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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법의 삶] "티 없이 걸림도 없이 목화처럼 타볼래"
[호법의 삶] "티 없이 걸림도 없이 목화처럼 타볼래"
  • 안세명
  • 승인 2019.06.04
  • 호수 19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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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산 조정제 종사

[원불교신문=안세명] "요즘 귀가 많이 어두워졌어요. 그래도 참 감사해요. 귀가 어두워지니 귓속이 산골짜기가 돼버렸어요. 적막강산이 돼버렸어요. 허허…." 원불교 50년 공부 길의 무게와 깨침이 어느새 소리 없는 소리를 보고, 줄 없는 거문고를 켜게 됐다. 1집 〈파랑새〉 이후 선시(禪詩)풍의 시조집 〈해우소〉를 집필한 수산 조정제 종사(81·분당교당). 매 순간 체득되는 낙도의 기쁨에 오늘도 고맙고 감사하다.

줄 없는 거문고, 무향곡의 심경으로
"당신이 시조를 안 만났으면 어떻게 살까요." 오랜 도반이자 동반자인 아내(전타원 배명전)는 조 원로교도의 삶에 시조는 '심우(尋牛), 두렷한 길'임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한다. 그에게 시조란 의두공부이자, 염불이다.

조 원로교도는 '무향곡(無響谷, A Valley of No Echo)'에 그가 체득한 적멸의 소식이 온전히 담겨있음을 설명한다.

'내 귀는 적막강산 메아리 없는 골짜기/내 눈이 듣누나 하얀 이슬 앉는 소리/ 환희의 한 목소리다 베토벤이 왔더냐.(My ears are a dead quiet in a valley of no echo. My eyes hear in sollitude a voice of white dew falling- Ode to joy, a voice of Beethoven! Has he come here to conduct?)'

시조의 초장은 우리가 말하는 적멸궁의 무(無)의 세계를 지향한다면, 중장은 그 가운데 '내 눈이 하얀 이슬 앉는 소리를 듣는다'는 유(有)의 세계다. 종장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환희의 합창곡과 같다. 베토벤도 말년에 눈도 귀도 안 들렸지만 작곡과 지휘를 하며 그 자리에서 환희를 느꼈다. 진공묘유의 참 극락의 소리다.

시조 이야기에 웃음꽃이 피는 조 원로교도는 삶은 매순간 감탄과 경이의 연속임을 말한다. 최근 큰아들이 소장 수술을 하고 방구가 안 나와서 몹시 걱정했다. 방구를 기다리며 시 한수를 바로 지었다. '방구 복음(福音)'이다. '소장을 수술했다. 긴 내장 되막혔나/ 마신 물 코로 뽑고 경보가 빠알갛다/ 마침내 방 방 터졌다. 야, 방구가 복음이다.'

그는 생활과 성리가 일치된 삶을 지향한다. 정신이 성성하게 깨어 있는 이 순간, 이 처소에서 한 편의 시를 쓰고 고치고 또 정련한다. 그에게 시조는 의두를 마탁하고 소태산의 깨달음을 탐구하는 담론의 장이다.

나의 일상, 참 평범하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와 염불, 요가를 한다. 예전에 국선도를 다니면서 기공수행을 많이 했는데 지금도 그때의 몸 공부가 도움이 된다. 1주일에 절반은 바다살리기 국민운동본부와 사단법인 아프리카어린이돕는모임을 찾는다. 무슨 일이 그리 많은지 하루가 금새 지나간다. 일심이고 보은이다. 저녁엔 원음방송 기도시간에 맞춰 수양공부에 공들인다.

그는 "우리 전 교도가 9시30분이면 동시에 심고 올리면 참 좋겠다"며 역대 스승님들과 도반들이 함께 마음 모으는 것이 교단의 저력이 됨을 강조했다. 심고를 마치면 감사일기와 상시일기를 기재하고 하루를 마감한다. 평범하지만 한결같다.

그가 가장 공들이는 시간은 서울문인회 카페 '수산 조정제의 시조방' 운영이다. 좋은 작품을 소개하기도 하고, 회원들과 문답도 한다. 전국에 제자들과 함께 공부하는 재미가 솔솔하다. 1주일에 한 번씩은 잠실교당에서 여러 도반들과 시조공부를 함께 하고 있다.

〈정전〉과의 만남, 내 일생 최대의 사건
조 원로교도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재학 시에는 종교와 철학적 사유가 풍미했던 시대다. 그 또한 다양한 사상들을 섭렵했고 명동성당에 다니며 종교적 가르침에도 심취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명동성당에서 기도 중에 높은 천장아래 앉아 있는 자신이 자꾸만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내가 종교를 믿으면서 자아가 커져야지 작아지면 되겠나' 싶어 발길을 돌렸다. 그 후론 동국대학교 대붕스님의 〈반야경〉을 사서 불법을 공부하는데 계속되는 '공(空)'의 논리에 불교가 염세적이라는 생각에 답답해졌다.

그런 그에게 종로교당에서 우리나라 최고 지성이었던 박종홍 박사 강의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원불교와 동양철학'에 대한 강의로 기억한다. 강의 중간에 커피를 한잔 마시며 무심코 책장에 꽂혀있는 〈원불교교전〉을 보게 됐고, 정전의 게송이 눈에 들어왔다. 게송 마지막 구절인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는 대목에서 그는 무릎을 쳤다. "불교의 공이 허무에 빠질 수 있다 생각했는데 원불교는 그 구공의 자리가 역시 구족이라 했다. 참 멋진 말이다. 내가 찾는 종교가 원불교로구나" 싶었다.

