근 진주 아파트 살인사건 등 분노조절장애가 일상용어처럼 돼버렸다. 화가 올라올 때 어떻게 해야 하나
마음이 날 때 일단 멈춰야 한다. 일 당해서 멈추려고 하면 잘 안 멈춰진다. 평소에 멈추지 않아도 사고가 나지 않을 만한 경계부터 멈춤 연습을 해야 한다. 한 선진은 이 멈추는 공부를 훈련하기 위해 서랍을 열 때마다 한 번에 열지 않고 잠시 멈췄다 여는 연습을 했다. 우리 학생들에게 신발 벗는 공부를 시키는데, 신발을 잘 벗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신발을 벗을 때 마음을 멈춰보라는 뜻이다. 신발을 가지런히 하고, 어느 경우에는 나갈 때를 대비해서 뒤돌아서서 신발을 벗는 훈련을 한다. 거기에 무슨 대단한 가치가 있지는 않지만 그러한 작은 경계에서도 멈추는 공부를 훈련해야 한다.

한 부모가 원불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어린이집에 자녀를 보냈는데, 그 아이에게 아빠가 꾸중을 했다. 그 전 같으면 울고불고 난리가 날 텐데 아이가 가만히 있었다. 그러니 하도 이상해서 "너 뭐하고 있냐"고 물으니, "멈추고 있어요"하고 답했다. 그 부모가 너무나 놀랍고 기특해서 어린이집으로 찾아갔다. "여기서는 무엇을 가르치냐"고 물으니, 교사는 "마음을 멈추고 바라보는 연습을 시킨다"고 말했다. 부모는 감동을 했고 바로 입교했다.

정부와 교육기관도 참고했으면 한다. 유년기 시절부터 인성교육을 시켜야 한다. 인성교육이 멀리 있는 것 아니다. 멈추는 공부만 단련한다면 대한민국 역사는 달라질 것이다. 그 멈추는 공부를 더 쉽게 말하면 '온전'이다. 

지금 현대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지혜가 무엇인가
원불교에서 최고의 단어는 둥글 원(圓)과 은혜 은(恩)이다. 원은 진리를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고, 진리가 작용하는 것을 표현하면 곧 은혜이다. 

현실적으로 보면 나에게 해로운 것도 있고 좋은 것도 있지만, 이것이 진리적으로 보면 해로운 것도 없고 은혜로운 것도 없다. 더 크게 보면 일체 모든 것이 은혜 아닌 것이 없다는 뜻이다. 원불교의 은혜도 해로움과 은혜로움을 넘어선 가치다. 절대은혜, 절대감사다

하나 더 들어 가보자. 진리적으로 보면 낮이 가고 밤이 온다. 밤이 가면 낮이 온다. 낮과 밤은 서로 다른데 분리돼 있지 않다. 반드시 서로 뒤따라간다. 은혜도 나에게 좋은 것인데 그 뒤로 안 좋은 것이 따라 온다. 보통 우리들은 거기까지를 못 본다. 덥석 이것을 취하면 나중에 안 좋은 것이 밀려온다. 또 안 좋은 것이 나에게 오면 이것을 겁내고 발로 찬다. 사실은 그 뒤에 오는 은혜를 걷어차는 것이다. 

이것을 확실히 알면 진리적 안목을 얻었다고 한다. 절대감사 절대은의 세계이다. 

밤이라고 절대 싫어하지도 않고 낮이라고 절대 좋아하지도 않는다. 일희일비(一喜一悲)가 사라진다. 유가의 중도(中道)라는 것도 그것을 확실히 알 때 적절히 취하고 놓고, 적절하게 감내하는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여성교무 결혼, 어떻게 방향 잡나
여성교역자가 원불교학과 입학시 제출하는 정녀지원서는 이미 폐지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대종사께서는 교역자의 결혼 유무는 본인의 선택에 맡기도록 하셨다. 남녀 간에 차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초창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쳐 오면서 여성교역자들의 헌신 위에 교단이 이뤄졌다. 100년 지난 지금 교단적 합의를 통해 진행할 계획이다. 

모든 것은 문화로 정착돼야 한다. 돌이켜보면 처음에 남자교무들이 교화현장에 나갈 때 문제가 참 많았다. 문화적 충격과 충돌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20~30년 흘러가면 정착이 될 것이다. 교역자의 두발과 복장 문제도 수도인들의 풍모를 유지하면서 자율성을 주고 문화적으로 성숙시켜 가고 싶다. 원불교가 세계화하는데 고정된 스타일을 고집할 수는 없다. 변화해야 한다. 회의로 정하지 않고 문화적 접근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겠다.

전산종법사는 간담회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들에게 다시 한번 부촉한다
"우리 기자님들, 마음공부의 열쇠는 생활 속 마음공부다. 세상 이치가 쉽게 되는 법 없다. 그것은 사이비들이 하는 얘기다. 되는 건 확실하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오래오래 하라 하셨다. 은혜는 해로움에서 생겨나고 해로움은 은혜에서 생겨난다. 이것을 알면 진리의 안목이 열릴 것이다. '은생어해(恩生於害) 해생어은(害生於恩)', 각자 책상에 꼭 걸어 놓고 공부하자."

현대인들에게 가장 절실한 지혜가 무엇인지, 분노조절장애와 같은 사회문제의 해법을 마음공부에서 찾았다.

[2019년 5월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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