당시 하숙하던 곳이 대학로여서 원남교당을 찾게 됐고, 고시공부에 전념했던 그에게 일요일 10시, 교무님의 설법은 마음을 쉬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승타원 송영봉 종사의 법설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어 부임한 향타원 박은국 종사의 따스한 호념 속에 그는 교법의 성취를 차츰 맛보게 됐다. "향타원 종사의 훈증은 진실로 내 인격에 큰 영향을 주셨고 법향이 나는 분이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나에게 어머니가 돼주셨다. 열반하시기 전 문학기행차 배내훈련원에서 하룻밤 잤는데 잠시 얼굴만 비추고 문안을 못 드린 게 지금도 아쉽다." 스승의 빈자리는 그렇게 크고 스스로 채워야 했다.

조 원로교도에게 경산상사는 심사(心師)이다. 서울교구 사무장 시절 원남교당에 머무셨을 때부터 인연이 깊다. 지난해 경산상사는 "내가 이제 곧 퇴임을 하니 우리 도반합시다" 하여 "어떻게 깨치신 분과 아등바등 사는 사람과 도반이 되겠습니까" 답했다. 서로 마음 길을 주고 받았다. 도가에서 스승을 모시고 산다는 기쁨이 가장 큰 홍복이다.

열린 교화를 위한 제언 
조 원로교도는 사요(四要)에 대한 오래전 생각을 내놓았다. 그는 "대종사께서 사요를 제정하신 것은 시대적으로 우리나라 발전에 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며 "자력양성·지자본위·타자녀교육·공도자숭배는 평등세상, 전반세계를 지향한다. 이는 사회주의적 평등관이 아닌 자본주의적 평등관으로 바라보면 좋겠다. 개인의 차이를 절대로 무시하지 않고 개인과 사회의 능력을 키워가면서 평등을 실현하는 길이다"고 모든 격차와 불평등 요소의 해소를 통해 동등한 기회를 얻게 됨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법호의 문호도 크게 열 것을 제언한다. 원불교는 어릴 적부터 입교해서 성장하는 교도들은 법호도 받고 법위도 높아진다. 그러나 늦게 입교한 이들에겐 그의 사회적 명망과 실력에 비해서 법호의 문호가 닫혀 있다. 나이가 60이 넘어도 법호를 못 받으니 좌절하는 이들이 많다. 법강항마위와 같은 법위승급에 대한 원칙은 명확히 지켜져야 하지만 교화를 위해서는 형식과 출석, 연조에 갇혀있는 법호의 문호를 크게 열자는 것이다. 꼬박 꼬박 나오는 사람만이 알찬 교도라 생각하면 늦게 발심한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출가 중심으로 교단이 나가면서 '출가위주의 편의주의'가 교역자들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팽배해지고 있음을 우려했다. 재가교도들이 신심과 공심, 그리고 공부심을 격려하고 믿어갈 때 열린교화의 장이 크게 열릴 것이다.

생사해탈, 영원한 화두
그에겐 묵직한 아픔이 있다. 37세 아들 경수를 먼저 떠나보낸 것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시한부 선언에 그는 아들을 '어떻게 공부시킬까' 고민하다 청정주를 외우게 했다. "아버지, 내가 얼마나 살겠대요. 솔직히 말해주세요"하는 아들의 질문에 그는 "길게는 3개월이란다. 네가 이제 새 부모를 만나 새 몸을 받는 중요한 시기다. 애착·탐착·원착을 다 놓고 청정한 법신에 주하거라"며 함께 공부하고 마음을 합했다.

초연하게 삶을 마감하는 아들을 보면서 그는 오히려 더 감동했다.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 아들의 병상엔 마지막까지 아버지가 한글로 써준 청정주가 있었고, 끝까지 독송하며 흔연히 떠났다. 놀라운 경지였다. 그런 아들에게 "이 놈아 당황하지 말고 당당하게 나서라. 쭈빗쭈빗 대지 말고 너의 인연이 나설거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 아들을 지켜보며 "이 놈이 나보다 낫네" 싶었다. 조 원로교도에게 두려움은 없다. 금생에 공부를 다 마칠 수 없다면 다음 생에 공부를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그는 다시 시조를 읽는다. "돌고돌아, 석두암 경종 소리 변산구곡 떠간다. 큰 늪을 맴돌다가 영지에 돌아든다. 바위가 물소리를 듣는다 무지개가 고옵다." 

그는 말한다. "대종사께서는 석두암에서 변산구곡의 바위가 실제로 물소리를 듣고 있음을 아셨다. 무무역무무 비비역비비. 대종사께서는 그 소리를 진리로 들으셨다. 나는 그 소리를 시조로 읊는다."

약력
수산 조정제(秀山 趙正濟) 종사
출가위 수훈
전 해양수산부 장관
현 바다살리기국민운동본부 총재
현 아프리카어린이돕는모임 이사장
현 원불교 문인협회 고문
현 세계전통시인협회 전통시번역소장

[2019년 6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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